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태 관동대 제일병원 비뇨기과 교수가 남성 불임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유교문화권인 한국에서 불임(不妊)은 전적으로 여성의 잘못으로 여겨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 이런 말을 했다간 몰상식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당하기 쉽다. 사회적으로 여권이 신장된 것은 물론 남성으로 인한 불임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결혼 전 남성의 정자의 건강상태나 성병 감염여부 등을 확인하는 이른바 ‘웨딩검진’이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남성 난임의 주요 요인은 △정계정맥류(varicocele) △폐쇄성·비(非)폐쇄성 무정자증 △발기부전 및 중추·자율신경 장애 등이다. 서 교수는 “정계정맥류는 남성 난임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 전체 환자의 20~40%를 차지한다”며 “이 질환을 앓으면 음낭의 혈관이 늘어나면서 정자의 수가 줄어들고 운동성도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자는 생성되지만 지나가는 통로가 막힌 폐쇄성무정자증과 고환 자체에 문제가 생겨 정자가 생성되지 않는 비폐쇄성무정자증도 남성 난임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최근 결혼 전 비뇨기과를 찾아 정자검사나 성병검사 등을 받는 20~30대 남성이 늘고 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검사 절차가 간편하고, 비용이 5만~8만원 정도로 저렴하며, 결과를 1~2일만에 확인할 수 있다. 양윤석 을지대병원 불임클리닉 교수는 “남성은 신체검사와 정액검사를 통해 불임 여부를 쉽게 진단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검사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자검사는 광학현미경을 통해 정자의 수, 활동성, 기형 유무, 백혈구 수 등을 확인하는 것으로 비용은 5~8만원 선이다. 보통 정액검사만으로 불임 원인의 75%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액은 단백질과 약알칼리성으로 구성된 정낭액이 70%, 전립선액이 20%, 요도분비액과 정자가 나머지 10%를 구성하고 있다. 충분한 수의 정자를 얻고 검사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검사 2~3일 전부터는 자위행위나 성관계를 피하는 게 좋다. 그러나 지나친 금욕은 오히려 정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필름통 등 용기에 정액을 모은 후에는 늦어도 1시간 이내에 검사에 들어가야 한다. 정액 특성상 사정 20~30분 후에 점도가 떨어져 거의 물처럼 액화되기 때문이다. 간혹 콘돔에 정액을 담아 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콘돔에 들어 있는 살정제가 정자를 모두 죽여 엉뚱한 검사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정액이 액화되지 않거나 비정상적인 점착성을 보일 경우에는 추가로 성교후검사(postcoital test, PCT)를 실시해 불임 인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고환에서 정자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약 74일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정자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1∼3주 간격으로 총 3회 검사받는 게 좋다. 첫번째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타날 때에는 금주나 금연 등을 실천한 후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 고환 온도가 중심체온보다 3~4도 낮을 때 정자가 가장 잘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적인 정액은 유백색을 띠고, 밤꽃 냄새가 나며, pH 7.2~8.0 정도의 산도를 나타낸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정상 정액의 기준은 △총 사정액 1.5~5.0㎖ △1㎖당 정자 1500만개 이상 △정자 운동성 40% 이상, 직진 운동성 32% 이상 △정자 생존성 58% 이상 △정상적인 정자 형태 60% 이상 등이다. 그나마 이런 기준은 환경오염과 스트레스 심화로 남자의 생식능력이 떨어지면서 2012년 완화된 것이다. 즉 총 사정액은 이전의 2.0㎖ 이상에서 1.5㎖ 이상으로, 정액1㎖ 당 정자수(농도)는 이전 2000만에서 1500만으로, 정자 운동성 이전 50%에서 40%로 각각 낮아졌다.
정액검사에서 정자의 운동성은 수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성이 전혀 없는 정자도 생존 정자일 수 있기 때문에 생존성 검사를 추가로 실시한다. 운동성이 기준치 미달이더라도 전체 정자의 75% 이상이 생존상태로 나타나면 정상이라고 판정한다.
정자 형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파파니콜로(Papanicolaou) 염색을 통해 100~200개 정자의 머리 모양과 크기, 목과 중간 부위 결함, 꼬리 결함 등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자 형태가 60% 이상일 때 정상이라고 판정한다. ‘크루거(Kruger)의 정자형태에 대한 엄격한 기준치’는 기준이 더 엄격해서 정상 정자의 비율이 15% 이상일 때 임신 가능성이 높으며, 4% 미만일 경우에는 수정률이 매우 낮다. 사람의 정자는 다른 동물에 비해 비정상적인 형태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정자의 모양이 조금이라도 이상할 경우 비정상적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기준치가 높아진 것이다.
정액내 백혈구 수는 ㎖당 100만개 이하가 적당하며 그 이상일 경우 정자기능에 악영향을 끼치는 농정액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백혈구내 호중구(neutrophil)라는 세포는 활성산소를 분비해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막을 손상시키고 정자기능을 떨어뜨린다. 정액검사 결과 이상이 발견되면 혈액내 생식선자극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을 측정한 후 염색체검사, 유전자검사, 항정자항체검사, 고환생검 등을 시행한다.
호르몬 검사는 남성의 내분비기능 장애로 난임이 왔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남성 난임 중 내분비기능의 장애로 유발되는 비중은 전체의 약 5% 미만으로 많지 않다. 호르몬 결핍으로 인한 남성 난임은 중등도 이상의 심한 정자감소증과 여성형유방이 드러나기 때문에 사실상 이런 검사를 받지 않아도 대충 난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는 혈청내 성선자극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만을 검사한다. 성선자극호르몬(Gn:gonadotropin)은 뇌하수체 전엽에서는 분비되는 황체형성호르몬(LH:luteinizing hormone), 난포자극호르몬(FSH:follicle stimulating hormone), 프로락틴(prolactin 유즙분비호르몬 또는 황체자극호르몬), 등을 의미한다. 이들 호르몬은 성선(고환과 난소)에 작용해 생식기능을 돕는다.
남성의 성선기능저하증은 고환 자체의 1차성 결함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의 결함으로 고환이 2차적으로 기능을 상실해 치료가 가능한 경우로 분류하기도 한다. 성선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내분비학적 자극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으나, 통상적으로는 내분비검사와 정액검사 결과를 종합 판정해 원인을 파악한다.
맥동성 분비가 심하지 않은 FSH농도로 생식 상피의 상태를 추정할 수 있다. 무정자증이거나 심한 정자감소증인 경우에 FSH 농도가 높으면 회복불능의 생식세포의 손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FSH농도가 정상으로 나타나더라도 난임인 경우도 있어 정로폐색 또는 생식세포손상인지 감별하기 위해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항정자항체 검사는 정자에 대한 항체의 존재여부를 알아내는 불임검사법이다. 한 동물에서 다른 동물로 정자를 투여하면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정자는 높은 항원성을 갖고 있어 정자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면 수정률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 항정자항체는 남성과 여성에서 동시에 발견되는데 IgG나 IgM으로 알려져 있다. IgG는 혈청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자궁경부점액 및 정액에서 발견된다. IgA군의 응집항체는 특이적으로 자궁경관점액 및 정액에서 발견된다. 더 큰 분자량의 IgM 항체는 생식관의 점액을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적으로 혈청에서 발견된다.
항정자항체가 생기는 원인은 확실치 않으나 다인자적이다. 성교시 여성은 수십억개이 정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지만 면역학적인 반응은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면역학적인 반응을 보이는 여성에서 항정자항체가 나타나는 것은 정자가 질상피에 손상을 입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남성의 혈액-고환 장벽(blood testis barrier)은 정상적으로 정자항원의 노출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장벽이 고환손상, 염좌, 정관복원술, 생식관 감염 등 해부학적 이상으로 인해 항원에 노출되면 면역반응을 유발해 항정자항체가 생성되게 된다.
고환 생검은 고환 크기가 정상인데도 정액검사와 내분비검사로 무정자증 또는 심한 정자감소증의 원인을 추정할 수 없을 때 실시한다. 그러나 이 검사는 역행성 사정과 선천성 경로 형성부전을 알아보기 위해 철저하게 침습적으로 이뤄지므로 오히려 고환기능의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최대한 최후의 검사로 미루는 것이 좋다. 최근엔 과거에 쓰이던 개방생검법 대신 경피적 천자생검법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정자투과검사(sperm penetration assay, SPA)는 정자기능에 대한 검사법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정자가 직접 난자에 침투해 수정할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한다. 이 검사는 투명대가 제거된 햄스터의 난자와 인간의 정자를 수정 및 배양시킨 후 난자에 전핵(정자의 머리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 전핵을 형성한 난자의 비율이 10~20% 이상이면 정상으로 판정한다. 일반적으로 난자는 동종의 정자만을 받아들이는데, 햄스터의 난자는 투명대를 제거할 경우 인간의 정자와도 수정이 가능해 검사체로 활용되고 있다.
투명대는 난포상피세포에서 분비하는 포유류 난자의 투명한 난막으로 정자와 결합하면 벗겨지면서 수정을 유도하고 자궁 속에서 효소에 의해 완전 용해돼 착상으로 이어진다. 난자를 보호하고 다른 정자와의 추가 수정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투명대 결합검사(human zona-binding assay)는 인간의 난자에 있는 투명대를 반으로 나눈 후 한 쪽은 검사를 원하는 정자를, 다른 쪽은 정상 정자를 수정시켜 결합 비율을 비교한다. 정자투과검사는 햄스터 난자를 대상으로 하는데다가 투명대를 제거한 뒤에 이뤄지므로 정자의 투명대 통과능력을 확인하는게 불가능하지만 투명대 결합검사는 인간의 난자를 대상으로 정자의 수정능력을 직접 평가할 수 있어 정확도가 높은 편이다.
불임은 피임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치료를 통해 임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 난임(難妊)으로 바꿔 부르는 추세다. 35세 이상 여성의 경우 6개월간 임신이 안될 때 난임을 의심할 수 있다.
남성 난임을 예방하려면 금연, 절주, 방열이 필수적이다. 흡연은 정자의 가임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하루에 20개비(한 갑) 미만의 담배를 필 때에는 정액의 사정량만 감소하지만, 20개비 이상을 피는 경우 정자의 밀도와 운동성도 줄어든다.
과음도 남성호르몬의 농도를 감소시켜 남성의 여성화를 초래하고 생식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아울러 척수반사(spinal reflex)가 줄어들면서 음경의 신경반사기능을 저해하고, 결국 발기력에 문제가 생겨 성관계가 힘들어지게 된다.
열(熱)은 정자를 생성하는 데 악영향을 끼치는 원인이다. 실제로 최근 연구결과 고온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제빵사, 운전자, 용접공, 조리사 등 직업군은 정상적인 정자의 비율이 다른 직업군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사우나나 뜨거운 욕조를 자주 이용해도 생식력이 감소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
요즘 남성들도 즐겨입는 스키니진 등은 고환을 압박해 정자 수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서 교수는 “난임으로 고민하는 남성은 음주와 흡연을 삼가고, 사우나나 뜨거운 욕조에서의 목욕을 줄이며, 되도록 넉넉한 바지나 속옷을 착용하는 등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성 난임의 치료법은 크게 약물(호르몬)치료, 수술, 체외수정 등이 있다. 정액검사 결과가 비정상이고 성선자극호르몬이 부족하다면 호르몬 보충요법으로 정액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 정계정맥류가 있는 경우에는 음낭 내 늘어난 혈관을 묶어 교정하는 정계정맥교정술, 정자가 지나가는 통로가 막혔을 때에는 이를 뚫어주는 현미경 이용 교정수술 등 수술적 치료를 실시한다.
그러나 약물·수술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고환·부고환에서 정자를 추출해 체외수정을 해야 한다. 김재헌 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불임으로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신뢰”라며 “난임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인공수정도, 입양도 아니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되 부부사이의 사랑을 지속하며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