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줄 모르게 연구하고, 자신의 환자는 절대로 후배의사에게 맡기지 않고, 환자의 입장에서 최대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화기내과 분야 명의 중 한 사람이 심찬섭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소화기병센터장·63)이다.
내시경·초음파·스텐트를 이용한 소화기질환의 진단과 수술 분야에서 그가 일군 수십가지의 국내 최초 또는 세계 최초의 탁월한 연구성과와 임상사례는 소화기내과 전문과들이 대체로 수긍한다. 다만 그가 전남대 의대 출신으로 순천향대병원과 건국대병원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왜소한 대학병원에서 재직한 까닭에 실력에 비해 의료계의 평가가 인색한 게 사실이다.
심 교수는 순천향대 의대 전임강사 시절인 1984년 일본 내시경학회에서 ‘간디스토마증에 대한 ERCP(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 소견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구연발표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의학수준 격차는 컸고 한국 의사가 일본 학회에서 발표한 게 처음이었다. 1986년 2월 조교수 시절엔 ‘복부초음파진단’이란 이 분야 국내 최초의 전문서적을 출간했다.
심 교수가 복부초음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9년 레지던트 3년차였다. 당시에는 산부인과 임신 진단을 위해 초음파가 막 도입되기 시작한 터였고, 성능도 뛰어나지 않은데다가 기기가 작동하기 어려워 소화기내과 전공의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심 교수는 고 서석조 순천향대병원 이사장(창립자)이 산부인과로부터 얻어온 중고 초음파 기계를 처음 접하고 복부초음파를 활용하면 담낭,간,췌장 등의 진단에 유용하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선배 산부인과 의사와 이대동대문병원 교수진으로부터 복부 초음파 진단에 관한 힌트를 얻었다.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안에 설치된 초음파 기기를 이용해 밤에 몰래 소화기질환 환자를 진단하는 연구실습을 하다가 소화기내과와 산부인과 교수간에 말싸움이 생기는 사태도 초래했다.
산부인과 전유물인 초음파진단을 소화기영역에 적용 시작
198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담석증 진단에는 경구 담낭 조영술을 이용한 진단이 이뤄졌지만 담낭염이 동반돼 있거나, 황달이 있는 경우에는 정확도가 떨어졌다. 담낭이 X-레이상으로 볼때 조영되지 않으면 담석이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고 수술하기도 했으나 담석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어 당시 의사들은 난감해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복부초음파 검사는 이런 제약없이 98% 이상의 진단정확도를 보이는 획기적인 이점이 있는 진단법이었다.
심 교수는 고 서석조 이사장 소개로 찾아온 군 장성의 질환을 복부초음파로 찾아내 서 이사장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초음파 진단기술로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복벽에 달걀만한 고름주머니(농양)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 수술하길 권했고 족집게처럼 맞아들어 명의라는 평판을 얻게 된 것. 이를 계기로 그는 1982년 9월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교토 제2적십자병원과 동경여자의대 소화기병센터에서 초음파 및 ERCP 분야를 연구하게 됐다. 그리고 귀국후 고 서 이사장을 조르고 졸라 1987년 하반기 초음파내시경을 국내로 들여왔다. 고장이 잦았기에 서울대병원과 순천향대병원 기기를 번갈아 쓰면서 1년간 연구한 끝에 1988년 10월 아·태 소화기내시경학회 좌장을 맡아 최신지견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일본 연수 및 일본학회 논문발표 후 자신감…국제스타로 발돋움
이를 계기로 1995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10차 국제초음파내시경 워크숍에 패컬티(faculty, 대가)로 초청받았고, 1998년에는 순천향대병원 소화기센터 개소기념으로 국제초음파내시경(EUS)학회 워크숍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심 교수는 미국 일본 중남미 유럽 등에서 초청받는 이 분야의 핵심주자로 우뚝 서게 됐다.
지난해 7월에는 건국대병원 글로컬소화기병센터 개소 기념 국제워크숍을 열어 미국 일본 싱가포르 중국 타이완 인도 영국 등 7개국의 현지 의사와 참석한 600여명의 청중들에게 고화질의 초음파 및 내시경 관련 강의및 라이브시술을 생중계해 의료수준 및 IT인프라에서 첨단임을 입증하는 성가를 올렸다.
심 교수가 진행한 연구는 단지 학문발전이나 진단의 정확도 개선에 그치지 않고 시술 즉 본격적인 치료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식도·위·대장·췌장·간·담도 조직을 초음파내시경하에서 떼어내 생검(조직검사)를 하거나, 막힌 담도를 뚫거나, 제거하기 곤란한 담석을 레이저로 깨부수거나, 암으로 막힌 위·식도에 스텐트를 넣어 임종 전 몇주 내지 몇달이라도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등 진단과 치료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데에는 심 교수의 공로가 크다.
담석과 췌석을 가장 많이 제거한 ‘돌 깨는 도사’
심찬섭 교수는 ERCP등을 활용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담석과 췌석을 제거한 기록을 보유해 일명 ‘돌 깨는 도사’로 불리고 있다. 고화질의 선명한 영상을 제공하면서도 방사선 피폭량은 획기적으로 줄인 ERCP 장비를 국내 최초로 도입, 정교하게 담석·췌석을 레이저로 깨뜨린다. 담석은 기름지고 열량많은 음식을 많이 먹은 경우에 잘 생기는데 심하면 석류알처럼 그 숫자가 많고 사이즈도 크다. ERCP는 내시경을 위와 십이지장으로 근접시켜 미량의 방사선 투시하에 조영제가 도달한 췌장과 담도의 상태를 살펴보는 첨단 시술이다. ERCP를 이용하면 꺼내기 어려운 췌석과 담석을 깨고, 췌장암과 담도암 등으로 막힌 소화관을 개통할 수 있어 환자의 수명연장과 고통경감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소화기 스텐트 개발로 임종 환자 ‘죽기 전 소원’ 풀어줘
1980년대 초반 30살을 갓 넘은 젊은 의사 심찬섭은 식도암, 담도암 환자로부터 이런 애원을 자주 들었다. “먹고 죽은 귀신은 혈색도 좋다는데 단 열흘만 음식을 삼켜보고 죽게 해주세요”. 암이 식도를 막으면 음식물이 넘어갈 수 없고, 암이 담도를 폐쇄시키면 심한 구역질이 나고 황달까지 생기고 염증과 고열에 시달리다가 패혈증에 걸려 사망하기 십상이었다.
1986년 5월 심 교수는 50대 중반의 한 남성 담도암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 처음으로 담도스텐트를 삽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환자는 담도암 합병증인 폐쇄성 황달로 밤새 잠을 못이뤘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패혈증까지 와서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스텐트는 혈관이나 소화기관이 막히지 않게 해주는 지지대를 한다. 담도암의 경우 스텐트가 들어가 확장하면 좁아진 부위가 넓어지고 담즙이 원활하게 흘러내리게 되면서 황달이 해결되고 열을 가라앉힐 수 있다.
심 교수는 내시경 및 소화기용 스텐트의 대가인 일본 교토 제2적십자병원의 나카지마 마사츠구 선생으로부터 관련 시술법과 의료기구를 항공기로 공수받아 국내 첫 시술에 나설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담도암과 췌장암으로 폐쇄성 황달이 온 6명의 환자에게 이 시술을 시행해 국내 학회에 발표했다. 국제적으로도 드문 사례라 국내 내시경 전문가들은 심 교수의 연구발표에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식도암 스텐트 삽입 시술에도 한층 자신감을 갖게 됐다. 3년여 뒤엔 전국적으로 이 시술이 확산돼 많은 암환자들이 임종 전 훨씬 오랜 기간 동안 편안하게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게 됐다.
호기심 충족, 환자 불편 개선 욕구가 연구와 치료법 창안으로 이어져
그가 스텐트를 알게 된 것도 1982년 일본으로 1년간 해외연수를 받으면서였다. 당시 의술수준으로 지름 5∼10㎜의 좁은 담도에 안지름이 3㎜쯤 되는 플라스틱 스텐트를 삽입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공장에서 정밀기계로 생산하는 요즘의 스텐트와 달리 당시에는 폴리우레탄 재질에 구리철사를 관통시키고 뜨거운 물을 부어 늘여빼는 원시적인 수작업으로 스텐트를 만들었다.
심 교수는 1991년 독일 뮌헨 테크니컬의대의 홀스트 노이하우스 교수의 도움으로 철사망으로 된 큰 구경의 비(非)피막형 금속스텐트를 쓰고 돼지 담도에 삽입하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비피막형 스텐트는 종양이 스텐트 안으로 자라들어와 금세 스텐트가 막혀 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심 교수는 신경민 태웅메디컬 사장에게 금속스텐트에 플라스틱 피막을 입힌 스텐트를 개발해달라고 부탁했다. 천신만고 끝에 개발은 됐지만 원하는 위치에 스텐트를 안착시킬 만큼의 정밀도가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다 1996년 안성순 엠아이텍 사장이 미국에서 더 나은 스텐트 재료를 구해 세계 최초의 담도용 피막형 자가팽창형 금속스텐트를 개발했다. 1998년에는 자신의 성(姓)을 따 명명한 ‘심하나로’ 스텐트가 바로 그 산물이다. 안지름이 9.1㎜나 되는 심하나로 담도 스텐트는 출시 후 유럽·아시아·남미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탈방지용 양성협착용 식도스텐트와 대장스텐트도 개발, 시판했다. 안타깝게도 2년 후 미국 회사들이 심하나로를 모방·변형한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점유율이 급락했지만 심 교수는 스텐트 개발을 통해 환자의 고통을 해소하고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세계 최초 피막형 ‘심하나로’ 담도 스텐트 개발 등 의료산업화 선도
하지만 이후에도 짧은 식도스텐트가 위로 쑥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귀걸이 스텐트, 직경이 20㎜나 되는 위암용 스텐트 등 보다 성능이 개선된 소화기용 스텐트를 개발하는 등 환자의 삶의 질 개선과 의료산업화를 위한 연구를 놓지 않고 있다.
심 교수는 이처럼 중단없는 연구를 통해 200여편의 관련 논문(이 중 SCI급 관련 논문 90여편)을 쓰고 세계 20여개국에서 자신의 이름과 한국 의료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소화기학, 소화기내시경학, 초음파, 암 광역학치료, 스텐트 등과 관련해 단독·공동 저술 또는 번역으로 총40여권을 저술했다. 또 독일 뮌헨 테크니컬의대의 마인하르트 클라센(Meinhard Classen) 교수와 소화기내시경학의 대표적 교과서인 ‘소화기내시경학’의 두 장(章)을 비롯해, 3권의 치료내시경 영문 의학교과서를 공동 집필하는 등 식지 않는 연구열을 보여왔다.
병원경영에도 수완 보여 … 죽도록 ‘일할’ 팔자
심 교수는 의료경영 측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1998년부터 11년간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병센터장을 맡아 이 곳이 병원의 대표적인 특화진료센터로 자리잡게 했다. 2004년부터 2년간 순천향대병원장을 맡아 병원 시설·인테리어·서비스 개선에 나서 병원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했다. 2009년 5월에는 건국대병원으로 옮겨 소화기병센터장 및 헬스케어센터장(2011년 2월까지)으로서 센터가 초기에 안착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심 교수는 “아무래도 진료나 연구, 병원경영에서 일을 벌였으면 벌였지 가만있질 못하는 체질인 것 같다”며 “일본에서 연수받을 당시 ‘대학교수가 해를 등지고 퇴근하면 교수가 아니다’란 말을 뇌리에 새기고, 일본인 선생님들 앞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책 한권을 써야 되고, 일본학회에서 연구논문을 구연발표하는 게 목표’라고 약속한 것을 지키려 했던 게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한 반석이 됐다”고 회고했다.
심찬섭(沈贊燮) 건국대병원 소화기병센터장의 프로필
1976년 전남대 의대 졸업
1977년 소화기내과 전문의 취득
1981년 중앙대 의학석사
1987년 고려대 의학박사
1976년 3월~1977년 2월 순천향대병원 수련의(인턴)
1977년 3월~1981년 2월 순천향대병원 내과 전공의(레지던트)
1981년 3월~1986년 2월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내과 전임강사
1982년 9월~1983년 9월 일본 동경여자의대 소화기병센터 및 교토 제2적십자병원 연수
1986년 3월~2009년 4월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1995년 3월~2009년 4월 순천향대병원 소화기연구소장
1998년 3월~2000년 2월 순천향대학교병원 종합검진센터 소장
1998년 3월~2009년 4월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병센터 소장
2000년 3월~2002년 2월 순천향대병원 진료부장
2002년 3월~2003년 12월 순천향대병원 부원장 겸 진료협력센터 소장
2004년 1월~2005년 12월 순천향대병원 원장
2006년 1월~2009년 4월 순천향대병원 내과학교실 주임교수
2008년 3월~2009년 4월 순천향대병원 석좌교수
2009년 5월~2011년 2월 건국대병원 헬스케어센터 센터장
2009년 5월~2012년 현재 건국대병원 소화기병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