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노환규 의협 회장 지지파와 반대파간 첨예한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의협은 지난 30일 오후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임시대의원총회를 갖고, 오는 15일까지 20~30명으로 구성된 비대위를 구성한 후 4월 28일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인준키로 결정했다.
논란이 됐던 노 회장의 새 비대위 참여 여부는 대의원 139명 중 85명이 반대표를 던져 ‘노 회장 제외’로 결정됐다. 노 회장은 임시총회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제 의사협회에는 두 개의 집행부가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한 의료계 관계자는 “그동안 노환규 회장은 젊은 의사회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강경노선을 유지했지만 의협 대의원은 중견 의사들이 주축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표결과에 따라 새 비대위에는 노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 전국 시도의사회, 직역별 대표가 참석하게 된다. 김영완 의협 대의원회 대변인은 “좀 더 강력하고 합리적이며 전 직역을 아우를 수 있는 투쟁의 필요성이 제기돼 새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했다”며 “의·정 협의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비대위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비대위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수용 등 사안을 전면 재검토할 전망이다.
이번 임시총회에서는 ‘원격진료 입법 후 시범사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차 의정협의 결과를 두고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강경노선으로 일관해 온 노 회장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회의 초반 일부 대의원이 노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자 고성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으며, 노 회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피켓도 눈에 띄었다. 한 회원은 노 회장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인사만 간단히 하라”며 발언을 제지하기도 했다.
또 일부 대의원은 1·2차 집단휴진 총투표 과정에서 노 회장이 독선적으로 결정했다며 노 회장에 대한 사퇴권고안 결의를 요구했다.
의협 감사단은 노 회장의 소셜네트워크(SNS) 활동. 시도의사회장단과의 갈등, 휴진투쟁의 독단적 결정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감사단은 특별 감사보고서를 통해 “투쟁기간 동안 노 회장, 시도의사회장단, 대의원회 등이 계속 갈등하면서 단결되지 못한 모습을 모였다”며 “특히 노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시도의사회장과 대의원회를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감사단은 또 “지난 3월 10일 집단휴진을 시행함에 있어 노 회장과 시도의사회간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시도별 참여율이 큰 편차를 보였다”며 “이 같은 결과는 회원들간 분열을 조장하고,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야기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노 회장의 무분별한 공개발언도 지적대상이었다. 감사단은 “1차 의정협의 초기 보건복지부가 10%의 수가인상을 제시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고 노 회장이 1차 협의결과를 번복하기도 했다”며 “장관의 호소문에 대해서도 자극적으로 반박했다”고 지적했다.
제2차 의·정협의안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감사단은 “1·2차 협의안 내용이 크게 달라진 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격의료 6개월 시범사업은 오히려 전보다 못한 결과”라며 ”회원들이 크게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사단은 노회장에게 △사려 깊고 중후한 표현 사용 △페이스북을 통해 의료계 내부갈등 조장하는 행위 금지 △의료현안 추진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제안했다.
이번 감사는 대의원회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변영우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정부를 대상으로 협상과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데 현재 의협 리더들과 비상대책위원회는 중간에 와해되는 등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임시총회 내내 노 회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원래 예정됐던 2차 집단휴진 관련 안건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노 회장은 “정부가 원격진료의 ‘선 시범사업 후 입법반영’ 약속 등을 어겼다”고 주장하면서 2차 집단휴진 여부를 묻는 안건을 상정해줄 것을 변영우 의장에게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이로 인해 의협 집행부가 28~30일 실시한 집단휴진 재개 관련 회원투표 결과도 발표되지 못했다.
그러자 의협은 자체적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전체 2만4847명의 응답자 중 85.8%가 집단휴진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설문조사 결과를 떠나 2차 집단휴진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해 보인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노 회장 주도로 이뤄졌던 의·정협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