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일본 의사 나구모 요시노리가 쓴 ‘1일 1식’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소식(小食)의 한 방법으로 하루 한끼를 먹으면 비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혈관이 깨끗해지고 피부가 매끄러워지며 면역력이 증강되고 뇌가 활성화돼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명현상의 기본은 음식의 섭취와 대사를 통해 이뤄진다. 인류는 100여년전만해도 다수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였고 지금처럼 빈곤국가를 제외하고 먹을 것이 남아돌아 열량과잉을 걱정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는 과식과 비만으로 인해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1일1식은 하루 세끼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적정열량을 균형잡힌 식단 아래서 섭취하라는 교훈을 주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식문화를 감안할 때 실천하기도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소식이 장수에 이롭다는 것은 이미 의학계의 상식이 됐다. 장수마을의 많은 노인이 소식을 실천하고 있다. 쥐를 이용한 여러가지 실험결과를 종합하면 음식물 섭취량을 30~40% 줄이면 수명이 20~30%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쥐에서 20~30% 늘어난 수명은 인간의 삶으로 치면 20년에 해당한다. 이는 새로울 게 없는 이론이다. 이미 재미의사인 유병팔 텍사스주립대 석좌교수, 이상구 박사, 생명철학자인 고 다석 유영모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소식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과식을 하면 몸속에 활성산소가 많이 생겨 생체조직을 공격하고 세포를 손상시킨다. 세포호흡에 관여해 세포내 발전소라 불리는 미토콘드리아가 특히 많이 손상된다. 췌장의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면 당뇨병, 뇌의 미토콘드리아가 다치면 치매라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다. 소식을 하면 그만큼 활성산소가 덜 생성되므로 세포가 손상될 가능성도 낮아지게 된다.
세포는 점차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일정 시점에서 급격하게 노화돼 사망에 이른다는 게 노화학회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따라서 ‘9988234’(99살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2~3일 아프다 죽는 일)를 실천하려면 소식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고 유영모 선생은 “하루 세끼 음식을 먹는 것은 짐승의 식사법이요, 두 끼는 사람의 식사, 한 끼 음식이 신선의 식사법”이라고 말했다. 하루 세 끼를 먹으면 ‘3식이’, 하루 두 끼를 먹으면 ‘2식씨’, 한 끼를 먹으면 ‘1식님’이 되는데, 3끼를 다 먹고도 또 간식과 야식까지 챙겨 먹는 사람은 ‘잡식놈’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나구모 요시노리는 굶으면 ‘시르투인’(Sirtuin) 유전자가 활성화돼 세포의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적포도주 속의 ‘레스베라트롤’이란 성분이 시르투인 유전자를 자극하기 때문에 적포도주가 장수에 도움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그렇지만 1일 1식에 따른 문제점도 많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폭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고도비만 환자들은 최후의 방편으로 1일 1식을 하지만 결국은 다이어트에 실패해 병원을 찾아오기 때문에 결코 다이어트 방법으로도 합당치 않다”고 말했다. 결국 식사량과 식단의 구성이 문제이지 식사 횟수가 건강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하루 한 끼 식사는 ‘아침밥을 먹는 게 좋은가, 안 먹는 게 좋은가’하는 논쟁과도 맥이 닿아 있다. 나구모 박사와 고 유영모 선생은 하루 한끼 저녁식사만 실천했다. 사람은 주간에는 일 모드로 교감신경이 흥분돼 식욕이 높지 않고 이로 인해 식곤증을 느끼는 반면 저녁에는 휴식 모드로 소화를 관장하는 부교감신경이 활발해져 식욕과 소화기능이 올라가기 때문에 저녁이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뇌는 에너지원의 거의 전부를 포도당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아침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노동이나 학습이 힘들게 돼 있다. 나구모 박사는 아침을 굶어도 뇌가 포도당을 쓰고 나면 케톤체(체지방을 태워 나오는 대체에너지원)를 쓰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틀린 이론은 아니지만 케톤체는 한시적인 대체에너지원이지 포도당을 대신할 수 없다”며 “아침밥은 적게라도 챙겨먹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1일 1식의 또하나의 단점은 영양소를 고루 섭취 못한다는 것이다. 이지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1일 1식이 장기화되면 식단이 단조로워져 음식의 가짓수가 줄기 마련이므로 영양소 균형이 깨지기 쉽다”며 “1인 1식을 단기간의 소식 실천에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성장기 어린이, 임산부, 환자에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배고플 때에만 먹는 것도 이론상 나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우며 역시 폭식의 부담이 있다.
이론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제대로 된 식사를 아주 조금 자주 먹는 것이다. 스페인은 아침은 간단히, 점심은 가장 화려하고 길게, 저녁은 안주와 함께 간단히 즐기는 타파스(Tapas) 형태, 이들 식사 사이에 두 번의 간식 등 1일 5식의 식문화가 있다. 스페인 사람의 건강상태는 유럽 평균 내지 조금 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사람은 더운 날씨로 인한 낮잠(siesta)이 습관화돼 있어 식곤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기 때문에 점심을 풍성하게 먹는다. 나구모 박사는 “낮의 많은 식사는 부교감신경 활성화를 요구하므로 생체리듬을 거스른다”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하고 있다. 강 교수는 “조금씩 자주 먹는 게 장수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와 있으나 현실적으로 실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루 세끼라는 테두리 안에서 열량을 통제하는 것이 인류가 선택할 최선”이라며 “먹는 것을 중시하는 스페인 사람은 올리브유와 다양한 채소를 섭취하는 식문화가 뒷받침돼 유럽 평균보다는 건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식을 실천하면 처음에는 기력이 빠지지만 인체가 적응하면 장기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특히 비만한 사람은 소식 실천으로 몸이 가벼워지고 뇌활동이 왕성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소식을 실천한다고 고열량 정크푸드로 때우면 에너지를 몸에 저장하려는 인체생리상 비만이 심화되기 쉽다. 유병팔 교수는 “절정의 성장기 이후에는 열량 섭취량을 30% 줄이면 장수할 수 있고 오히려 활력이 높아진다”며 “고단백·고지방 식단을 버리고 비타민·무기질·섬유소가 풍부한 채식 위주의 소박한 식단을 꾸리라”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