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을 금기시하는 서양인들도 굴은 먹는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굴은 글리코겐 등 영양분이 넘쳐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바야흐로 굴의 계절이다. 굴은 전 세계인이 즐겨먹는 패류다. 날것을 먹지 않는 서양인들도 생굴은 먹는다. 일본의 ‘굴’ 메카인 히로시마에는 겨울이면 굴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가 지질 및 글리코겐의 함량이 증가해서 맛이 좋을 때다. 산란기인 5~8월(May, June, July, August)에는 굴이 독성을 지니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영어 단어에 R자가 들어가지 않은 달에는 굴을 채취하지 않고, 먹지도 않았다. 이 때에는 바닷물에 여러 종류의 비브리오균, 살모넬라균, 대장균이 많아지기 때문에 먹어도 익혀서 먹는 게 바람직하다. 한겨울에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위험이 적지만 신선도 유지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굴(학명은 Ostrea rivularis Gould)은 굴과나 벗굴과 등에 속하는 모든 쌍패류를 가리킨다. 고착생활을 하며 거의 1년만에 다 자란다. 서식 장소에 따라 껍질이 일정하지 않으나 대략 1년에 길이 약 7cm·무게 약 60g, 2년에 10cm·140g 정도로 크며 이후의 성장은 느리다. 껍질의 안쪽면은 흰색이고 두 조가비가 맞물리는 곳에 이가 없다. 굴은 소금의 농도가 낮은 해안에서 서식하며 1년만에 다 자란다.
우리나라 연안이나 일본, 대만 근해에 분포하고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독특한 맛과 향기가 있어서 예전부터 식용이나 약재로 많이 사용해왔으며 최근에는 대부분 양식해서 공급하고 있다. 굴은 석화(石花)라고 부르고, 그 껍질 가루는 모려분(牡蠣粉)이라 부르며 하루에 5~20g을 한약재로 사용한다.
성욕증강 관련 아연·글리코겐·아르기닌 등 풍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선 굴의 외양이 남성의 고환 또는 여성의 성기와 닮았다 하여 ‘사랑의 묘약’이라 불렀다. ‘굴을 먹어라, 그러면 더 오래 사랑할 수 있다(Eat oyster, love longer)’라는 서양 속담과 해산물을 날로 먹지 않는 서양인이 굴만은 생으로 먹는다는 사실을 놓고 봐도 서양에서 굴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카사노바가 매일 굴을 먹고 정력을 보충했다는 얘기도 있다. 반대로 고대 유대인은 금욕 생활을 위해 굴을 멀리했다.
굴은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 조개류 가운데서는 육질이 부드럽고 소화와 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비타민과 무기질류의 공급원으로서 바람직하다.
껍질을 제외한 굴의 성분은 수분 77.4%, 단백질 18.5%, 지질 1.3%, 당질 0.2%, 회분 1.3% 등이다. 지용성 비타민인 A와 D를 비교적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무기질 성분으로서는 아연과 칼슘을 비롯해 철분, 마그네슘, 구리, 셀레늄, 요오드 등이 많이 포함돼 있다.
굴이 정력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주로 아연,아르기닌, 글리코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굴에 들어 있는 아연은 90㎎이나 되는데 꼬막의 1.5㎎에 비해 60배나 많다. 굴의 아연 함량은 계란의 20배, 돼지고기의 10배로 다른 식품에 비해 월등히 높다.
아연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생성에 도움을 주고, 정자의 생성과 활동성 증가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정자를 꺼내 시험관에 넣고 아연을 투여하면 정자의 활동성이 증가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여성호르몬 생성에도 이로워 생리불순을 치료하고 배란을 촉진한다. ‘배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지만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피부가 하얗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아연은 셀레늄과 함께 ‘섹스 미네랄’로 불린다. 굴을 두 세 개만 먹으면 아연의 하루섭취권장량이 채워진다.
아연이 부족하면 미각이나 취각에 이상이 온다. 미식가들에겐 생명처럼 소중한 감각들이다. 또 아연 부족으로 성장 발육이 더뎌질 수 있다. 현대인들은 정제식품이나 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해 아연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자주 섭취하는 게 좋다.
아르기닌은 발기과정에 필요한 산화질소의 원료가 되는 아미노산이다. 비아그라 이후 등장한 먹는 발기부전 치료제들은 음경혈관을 확장시키는 산화질소의 특성을 이용한 약이다. 아르기닌은 정자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다. 아르기닌을 섭취하면 정자 수가 증가하고 정자의 활력이 커진다.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는 굴은 에너지원인 글리코겐도 많아 원기회복에 좋다. 굴의 당질은 대부분 글리코겐이다. 육체노동이나 운동을 심하게 하면 체내에 저장돼 있던 글리코겐이 고갈되면서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잦은 성생활로 활력이 떨어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굴은 소화가 잘되는 단백질 덩어리다. 다량의 아미노산을 공급할 뿐 아니라 유리아미노산 형태로도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음주로 인해 지친 간에 효과적으로 아미노산을 보충해서 숙취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 알코올은 간으로 흡수되기 전에 일차적으로 위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위벽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알코올은 위염이나 위궤양을 악화시킬 수 있으나 굴의 표면에 미끈거리는 성분은 위벽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 술과 함께 먹으면 위벽을 보호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아미노산 중 타우린은 과음으로 인한 간기능 저하를 완충해주기 때문에 굴은 독주를 좋아하는 애주가들에게 좋은 안주가 된다.
굴은 멜라닌 분해 효과가 있다. 풍부한 단백질이 피부의 탄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비타민C가 피부의 노화를 막아준다. 또 굴은 대표적인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특히 굴의 단백질은 필수아미노산의 비율이 높아 질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소화가 아주 잘 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소화력이 약한 노인이나 환자들의 회복식으로도 적당하다. 굴의 콜레스테롤 함량은 꽤 많은 편이지만 굴을 먹었을 때 혈중 콜레스테롤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굴에는 포화지방산이 적고 아미노산의 타우린 성분이 혈중 콜레스테롤 상승을 억제해주고 혈압도 내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굴에 포함된 칼슘은 콜로이드 형태로 쉽게 흡수되고 멸치 다음으로 양이 많아 어린이의 성장과 여성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이밖에 구리, 철, 마그네슘, 요오드 등의 무기질도 다량 포함하고 있다. 굴에 포함된 마그네슘은 외부 자극에 의한 과도한 신경흥분을 억제하기 때문에 정신적·육체적 긴장을 풀어주고 혈관의 탄력성을 유지시켜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예방에 도움을 준다.
철분은 보혈효과를 낸다. 굴은 철분이 풍부해 젊은 여성에게 흔한 빈혈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굴을 8개만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철분이 충족된다. 악성빈혈을 예방해주는 비타민 B12도 상당량 들어 있다.
굴껍질은 80~95%가 탄산칼슘이나 인산칼슘이다. 나머지는 마그네슘, 규소, 산화철, 알루미늄 등이다.
마르고 식욕없는 사람 소화기능 북돋워 … 태양인 추천, 태음인 자제
굴은 육질이 부드러워 마르고 식욕 없는 사람의 소화기능을 북돋우고 영양을 보충해주며 혈색을 곱게 하고 살갗을 부드럽게 한다.
굴은 성질이 차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로 열이 자주 달아오르는 사람이나, 갈증이 심하게 나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또 굴은 간기능을 도와주고 보혈작용을 해서 빈혈이 있는 사람에게도 좋다. 굴은 몸이 야위고, 물을 많이 마시면서, 식욕이 없고 소화기능이 약하거나 음식을 먹고 나서 잘 토하는 사람에게 강장제로 추천할 만하다.
반대로 몸이 지나치게 차갑거나, 비린내를 싫어하거나, 맥이 약하거나, 식욕이 바닥으로 떨어진 태음인이나 소음인은 많이 먹지 않는 게 좋다.
사상체질의학에서는 굴을 태양인의 음식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태음인은 많이 먹지 않도록 권하고 있다.
굴껍질인 모려분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식은 땀이 날 때 사용한다. 또 위산과다증이나 설사, 몽정을 자주할 때도 효과가 있다.
포실하고 달달한 통영굴 ‘최고’ … 맵고 짭조름한 서산 ‘어리굴젓’ 매력 굴은 껍데기를 꽉 다문 게 싱싱한 것이다. 굴은 흔히 날로 먹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초고추장, 서양에서는 레몬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초고추장이나 레몬이 굴의 비린내를 없앤다. 초고추장의 초산이나 레몬 속에 포함된 구연산이 생굴에 있을 수 있는 세균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해수의 온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굴이 비브리오균에 감염될 수 있고 이를 먹으면 비브리오 장염에 걸리며 초기에 치료되지 않으면 비브리오 패혈증이라는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간염환자,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은 당뇨병 환자,고령 노인,여러 질환이나 약물에 의해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기온이 높은 여름에는 굴을 익혀 먹는 것이 안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통영굴이 가장 유명하다. 통영굴은 국내 시장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물이 깨끗한 데다 낙동강과 섬진강 중간에 위치해 플랑크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해지방의 굴은 언제나 바닷물 속에 담겨 있어 씨알이 굵고 3년이 지난 것은 사람의 손바닥만 해진다. 무를 살짝 얹거나 간장에 초를 쳐서 찍어먹는 겨울철 생굴의 맛은 각별하다. 물컹거리는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찌거나 구워 먹는 것이 좋다. 탱탱하고 포실하게 자란 통영굴은 달다.
남해 통영의 굴이 크고 단맛 나는 식감이라면 서해 서산의 어리굴은 작지만 옹골차다. 서해안의 굴이 씨알이 작은 이유는 썰물 때엔 바깥세상에 노출됐다가 밀물 때에만 바다 속으로 들어가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크기는 작지만 맛으로는 유명하며 회,굴밥,구이 등으로 먹기에 좋다.
특히 어리굴하면 어리굴젓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리굴젓은 충남 서산 간월도의 자연굴로 만든 명품 젓갈이다. ‘얼간’이 ‘짜지 않게 간하는 것’을 뜻하므로 어리굴젓은 ‘짜지 않게 담근 굴젓’을 말한다. 얼얼한 고춧가루의 맛이 탱탱하고 은근한 단맛 속에 밴 어리굴젓과 섞여 상큼한 맛을 내고 따뜻한 밥과 잘 어울린다. 단지 매운 맛이 아니라 매콤하면서 단맛이 돈다.
어리굴젓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한해’(韓醢)라고 칭하며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한효순의 손자가 서산에 낙향했을 때 그의 부인이 고춧가루로 어리굴젓을 담근데서 연원이 시작됐다. 어리굴젓의 가장 중요한 양념이 고춧가루임을 감안하면 어리굴젓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최고의 미식가였던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고원(함남)과 문천(강원도 고성 이북)에서 나는 것은 크지만 맛은 서해에서 나는 작은 것만 못하다”고 적었다.
굴은 국내서 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밀가루를 입혀 튀겨 먹는다. 힘이 부치고 생각이 많은 태양인과 소양인은 생굴도 좋지만 구워먹거나 찜 또는 전으로 부쳐 다양하게 먹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