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진료비 확인신청 제도가 대형병원 측의 취하 종용으로 유명무실한 환자보호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전북 전주 덕진, 민주당)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진료비 확인 신청 취하율은 2008년 26%, 2009년 23.9%, 2010년 22.8%, 2011년 20.5%, 2012년 7월 17.0%로 감소세였다. 하지만 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취하율이 높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원, 치과의원, 약국, 한의원은 금년 들어 취하가 거의 없지만 규모가 큰 대형병원들은 올해 7월까지의 집계임에도 불구하고 예년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은 2009년 30.6%, 2010년 27.9%, 2011년 23.9%로 감소하는 추세였으나 금년에는 34.6%에 달해, 신종플루가 휩쓸었던 2009년에 비해 현재 4%포인트나 더 높았다.종합병원의 경우 2009년 25.6%, 2010년 23.7% 2011년 19.6%로 감소하다 올해 23.6%로 치솟았다. 병원급 의료기관 역시 2009년 17.1%, 2010년 17.8%, 2011년 19.2%였다가 올해 22.2%로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원, 치과병·의원, 한의원, 약국 등은 0%대로 급감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최근 3년간 취하율이 무려 50%에 육박하거나, 취하율이 작년 12%에서 올해 오히려 20.9%로 상승한 곳이 존재했다. 이번 조사가 올해 7월까지의 자료임을 감안하면 전년도 수치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이는 곳이 다수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진료비 확인 신청 제도는 병원에 낸 진료비 중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진료비가 제대로 책정된 것인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확인 요청을 하면 부당청구 여부를 알려주는 제도로 2003년부터 시행돼 왔다.
그러나 제도시행 이후 잦은 취하로 인해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 되면서 환자 보호를 위한 대책으로 2010년 10월부터 취하서 제출 시 취하 유형을 기재토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압적 종용에 의한 취하는 2011년 4건에서 올해에만 7건으로 더욱 늘었고, ‘향후 치료상 불이익 우려’와 같은 건수는 14건이 증가해 이 제도의 실질적 효력이 의문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취하율이 높은 이유로는 진료비 확인 신청 건수가 많을수록 해당 요양기관은 심평원의 현지조사 대상에 포함되게 되고, 현지조사를 받게 되면 각종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병원측이 환자들에게 취하를 종용하는 것이다. 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현지조사를 받는 것으로 인해 자신들의 명성에 해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취하를 종용한다는 게 김 의원실의 분석이다.
또 어렵사리 병원측의 압박을 이겨내고 취하를 하지 않았더라도 환불이 되는 경우는 2008년 이후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게다가 취하 후 환불한 경우를 포함한 경우도 많다.
김성주 의원은 “진료비 확인 신청 과정에서 심평원이 병원측에 환자의 정보를 요구하면 자연스레 신청 여부를 병원들이 알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힘 있는 대형병원들에게 불이익을 당할까봐 환자들이 오히려 눈치를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병원측이 환자의 신청여부를 알지 못하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진료비 확인신청으로 인해 환자들이 직간접적인 불이익으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신고제도의 활성화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하루 뒤인 19일 김성주의원에게 제출한 통계수치는 전적으로 심평원의 잘못이라는 해명과 함께 상급병원 진료비 확인 취하율은 35%가 아니라 17.7%, 종합병원 진료비 확인 취하율은 23.6%가 아니라 15.7%, 병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22.2%가 아니라 15.7%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심평원은 김성주의원실로 제출 자료 수치 번복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이미 수많은 언론에서 보도한 뒤라 수습도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김성주 의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국가기관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대해 뒤늦게 잘못됐다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심평원의 자료를 믿을 수 있겠냐”고 지적하고, “최초 제출된 자료를 믿고 분석하고 정리한 국회의원의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명백한 국정감사 방해 행위”라고 질타했다. 또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기관의 암행어사라고 불리우는 심평원이 자료에 대해 실수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무시하는 행위이고, 스스로 기관의 신뢰를 상실하는 어이없는 일”이라며 “10월 국정감사에서 심평원의 태만한 자세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