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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지증후군, 자신의 삶 찾는 ‘터닝포인트’로 삼아야 상실감 떨친다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1-15 16:25:39
  • 수정 2019-12-02 14: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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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가 장성하기 전 미리 자신만의 독립된 삶 준비하고, 자아존중감 높여야 현명하게 극복

빈둥지증후군은 주로 중년의 주부가 자녀들이 장성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잃었다고 느껴 겪게되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대치동 엄마’인 주부 백 모씨(44)는 지난해 초부터 심하게 울적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수능을 마친 외동딸이 수능을 보고 대학 합격장을 받은 뒤부터다. 백 씨는 초등학교때부터 딸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매일 자가용으로 데리러 오가며 거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대입이 끝나자마자 딸은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시간이 늘고,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시험공부, 취업준비를 빙자해 얼굴보기도 어려워졌다. 도와주려고 해도 괜찮다하고, 남자친구가 생긴 뒤부터는 더욱 바빠졌다. 남편은 원래 얼굴보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백씨는 넓은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오전시간이 제일 싫다. 한번은 너무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엉엉 울기도 했다. 가족에게 큰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 자꾸만 든다. 한편으론 아이가 잘 된게 기쁘기도 하지만 막상 ‘내 인생은 뭔가’하는 생각이 든다.

주부 오 모씨(54)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딸이 시집가게 되면서다. 남편은 친구들과 낚시를 가는 등 취미생활을 하면서 자기시간을 잘 보내는 것같지만 오 씨는 왠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언젠간 당연히 딸이 시집을 가고 독립할 것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코앞으로 닥치니 기분이 우울하다. 결혼식을 마친 뒤에는 집안일도 하기 싫고 멍하게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시간이 늘고 있다. 딸에게 전화하니 “아직 정리하느라 바쁘니 이따가 다시하겠다”는 말만 돌아와 서운하다. 괜히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네’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편은 낚시하러, 딸은 신혼생활에 즐겁지만 나는 이 집에서 혼자 뭐하고 있나 하는 마음이 커진다.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으로 마음앓이하는 중년 여성이 늘고 있다. 이 증후군은 애정의 보금자리로 생각했던 가정이 빈 둥지로 전락하고 자신은 빈껍데기 신세가 됐다는 불안하고 우울해하는 심리적 현상 일체를 말한다. 주로 중년의 주부가 자녀들이 장성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잃었다고 느끼면서 폭발한다. 남편은 바깥일에 몰두하느라 아내의 기대감을 채우지 못하고, 여성이 아닌 가족으로 대하면서 소통이 단절된다. 특히 자녀들이 커가면서 진학·취직·연애·결혼 등 각자 생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소홀해짐을 느낄 때 증후군이 표출된다.

이민수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교수는 “빈둥지증후군은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여성에서 흔히 발견되며 이를 방치하면 우울증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병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요즘 엄마들은 인생의 의미나 자신의 삶의 목표를 아이의 성공에 맞춰 자녀에게 ‘올인’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럴 경우 빈둥지증후군에 앞서 과잉보호, 지나친 자녀 컨트롤 등으로 아이들과 멀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가 성공하더라도 독립, 진학, 결혼 등으로 인한 헤어짐이 찾아오면 빈둥지증후군이 찾아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장성한 자녀는 엄마 모르게 마음의 벽을 쌓아 방어적인 자세로 나오는데 엄마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예전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자꾸만 갈등이 생기고 마음의 상처만 깊어지기 쉽다.

이병철 교수는 “누군가와의 헤어짐은 당연히 우울할 수밖에 없고, 특히 자신의 아이들이라면 상실감이 더욱 클 것”이라며 “이런 감정을 느낀 어머니들과 이야기해보면 단순히 ‘헤어짐’이 문제가 아니라 이전부터 가족간에 대화가 없거나, 남편 등과 불화를 빚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 기존에 잠재한 가정불화에 헤어짐의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우울감이 증폭되는 게 빈둥지증후군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취미, 직업 등 내 생활이 있다면 아이들과 떨어진다 해도 이런 증후군은 극복해낼 수 있다.

일례로 전업주부 엄마가 워킹맘보다 이런 증상에 시달릴 확률이 더욱 높다. 육아정책연구소가 10일 발표한 ‘어머니의 취업유형에 따른 영아의 기질, 어머니의 심리적 특성, 양육방식의 차이 연구’ 논문을 보면 전업주부가 일정한 직업을 가진 정규직 엄마보다 양육 스트레스가 더 높았다. 생후 18개월 미만의 자녀를 둔 여성 1863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전업주부의 양육 스트레스 지표는 2.77점으로 정규직 엄마(2.67)보다 다소 높았다. 우울증도 전업주부는 1.95점으로 정규직 엄마(1.82점)보다 높았다.

전업주부는 자아존중 정도에서도 정규직 엄마에 뒤처졌다. 자아존중감 점수는 전업주부가 3.46점으로 정규직 엄마(3.58점)보다 낮았다.  자기효능감 부문에서도 전업주부가 3.66점을 기록해 정규직 엄마의 3.78점보다 낮았다.

전업주부는 워킹맘에 비해 ‘돈을 벌지 않는’ 대신 집안살림, 자녀교육, 남편 뒷바라지, 시부모 봉양 등을 감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아실현 같은 것은 생각해본지 오래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다보니 자아존중감은 떨어진다. 결국 가족이나 아이에게 ‘올인’하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과 대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전업주부들이 이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병철 교수는 “꼭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엄마들은 자신만의 삶을 구축해놔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은 “육아에서의 ‘은퇴’는 인생의 큰 그림에서 그동안의 주어진 역할을 벗어버리고 자기 정체성을 되찾는 행복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돌보았던 자녀들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면 갈등은 커지기 마련”이라며 “대개 갱년기 증상도 같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우울증에 쉽게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우울증에 취약하다.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남편과 달리 전업주부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발병률의 경우 남성은 5∼12%인데 반해 여성은 10∼25%정도로 추산된다.
여성의 가임 기간인 20∼50세의 시기에는 산후우울증, 폐경우울증, 빈둥지증후군, 고부갈등으로 인한 우울증 등이 급속히 높아지는 때다. 이밖에 시부모와의 갈등, 다 자란 아이들이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는 데서 오는 상실감 등이 우울증을 쉽게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유은정 원장은 “이 시기를 내 삶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는 기회로 삼는 게 도움이 된다”며 “그동안 남편과 자녀 때문에 밀려났던 자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계획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 시기에 ‘다이어트’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폐경기 이후에 갑자기 늘어난 체중과 복부지방은 미용적인 면뿐만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된다. 체중조절을 하면서 그동안 등한시했던 자신의 식습관 등을 살펴보고 날씬한 몸매를 되찾아 자신감을 가지면 자식이나 가족이 아닌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병철 교수는 “엄마 자신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변 식구들도 ‘엄마의 서운함’을 알아줘야 할 필요가 있다”며 “보통 대학진학, 결혼 등을 앞두고 엄마가 너무 슬퍼하면 주위 사람들은 ‘좋은 일 가지고 왜그러나’, ‘너무 유별나다’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가장 오랜동안 인생을 함께 겪어온 남편이 풀어내야 할 과제”라며 “과거엔  자식이 여럿 있는데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 이런 문제가 덜했지만, 요즘처럼 핵가족시대에 한둘 키운 아들딸을 품에서 떼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당신이 해 온 것은 결코 의미없는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부부만 남게 되니, 부부가 다시 신혼분위기를 살려 데이트를 하거나 등산 등 취미를 공유하는 등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도 빈둥지증후군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병철 교수는 “요즘 엄마들은 자녀에게 너무 올인하는 경향이 크다”며 “더 이상 자녀가 중심이 된 인생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가치를 발견하고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상실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제일 좋은 것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주변 사람들, 선배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이 시기를 자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물치료나 상담치료에 앞서 사람들과 모임을 갖고, 여행도 다니고, 취미활동도 시작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유은정 원장은 “빈둥지증후군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엄마들은 상실감으로 인한 우울증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버림받았다는 분노와 화병으로 이런저런 신체증상들을 호소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한창 바쁘게 직장에서 일하고 결혼으로 새 가정을 꾸미는 자녀들에게 짐이 되기도 한다”며 “자녀와 독립된 삶을 미리 준비할 때 자녀들도 건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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