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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선행학습’에 지친 아이, 뇌 멍들고 있다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3-10-15 13:00:34
  • 수정 2013-10-17 12: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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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중추인 해마신경세포 손상, 우울증 등 정신질환 유발 … 서울대생 84%, 복습이 가장 중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을 둔 박 모씨(42)는 요즘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얼마전 학부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딸아이의 학교를 방문했다가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선행학습의 중요성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한 학부모가 “우리 아이는 이미 중학교 1학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신의 딸은 너무 늦은 게 아닌가하는 마음에 선행학습 관련 내용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지만 정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선행학습은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약 2~3년 후에 배울 교과과정을 미리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행학습과 예습은 기간이나 방법 등에 있어 약간 다르다. 예습은 최대 1주 미만의 수업내용을 간략히 훑어봄으로써 학습능률과 수업이해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선행학습은 특목고 열풍이 몰아치던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기에 학원 등 사교육기관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대입에 실패한다면서 학부모들의 걱정을 부채질했다. 일관성 없이 수시로 바뀐 입시제도도 이같은 현상을 부추겼다.

지난해 9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은 전국 8개 시·도의 17개 사교육 과열 지구지역 초·중·고교생 7087명을 대상으로 ‘수학 선행학습’ 실태를 조사한 결과 70.1%가 최소 1개월 이상 학교 진도보다 빠르게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선행학습 참여율은 초등학생이 80%, 중학생 69.8%, 고등학생은 59.8%로 조사됐다. 특히 초등학생의 15.5%, 중학생의 21.2%는 2년 후에나 배울 내용을 공부하고 있었다.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로는 ‘미리 배워두면 학교수업을 받는 데 유리할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2년째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임 모씨(27)는 “선행학습은 예전에 비해 열풍이 다소 누그러들기는 했지만 일부 학부모 사이에서는 여전히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선행학습으로 효과를 본 학생이 있는 반면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 등 개인차가 크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뇌연구원은 과도한 주입식 선행학습은 스트레스를 유발해 뇌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서유헌 한국뇌연구원장(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은 “두뇌와 교육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은 뇌 건강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져 왔다”며 “아이의 창조성이나 인성의 발달보다는 어떻게 하면 남보다 ‘일찍’, ‘많이’ 학습시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인지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계적 선행학습 등 반복적인 스트레스로 해마 신경세포의 수상돌기가 위축된 모습

뇌는 성인이 돼야 기본 구조와 신경세포 사이의 회로가 완성된다. 이 때문에 성장 중인 아이는 뇌신경세포가 엉성하고 가늘다. 이런 상태에서 조기교육이나 선행학습을 과도하게 시키는 경우 뇌에서 일종의 과부화가 일어나 과잉학습장애증후군, 우울증, 애착장애, 각종 정신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전선이 엉성하거나 가늘게 연결된 상태에서 전류가 과도하게 흐르면 불이 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서 원장은 “무분별한 선행학습은 아이에게 반복적인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며 “이런 경우 기억중추인 해마신경세포에서 정보전달이 이뤄지는 수상돌기가 망가지고 위축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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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의 또다른 문제는 학생이 학습내용을 알고 있다는 우월감에 빠져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열린사회참교육학모회는 최근 발간한 ‘왜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할까’에서 “지나친 주입식 선행학습은 한창 호기심이 많을 아이의 지적능력과 창의성을 떨어뜨리게 된다”며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해 수업의 흐름을 깨거나 아예 수업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밝혔다.

진짜 공부실력은 주입식 암기가 아닌 학습내용을 스스로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데에서 나온다. 그러나 선행학습은 짧은 기간에 과도한 범위를 배우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태에서 자만심으로 학교수업까지 소홀히한다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2000년대 초 한국교육개발원이 상위 30% 학생의 국어성적에 대해 선행학습(개인과외 및 학원수강 포함)을 받은 집단과 안 받은 집단을 비교한 결과 중2 중반부터 선행학습군의 성적이 대조군보다 떨어졌으며, 특히 중3·고2 때의 점수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선행학습의 폐해는 언어영역보다는 수리영역에서, 중학교보다는 고등학교 교과목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 에듀플렉스에듀케이션 관계자는 “선행학습으로 공부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면 장거리 마라톤과 같은 고교 교과과정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며 “특히 수학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이해를 많이 해야 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단순 암기에 길들여진 경우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만족이 없는 강제적인 선행교육은 인지기능·언어능력·수리능력 등을 담당하는 좌뇌를 혹사시킨다. 반면 감정과 본능, 창의성을 관장하는 우뇌의 활동은 억제된다. 이 때문에 선행학습에 지친 일부 청소년은 우뇌활동이 억제된 나머지 폭력, 인터넷중독, 본드 흡입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감정적인 충족감을 느끼려 한다. 서 원장은 “우리 교육의 70% 이상은 암기 위주이기 때문에 주로 좌뇌의 기능만 발달시킨다”며 “이같은 반뇌(半腦)교육보다는 좌·우뇌를 균형적으로 발달시키는 전뇌(全腦)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선행학습보다는 꾸준한 복습이 성적을 향상시키는 비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서울대 학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4%가 ‘복습을 철저히 했다’라고 응답했다. 복습과 선행학습의 비율을 어떻게 나눴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복습 90%·선행학습 10%’라는 응답이 37%로 1위를 차지했다. 왜 복습에 많은 비중을 뒀냐는 질문에는 대부분의 학생이 ‘복습을 해야 배운 것을 정확하고 완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정철희 한국자기주도학습연구회장은 “수업시간에 완벽하게 이해한 내용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며 “복습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좌우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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