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정서로 진정한 새해를 맞는다. 새해 들어 좀 눈에 안 띄었으면 하는 게 있다. 우선 방송에서 목욕탕 휴게실 같은 곳에서 ‘수건을 둘러쓰고 수다를 떠는 연예인’ 프로그램을 대폭 줄었으면 좋겠다.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로 전파 낭비를 안 했으면 한다. 연예인 스스로 망가져 웃음거리가 되고 이것에 멍 때리는 시청자가 애달프다. 한번 연예인이 되면 평생 연예인이라 늘어난 종편, 케이블방송이 잊혀져가는 연예인들에게 활로를 열어줬다는 게 그나마 성과일지….
국민의 방송에서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습니다’라는 자막도 그만 내렸으면 한다. KBS 전체 직원 4805명 중 절반 이상인 2738명(57%)이 2012년 기준으로 연봉 1억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KBS에서 종편들이 지나치게 ‘보도’‘시사’ 프로그램을 지나치게 많이 편성한다고 지적했다. 별 다를 게 없이 ‘희희덕’거리는 오락프로그램보다 우편향이란 비난을 듣더라도 보도프로그램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시청자가 비판적으로 수용할 역량이 있다면 말이다. 드라마, 오락프로그램이 돈없고 취미없는 서민에게 유일한 낙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언론인이나 저명 칼럼니스트들이 대통령이나 이슈가 된 인사들에게 편지 쓰는 형태의 칼럼은 줄었으면 한다. ‘전지전능해서 한 수 가르쳐주고 싶다’, ‘현장과 민심은 이런데 당신은 잘 모르지, 내가 충고해줄까’ 하는 식의 글들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감이 없을리 없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경청하기 싫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신문, 방송은 한물 가고 인터넷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까지 들썩거리면 외면하기도 힘들다. 그냥 있는 현실을 그대로 적시하고 베베 꼬지 않고 드라이하게 비판하면 좋겠다.
정치가 삼류이긴 하지만 뭔가 안되면 ‘정치’ 탓으로 돌리지는 말자. 정치판은 우리 국민의 수준을 여실히 담아놓은 축소판이다. 게다가 의원들이 게을러 법을 덜 만들면 규제가 덜하니깐 나쁠 것도 없잖은가. 산적한 ‘민생법안’‘경제활성화법안’이 국회서 막혀 있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꼭 필요한 법안은 몇 안된다. 중기가업승계법안 같은 것, 중기를 소유한 오너 가족에게 너무나 큰 절세 혜택 아닌가. 다주택 양도세 중과 폐지 조항을 경제활성화 법안이라고 칭하니 가난한 사람에겐 남의 나라 얘기다.
재력가에 대한 아부가 넘쳐난다. 탈세·배임·횡령·비자금조성하다 감옥에 간 재벌들을 위해 ‘오너 부재로 획기적 투자결정이 늦어지고 경영이 표류하고 결국 국민에게 손해가 간다’는 식의 기사가 비일비재하다. 검사와 법원에서 알아서 할 일인데 선처해달라고 군불이라도 지피는 식이다. 공을 세워 무엇을 바라는 게 있다.
국산맥주가 분명 맛 없다는 것은 애주가라면 다 아는 얘기인데 지금의 맥주맛이 한국인의 취향에 맞춘 거라는 변명이 우습다. 블라인드 테스트해보면 오히려 우리나라 맥주가 더 낫다는 얘기는 또 뭔가. 맛은 눈 뜨고 색깔과 향기까지 느끼면서 마셔야 온전히 알 수 있다. 최근 5년만에 인베브에 재매각되면서 OB맥주(카스)의 몸값이 5년만에 18억달러에서 3배가 넘는 58억달러로 뛰었다. 성공 경영의 표본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게 어디 품질(향미)의 향상 덕인가. 경쟁사인 하이트가 자만하고 지질하게도 영업을 못한 덕, 몇 십원 낮은 단가로 음식점·술집에 밀어넣은 점유율 확대 지상주의 전략 때문이다.
운전매너가 순해졌으면 좋겠다. 공연히 경적을 울려 놀라게 하는 운전자가 줄어야 한다. 경적을 울릴 만큼 바쁘다면 몇십분 더 서둘러야 했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Baby in car)’라고 붙이고 다니면서 마구 끼어들면서 아기의 평화스러운 이미지와 딴판인 운전매너는 왜 나올까. 백밀러 보이는 곳만 조금 열어둔 짙은 선팅 속에서 은둔형 난폭운전하는 사람은 암흑 속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시라. ‘모범’이란 말이 무색한 덩치 큰 모범택시 운전사도 오랜 운전경력을 스스로 욕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똑같은 포맷에 비슷하게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걸그룹, 너무 이것저것 넣어 느끼해서 못 먹게 만든 퓨전음식 등을 한류라고 하는 것도 거슬린다. 아무래도 우리 것이 아닌 듯한 재즈나 블루스가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라고, 유니크하다고 자화자찬하는 것도 병일 듯 싶다.
사람보다 개나 고양이가 더 대접받는 현실에선 ‘인본주의’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통일을 두려워하고 걱정스러워하는 젊은층에게 기성세대는 뭘 가르쳤을까. 역사의식은 바닥이고, 개인주의는 ‘만땅’이다. 이 모든 부조리하고 경망스러운 것과 작별하는 새해가 되길 빌어본다.
하지만 이러고 보니 뒤가 가렵다. ‘너나 잘 하세요’, ‘당신은 진정 행복하세요’, ‘그게 우리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죠’ 같은 숨이 턱턱 막히는 말로 이 모든 비판을 공허하게는 하지 말자. 정반합의 자세로 더 나은 가치를 위해 고민하고 갈등 속에서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