- 화학보습제, 피부 오염시켜 가려움증·증상 악화 … 글리세린 주성분 ‘로션 타입’ 가장 무난
조월태 단한의원 원장이 건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대생 김 모씨(20)는 얼마 전 무릎 주변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겨 피부과를 찾았다. 병원에서 ‘건선’으로 진단받고 건조해진 환부에 평소보다 보디오일을 듬뿍, 자주 발라줬다. 오일을 바르면 피부가 촉촉해져 가렵지 않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무릎이 가려워지고 반점은 허벅지 근처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평소 가려운 피부에는 보습해주는 게 가장 좋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증상이 심각해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건선은 좁쌀만한 크기의 붉은색 발진과 함께 하얀색 비늘이 온몸의 피부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난치성 피부질환이다. 한번 발병하면 10~20년 지속되고 악화·호전이 반복된다. 자극을 자주 받는 팔꿈치, 무릎, 엉덩이, 머리 피부 등에 흔하다.
현대의학에서는 건선의 정확한 발병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면역세포인 T세포와 관련돼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T세포의 활동성이 증가하면서 분비된 면역물질이 피부 각질세포를 자극해 과다증식 및 염증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선 피부·경락과 관련된 폐·신장 등 오장육부가 허실하거나, 환경호르몬·음식 첨가물·중금속·화학성분 접촉 등에 의해 피부세포에 독성물질이 들어와도 해독기능이 저하됐거나, 열에너지 생성 등 세포생리활동이 부조화를 이루는 경우에도 나타난다고 본다.
건선은 다른 난치성피부염과 달리 가렵지는 않다. 다만 평소 알레르기 소인을 가진 사람은 가려움증이 동반된다. 이때 참지 못하고 긁으면 환부가 커지고 두꺼워진다. 조월태 단한의원 원장은 “한방치료를 시작하면서 스테로이드를 끊는 환자는 반동현상 기간 중에도 가려움증이 나타나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몸 자체를 건조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반신욕, 족욕, 목욕, 사우나, 수영 등은 삼가야 한다. 이런 행위는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일시적으로 보습이 될지 몰라도 물기를 말리는 순간부터 점점 건선이 악화된다. 오랫동안 환부가 물속에서 불은 상태로 있거나, 물에 자주 노출되면 인체에서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천연보습제가 물에 씻겨나가면서 피부가 건조해지고 가려움증이 유발되며 증상이 악화되기 쉽다. 한방에서는 몸이 메마르지 않되 치료 중 피부가 안정돼야 함을 강조한다.
일반인이 몸이 건조하고 가렵다면 보디제품을 충분히 발라 이를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건선 환자는 평소 몸에 바르는 화학보습제를 함부로 쓰면 안된다.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는 천연보습제가 가장 좋다.
조월태 원장은 “건선 환자가 무조건적으로 바세린·오일·크림을 바르는 등 화학보습제를 무분별적으로 이용하면 증상을 악화시켜 피해야 한다”며 “이들 보습제를 오랜시간 지속적으로 환부에 사용하면 피부가 화학적으로 오염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무수한 화학성분의 오염물질들이 환부에 축적돼 그 자체로 가려움증을 유발하고 건선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얼굴이나 손등처럼 외부로 노출되는 부위에 로션을 가볍게 바르는 정도는 괜찮다. 조 원장은 “로션류는 주성분이 지방이 아닌 글리세린으로 물에도 잘 녹아 씻어낼 수 있어 보습제를 고를 때에는 로션 타입을 택하라”며 “환부에 오일이나 바셀린 등을 바르면 기름진 성분에 오염되기 쉽다”고 덧붙였다.
건선 환자는 보습제보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보습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수분 밸런스를 맞추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가급적 충분한 양의 좋은 물을 자주 마셔 수분을 보충한다. 정수나 끓인 물이 안전하다. 평소 수면과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피로가 풀리면서 피부는 저절로 보습기능을 찾게 된다.
고춧가루·후추·부추 등 매운맛 향신료, 술, 커피 등 카페인음료는 밤새도록 피부 바깥에 열을 발산하게 만들어 수분도 함께 날아가게 만들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조 원장은 피부의 자연치유력을 되찾아주는 치료를 하고 있다. 그는 “건선은 면역반응이 과민하거나 또는 균형이 깨지고,해독기능이 저하돼 세포에 독이 쌓이고 피부저항력이 약화될 때 생긴다”며 “한약으로 생명현상의 근간 요소가 되는 음양,한열,허실, 정기신혈(精氣神血) 등의 균형을 잡으면 자연치유력이 회복돼 피부세포의 적정한 재생을 촉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 원장이 주로 쓰는 한약은 맥문동, 감국, 목단피, 숙지황 등 면역력의 균형을 잡아주는 약재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여년간 1만5000명에게 이들 약재를 투여한 결과 전체 환자의 80%가 완치됐고 98%가 증상이 호전되는 등 치료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나머지 2% 가량의 환자는 식물성 생약재 향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환자로 호전이 없었다. 전체 환자의 약 60%는 4~6개월간의 투여로 완치됐으나 3%가량은 난치성이어서 1년이 넘는 치료기간이 필요했다.
그는 “한약치료를 하면 환부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서서히 정상적인 살이 차오르는 변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며 “치료 초기에는 피부가 하얗게 변해 마치 건선이 더 악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선이 죽어 낙엽처럼 지는 것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