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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
저출산·저수가·고위험으로 궁지에 몰린 산부인과
  • 조성윤 기자
  • 등록 2012-07-14 00:20:37
  • 수정 2013-04-19 16: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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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마다 줄어드는 전공의로 출산 인프라 무너질 판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저출산으로 산모의 수는 줄었고, 이번 달의 분만 건수는 5회에 그쳤다. 인건비와 이런 저런 세금을 내고 나면 A씨의 순수익은 300만원에 불과하다. 2년 전 낙태수술을 함께 시술했을 땐 벌이가 괜찮았지만 2010년 2월 30~40대 젊은 산부인과 개업의들의 모임인 ‘진오비’(GYNOB,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영어 약자)가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고발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 경영난이 악화됐다. 분만과 여성진료만 하던 A씨는 다른 산부인과 동료들처럼 피부미용과 비만클리닉도 함께 운영할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산부인과 진료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새로 배출되는 산부인과 전문의 숫자가 2002년 270명에서 올해 90명으로 줄어들었고 분만을 포기하는 산부인과 의원이 늘어나 분만 의료기관 없는 시·군·구가 2010년 전국 49곳에서 작년 58곳으로 늘어났다.
저출산율로 인해 매년 60여개의 병원들이 폐업하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분만병원의 60%가 한 달에 7.3건의 분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적자가 나지 않는 최소한의 분만 횟수로 추산되는 20건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피부·성형 전문 여성클리닉으로 변해가는 산부인과

이 때문에 새 생명을 받고 모성건강을 책임져야 할 산부인과가 비만과 피부미용 시술에 눈을 돌리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각종 피부과학회나 관련 학회 등의 강좌를 통해 피부미용 시술법을 배워 비교적 시술이 쉬운 얼굴의 점이나 잡티 등을 제거하는 레이저 기기를 구입해 일반 피부과의 거의 절반 수준의 비용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산부인과 학술대회에 가면 행사장 절반이 피부미용과 비만치료 세션으로 채워져 있다. 산부인과 수련의를 거쳐 개업할 때 아예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나오는 게 현실이다. 산부인과를 포기하고 검진대도 없는 ‘여성의원’을 개업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표시과목별 의원현황’에 따르면 산부인과 병원(산부인과 의사를 원장으로 둔 여성의원 포함)은 2004년 1918곳이었다가 2007년 1737곳, 2008년 1669곳, 2009년 1628곳, 2010년 1568곳, 2011년 1508곳으로 해마다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7년 사이 산부인과 400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남아있는 동네 산부인과들은 분만실을 폐쇄했거나 여성의원으로 전환했다. 압구정동에서 지방흡입과 제모 등을 시술하고 있는 D여성클리닉의 원장은 “로컬(개원) 산부인과들의 경영난이 심해지면서 비보험 적용이 많은 피부미용이나 성형 시술을 하는 병원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젊은 산부인과 개원의는 처음부터 미용 관련 진료만 보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박노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조차도 2003년부터 아예 분만을 하지 않고 피부와 비만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회장이 운영하는 병원조차 신생아를 받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그는 “저출산으로 외래환자 수가 급감하면서 생존 대책으로 비만관리와 피부미용 등을 하게 된 것”이라며 “아예 산부인과를 포기하고 다른 과로 전직하는 일도 산부인과 의사 전체의 10%가량 된다”고 말했다.

사라져가는 산부인과 남자 전문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국가적으로 분만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다. 출산율이 올라가도 문제다. 고위험 출산을 감당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
한 해 평균 6000건 이상의 출산이 이뤄지는 국내 최대 분만병원인 제일병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공의 18명은 모두 여자다. 올해 배출된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90명이고 그 중 남자는 10명이다. 올해에만 서울대병원의 산부인과 전공의 3명, 연세대 3명, 고려대 2명, 서울아산병원 2명 등 전국 대학병원에서 적잖은 산부인과 지망생들이 수련을 포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동남아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남자 전문의의 부재로 오는 가장 큰 문제는 야간 분만이다. 결혼 후 육아와 진료를 병행하는 여의사들은 야간 당직을 기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야간 분만은 남자 의사들이 서는 경우가 많다. 야간 분만을 담당할 의사가 항상 부족한 상황이다. 

낙태근절운동으로 가중된 경영난

차병원과 제일병원 미즈메디 등 여성전문병원을 제외한 로컬 병원들의 대부분이 그동안 낙태수술로 연명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신촌 아이온산부인과의 심상덕 원장과 최안나 원장이 중심이 된 ‘진오비’가 결성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진오비는 낙태를 단속하지 않는 보건복지부를 고발하고 낙태의사를 신고 받는 ‘낙파라치’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운동을 펼쳤다.
최안나 원장은 “출산율이 감소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산부인과 입장에서는 불법 낙태가 비급여라 상당한 수입”이라며, “산부인과가 산모진료와 분만으로도 병원 운영이 가능할 수 있도록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최 원장의 의견에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산부인과 의사 C씨는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은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가혹한 선택”이라며 “낙태수술이 돈 벌이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성폭행 등이나 10대 등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여성들을 도와주는 방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국내 최대의 여성전문병원인 C병원도 개원 초기에는 낙태수술로 높은 수익을 올린 만큼 산부인과에서 낙태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낮은 분만 수가와 잦은 의료사고

365일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최소 의사 2명(교대), 간호사 8명(3교대), 야간 원무직원, 조리요원 등의 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신생아실도 운영해야 한다. 현행 자연분만 수가로는 병원 운영도 힘들고 야간이나 공휴일 근무, 응급진료에 대한 보상도 없다.
최근 분만수가가 50% 이상 올라가긴 했는데 OECD 국가의 5분의 1 수준이고 미국과 비교했을 때는 10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산부인과 특성상 의료사고가 빈발한 것도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이유다. 의료사고 중 산부인과가 50%를 차지한다. 통상적으로 출산 1만건당 1건 정도에서 분만 사고가 난다. 지난 2월에는 경기도에서 10년간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40대의 여의사가 병원 숙소에서 자살로 죽음을 맞았다. 그는 2건의 분만 사고를 잇달아 겪었고 유족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사고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다.

최근에는 의료분쟁조정법을 도입하면서 무(無)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산부인과 병원이 보상금의 30%를 분담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양재혁 관동대 제일병원 교수는 “무과실 의료사고에서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일본의 경우 분만의 특수성을 인정해 의사의 과실이 있어도 국가가 책임을 져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부인과 위기는 산부인과 의사들만의 위기가 아니라 산모와 신생아의 위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정부의 시급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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