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검사해도 염증없고 소변 볼 때 통증 없는 게 특징 … 빈뇨·절박뇨 있다면 정확한 진단 필요
회사원 이 모씨(여·29)는 최근 굴욕적인 일을 겪었다. 친구와 쇼핑을 하던 중 딱히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길 한복판에 주저앉은 것이다. 다급하게 가게에 들어가 화장실을 써도 되냐고 양해를 구한 뒤 허겁지겁 볼일을 해결했다.
이 씨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친구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친구는 ‘요실금 아니냐’며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다. 이 씨는 출산경험이 없는 젊은 나이에 그럴 리가 있냐며 반문했지만, 이후에도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심한 잔뇨감을 느끼고, 절박하게 소변이 마려운 경험을 몇 번 겪고서야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요실금이나 방광염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과민성방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과민성방광이란 방광의 감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방광근육이 수축하는 질환이다. 방광염일까 소변검사를 해 봐도 염증은 발견되지 않고, 소변을 눌 때 통증도 없다. 말 그대로 방광이 너무 예민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소변이 마려운 느낌이 들면서 이를 참을 수 없는 ‘절박뇨’가 발생한다. 임신·출산 등으로 요도 주변 근육이 약화돼 생기는 일반적인 요실금과 과민성방광은 엄연히 다른 질환이지만 과민성방광이 있으면 요실금 증상이 나타나 환자 스스로 구분하기 어렵다.
과민성방광은 아무런 전조증상이나 느낌도 없다가 갑작스럽게 화장실이 가고 싶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소변이 급한 느낌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오줌이 마렵다는 생각이 들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화장실로 바로 뛰어가야 하며,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동안 찔끔거리는 실수까지 저지르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정상적인 사람은 하루에 평균 5~6회 소변을 본다. 하지만 과민성방광 환자는 대개 하루에 8회 이상 소변을 보는 빈뇨가 특징이며, 잠을 잘 때에도 소변이 자주 마려워 일어나게 되는 야간빈뇨를 겪는다.
정상인은 보통 방광에 400∼500㎖의 소변이 차도 참을 수 있다. 방광과 신경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민성 방광은 갑자기 마렵기 시작한 소변을 참지 못하는 절박뇨가 수시로 나타난다. 방광은 신축성이 있어 어느 정도 늘어나도 압력이 높아지지 않고 소변을 보려고 하지 않으면 수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경계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면 과민성 방광이 나타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질환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세웅 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보통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식사습관, 카페인·음주를 지나치게 즐기는 생활,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며 “이런 부분이 복합적으로 얽혀 과민성 방광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소변을 자주 본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과민성방광으로 밝혀진 경우도 있다”며 “비뇨기 관련 문제는 아무래도 부끄러운 부분이라고 여겨 치료를 꺼리기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름에 더 빈번하고 악화되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철에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물을 많이 마시거나, 수박 등 수분이 많은 과일을 자주 섭취하면 몸속에 수분이 지나친 증세가 악화될 수 있다.
국내 과민성방광의 유병률은 30% 정도로 여성의 경우 40대 이하에서, 남성에서는 50대 이상에서 흔하다. 심봉석 이화여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정신적인 긴장이 과도한 20~30대 여성에서도 많이 발생한다”며 “20대 이상 여성의 47.8%에서 과민성방광으로 인한 증상 중 하나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의 경우 전립선비대증이 생기면서 50대 이상에서 증상이 두드러진다.
‘배뇨’는 자존심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인간으로서 ‘컨트롤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이를 조절하지 못했을 때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요실금에 더 큰 수치심을 느낀다. 이렇다보니 과민성방광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려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심 교수는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두려워 환자의 60%는 외출이나 여행을 꺼리고, 45%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화장실이 없을 것 같은 장소를 가게 되면 불안해지고 이는 결국 조급함으로 나타난다. 소변 실수를 염려해 짙은 색의 옷을 입는게 습관처럼 굳는다. 이 때문에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과민성방광 치료는 크게 행동치료와 약물요법, 수술치료 3가지로 구분된다. 행동치료의 큰 원칙은 ‘소변참기’다. 소변이 마렵더라도 30분 정도 의도적으로 소변을 참았다가 화장실에 가며, 2주 간격으로 참는 시간을 늘린다. 이규성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소변을 참으면 병이 된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소변을 참을 때에는 항문 괄약근을 강하게 조여주면 방광 수축이 억제돼 과민성방광 환자에게는 효과적인 교정법”이라고 말했다.
이 질환에는 약물치료가 가장 선호된다. 보통 항콜린제를 처방한다. 부교감신경의 작용을 통제해 방광 수축을 억제하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예전에는 방광 이외의 다른 장기에 영향을 미쳐 구갈·시력저하·변비 등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최근에 개발된 약물은 이런 부작용을 크게 개선했다.
이 교수는 “약물은 최소 3∼6개월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며 “약물치료는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증상을 조절하는 치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방법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계속되면 수술을 고려하기도 한다”며 “수술은 방광 주위 신경을 절단하거나 전기로 척추신경을 자극하는 방법 등이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주름개선제로 유명한 엘러간의 ‘보톡스(성분명 보툴리눔톡신A형, Botox)’가 기존 항콜린제로 효과를 보이지 않거나, 내성을 보이는 환자에게 적합한 과민성방광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보톡스를 방광근육에 주입해 방광을 이완시키고 방광의 저장능력을 증가시켜 요실금 발병을 감소시키게 된다. 임상시험에서는 12주째 요실금 발생횟수를 50% 이상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으로는 요로감염, 잔뇨가 나타날 수 있다.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것도 치료에 있어 중요하다. 전문의들은 평소 탄산이나 카페인이 든 음료를 멀리하고 적정한 수분 섭취로 방광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고 입을 모은다. 이사라 이대여성암병원 부인종양센터 교수는 “과민성방광으로 인한 요실금 치료는 의외로 생활습관만 조절된다면 어렵지 않다”며 “일단 커피부터 끊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카페인, 탄산, 너무 자극적인 음식 등은 방광을 더욱 과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식이조절은 필수”라며 “하루에 한 번 항콜린성 약제를 복용하면 이러한 증상은 많이 호전된다”고 조언했다.
외출했을 때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쉽게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한비뇨기과학회와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는 가까운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화장실 SOS’ 앱을 무료 배포하고 있다. 이 앱은 스마트폰 위치 기반 서비스를 이용해 현재 위치에서 반경 25m~5km 이내에 있는 공중·개방 화장실을 알려준다. 과민성방광 등 배뇨장애 환자가 밖에서 급하게 볼일을 보고 싶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 회장인 이규성 교수는 “배뇨장애 환자는 외출 시 갑작스런 절박뇨 증상이 나타날까 걱정해 외출을 기피하는 환자들이 매우 많다”며 “앱을 통해 환자들이 더 이상 화장실 문제로 외출을 꺼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세웅 교수는 “비뇨기과라는 특성상 진료를 꺼려 증상을 키워 오는 환자가 많다”며 “배뇨는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정확한 진단을 받아 조기에 치료하는 게 빠른 회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