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가족·친지들이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정을 더하느라 술잔을 돌리기 쉽다. 하지만 술잔 돌리기는 감염의 위험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삼가야 한다.
간염 환자의 술잔 받아 마시면… 타액서 검출되는 바이러스 양 적어
술잔 돌리기에서 가장 염려되는 게 간염의 전파 가능성이다. 다행히 B형 간염 보균자가 돌린 술잔을 사용하더라도 간염에 걸릴 가능성은 극히 낮다. B형 간염 및 C형 간염은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전파되는데 타액에서 이들 간염 바이러스가 검출되기는 하나, 양이 너무 적어 실제 간염을 전파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실험 결과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농축된 침이 든 음식으로는 간염이 발생하지 않았다. 술잔을 돌리거나 가벼운 키스를 하거나 음식을 나눠 먹었다고 해서 B형 간염에 걸릴 위험은 거의 없다. 다만 구강 안이 상처를 입었거나 진한 키스를 한다면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C형 간염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B형 간염 환자가 기숙사 등에서 단체생활을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식기나 수건을 같이 써도 B형 간염이 전파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칫솔이나 면도기와 같이 점막이나 피부에 상처를 낼 수 있는 물건은 공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령 공유할 경우에도 감염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20~30대 젊은 층, 술잔의 타액 등 통해 수인성 A형 간염 전염될 확률 높아
반면 A형 간염은 수인성 전염병이라서 술잔 돌리기를 통해 침을 매개로 전파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A형 간염은 30대 이하 젊은층은 면역력이 약한 반면 40대 이후 세대는 어렸을 적에 HAV에 자연 감염돼 가벼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간 경험이 있어 항체보유율이 90%를 넘는다. 너무 깨끗해도 문제가 되는 셈이다.
질병관리본부와 한양대 의대 공동 연구에 따르면 A형 간염 환자(2002~2006년)는 연령별로 20대가 45.3%, 30대가 33.3%를 차지하는 등 A형 간염 환자 약 10명 중 8명은 20∼30대 젊은 층이다. 따라서 젊은층들은 술잔 돌리기를 통해 전염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헬리코박터균, 알코올 소독해도 잘 안 죽어
위궤양환자의 70%, 십이지장궤양환자의 95%에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발견되고 있다는 의학적 통계가 나와 있다. 이 균에 감염되면 바로 위장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위점막에서 장시간 기생하면서 위염·위궤양·위암 발생 확률을 높인다. 국내서는 전체 성인의 60% 이상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감염자는 소화성궤양의 발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7배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다. 또 소화성궤양은 이 균의 존재 여부에 따라 재발률이 달라진다. 치료 후 12개월이 지나 이 균에 감염된 사람은 약 85%에서,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약 10%에서 궤양이 재발된다.
이 균이 위암을 일으키는 직접적 요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간접적인 요인에 불과하고 ‘너무 겁을 준다’며 확실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반대 견해를 갖는 학자도 있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어떻게 전파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구강에서 구강으로,또는 분변에서 구강으로 전파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과거 부모가 음식을 씹어서 아이에게 먹이던 옛 관습이나 국이나 찌개를 같이 떠먹는 식사습관이 주된 감염 경로로 보고 있으나 반드시 이것만이 헬리코박터 감염 위험을 높이는 독립적 요인이라고는 확정하진 못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오래전부터 개인식기를 썼지만 헬리코박터 감염률이나 위암발병률이 한국 못지 않게 높다. 채소절임, 김치, 젓갈 등을 먹는 비슷한 한·일간 공통적인 음식들이 훨씬 헬리코박터균 감염을 높이는 주된 요인으로 추정할 뿐이다.
다만 화장실 등 위생 상태가 불량한 후진국에서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이 높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요컨대 술잔돌리기나 국이나 찌개를 함께 떠먹는 행위 등은 헬리코박터균의 충분한 전파 경로가 될 수 있다. 국이나 찌개를 먹을 때에는 개인접시에 덜어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헬리코박터는 균이 입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전파되므로 음식이나 식수를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 식기는 적절한 세척 과정을 거친다면 전파 가능성이 매우 낮아 개인별로 식기를 구비할 필요성은 없지만 따로 사용하면 전파 위험성은 분명 낮아진다. 조기 위암을 내시경으로 절제한 환자는 수술 후 헬리코박터를 약으로 박멸해야 위암이 재발될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마신 술잔을 휴지로 닦거나 물에 한 번 담갔다가 돌린다고 해서 그 위험성이 줄어들지 않는다. 각종 구강감염균 또는 수인성 감염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심찬섭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항생제를 통해서만 죽지, 휴지로 닦거나 심지어 알코올 소독을 해도 잘 죽지 않는다”며 “술잔 돌리기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술잔 돌리기 자체로 헬리코박터균 감염 위험은 크게 높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극단적으로 보면 모든 암의 20%는 ‘감염’ 탓
국립암센터 신해림 박사팀은 남성 암의 25.1%, 여성 암의 16.8%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 등을 포함한 병원체 감염으로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를 내기도 했다. 암 환자 4~5명 중 1명은 ‘감염’으로 암을 얻고, 술잔 돌리기도 이런 감염 경로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술잔 돌리기는 충치균(뮤탄스균), 구순포진(헤르페스 바이러스) 등이 침을 통해 옮을 수 있다.
감기 걸린 사람과 술잔 돌리거나 입맞춤해도 감염 확률은 낮아
한파로 요즘 독감(계절성 인플루엔자바이러스 감염)도 유향단계를 넘어섰다. 최근 인플루엔자감염 의사환자 분율은 유행판단 기준은 인구 1000명당 2.9명을 넘어서 지난 1월 17일 4.8명에서 1월 31일 7.8명으로 증가했다.
감기(독감)는 술잔을 돌리거나 음식을 같이 먹을 때, 연인끼리 키스를 할 때 전파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감기에 걸릴 확률은 의외로 낮다. 특히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30∼50%를 차지하는 라이노바이러스(주로 코감기)는 키스를 통해서는 거의 전파되지 않는다. 감기 환자의 타액에서는 그다지 많은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기는 주로 환자의 콧물이 악수나 문손잡이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손에 묻고 이를 눈이나 코에 갖다대는 것이 가장 흔하고 주된 감염 경로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공기 중에 감염된 비말(飛沫)이 흩어지는 것도 주된 요인이다.
따라서 감기 환자와의 단발성 키스나 술잔 돌리기보다는 장시간 같은 공간에서 감기 환자와 함께 할 때 기침, 재채기, 콧물에 의해 감기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다만 감기 환자의 원인 바이러스가 라이노바이러스가 아닌 다른 종류이거나, 증상이 심하거나, 감기 환자와 비좁은 공간에 장시간 함께 지내거나, 감기에 안 걸린 환자의 건강상태가 나쁘다면 키스나 술잔 돌리기를 통한 감염 확률은 높아진다.
감기를 피하려면 자주 손을 씻고 독감이나 감기 유행철에는 사람이 많은 공중장소에 가급적 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 가더라도 잠시 머무르는 게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