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산부인과학회가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대학·상급종합병원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에 대해 ‘우리는 절벽 앞에 서있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산부인과 학문 자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학회는 27일 회원들에게 배포한 서한을 통해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학회 측은 “2012년 보건복지부는 포괄수가의 원가 보전, 7개 질병군 환자분류체계 정비, 수가 조정기전의 규정화 등 약속을 하나도 안지킨 채 포괄수가제를 실시했다”며 “대학병원 등 종합병원급 이상까지 제도를 시행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 시행 시점을 올해 7월로 미루고 다시 논의키로 했으나 현재까지 제대로 된 보완절차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산부인과학회는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산부인과 질병군부터 재검토해야 된다고 주장해 왔다. 다른 진료과보다 더 많은 수술들이 대상으로 포함돼 직격탄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학회는 “단지 2개의 질병군으로 인식되고 있는 제왕절개술과 자궁 및 자궁부속기 수술은 산부인과 수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질병분류체계의 심각한 오류로 범위가 지나치게 큰 한 질병군으로 묶여 있다”며 “그 속에는 수많은 종류의 수술이 포함되며, 수술에 따라 변이도와 난이도도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심각한 합병증까지 발생되기 때문에 두 수술에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학회 측은 “포괄수가제가 시행될 경우 모든 산부인과 의료진은 수술 환자 대부분을 새로운 지불제도에 맞춰 진료해야 한다”며 “새로운 재료, 장비, 방법 등을 사용하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값싼 재료와 저렴한 수술방법만이 강요된다면 국내 산부인과 학문 자체의 미래마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회 관계자는 “모든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해외 환자들이 수술받으러 오지만 앞으로는 원정 진료를 받으러 해외로 나가는 환자들이 생길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선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산부인과의 경우 대부분 적자인 상황이나 필수적인 학생 교육·전공의 수련 등으로 폐과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체 과도 아닌 4개과만 적용되고 유독 산부인과에 집중된 포괄수가제가 종합병원급 이상까지 시행된다면 산부인과는 각 병원의 경영효율화 요구에 밀려 그야말로 고사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는 단지 진료수가를 조금 더 받기 위한 원시적이고 근시안적인 고민이 아니다”며 “그동안 불균형적인 진료환경과 진료수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인내하며 분만실과 수술실을 지켜온 산부인과 의사로서 미래 세대에게 져야 할 막중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오는 30일 열리는 ‘전국산부인과주임교수회의’에서 포괄수가제 시행에 대한 대응방침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