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와 신경전달물질 변화 일으켜 … 성기능장애 초래할 수도
2011년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성범죄는 1만3373건에서 2010년 1만9939건으로 약47% 증가했고 지금도 나날이 발생건수가 늘고 있다. 폭력범죄 중 단순 폭력과 강간은 살인이나 강도보다 음주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목적이 뚜렷한 살인이나 강도, 단순 폭력죄나 성폭력은 술에 취하거나 술을 마시는 도중에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높았다.
55세의 사업가 K씨는 술만 마시면 부인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이를 들어주지 않을 때 폭력을 행사하는 등 알코올로 인한 가정불화가 계속돼 자발적으로 알코올질환 전문병원에 입원했다. K씨는 충동조절에 어려움을 보였지만 사업상 계속 술을 마셔왔던 점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알코올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전용준 원장의 도움말로 알코올이 성범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알코올, 대뇌 마취시켜 판단력 흐려지게 해
적당한 음주는 긴장이 풀리거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등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알코올이 뇌의 쾌감조절중추를 자극해 엔도르핀(endorphin)과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자극하기 때문에 음주자는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만성적 과음은 엔도르핀과 도파민의 분비를 둔화시키고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glutamate) 분비에 영향을 줘 정서불안‧불면증‧기억상실 등을 유발한다.
술을 마시게 되면 알코올은 즉시 대뇌 피질에 영양을 미쳐 대뇌를 마취시키고 판단을 흐려지게 만든다. 대뇌 피질은 신피질과 구피질로 나뉜다. 신피질은 이성과 의식을 담당하고 구피질은 인간의 감정과 본능을 담당한다. 평상시에는 이성을 담당하는 신피질이 구피질을 제어해 감정적인 말과 행동을 자제하게 만들지만 알코올이 들어가면 신피질의 구피질 제어력이 약해져 신피질의 구속을 받던 구피질이 자유롭게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로 인해 음주자는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된다.
술은 흔히 사람을 흥분시키는 물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긴장을 완화시키는 진정제이다. 술은 진정제로서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GABA(gamma-aminobutyric acid)의 활성을 증가시켜 수면을 유도하고 긴장을 완화시킨다. 이런 술의 진정효과는 평소 이성을 억제하고 있는 스위치의 작동을 느슨하게 만들어 자제력이나 통제력까지 상실하게 만든다.
과음, 성기능 마비 및 성적 능력 감소 … 고환장애 유발
술을 적당히 마시면 중추신경계가 자극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성욕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과한 양의 술은 성기능에 필요한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남성호르몬 감소와 여성호르몬 증가를 야기하기 때문에 성적 능력을 감소시킨다. 발기능력과 발기지속력 저하는 물론 정자수가 감소해 심한 경우 치명적인 고환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에서 성기능장애가 주로 나타나는 것도 이같은 이유이다. 만성적 알코올중독자 중 성감저하와 사정장애를 호소하는 사례는 흔하며, 심한 음주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약80% 이상이 성기능 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충동적인 감정의 고조나 판단력 저하 등이 음주로 인한 성적 자극과 더해지면서 성적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성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성폭력 가해자들 중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사례가 많다.
술을 마실 때마다 충동 조절이 잘되지 않고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Black out) 현상이 자주 일어나면 ‘알코올의존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알코올의존증으로 인해 뇌가 만성적으로 손상되면 알코올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전용준 원장은 “절주를 지키기 힘들거나 지속적으로 술과 관련된 사건‧사고를 일으킨다면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술에 취한 뇌를 깨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폭력이나 성범죄 같은 우발적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