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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제 재분류, 누구를 위한 전환인가
  • 정종호·홍은기 기자
  • 등록 2012-06-07 20:29:02
  • 수정 2012-07-26 1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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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바뀐 피임제 운명, 개선(善)이 아닌 개악(惡)

식품의약품안전청이 7일 발표한 의약품 재분류안에 사전피임제는 전문약으로, 긴급피임제(응급피임제, 사후(事後)피임제)는 일반의약품으로 바뀌자 한국인의 의약품 사용 관행에 어긋나는 개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모두 사전·사후 피임제를 둘 다 전문약으로, 약계는 둘 다 일반약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쪽의 입장을 내놓고 있다. 긴급피임제는 그동안 의료계, 약사회, 제약업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던 소재다.

피임약의 작용 원리는?

긴급피임약은 준비없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방지하기위해 성관계 또는 성폭행이 이뤄진 다음에 먹는 고농도 복합 여성호르몬제로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최장 5일 이내)에 복용하면 임신 방지효과를 낸다. 사전피임약도 성관계후 72시간 이내에 4정을 복용하고 12시간 후에 추가로 4정을 복용하면 사후피임제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피임약은 에스트로겐(대표적 성분 에티닐에스트라디올, ethynil estradiol)과 프로게스테론(대표적 성분 레보노르게스트렐, Levonorgestre)이 복합돼 있다. 피임약이 피임효과를 내는 원리는 배란 및 난포형성을 유도하는 에스트로겐을 지속적으로 저용량 투여함으로써 뇌의 시상하부에서 성선자극호르몬분비호르몬(GnRH)의 기능저하를 유도한다. 뇌는 피드백(되먹이 기전)에 의해 움직이므로 GnRH의 분비 저하는 뇌하수체 전엽의 성선자극호르몬(FSH, LH)의 분비를 저하시키고 그 결과 난소에서 난포(난소의 생활근거,여포)의 성숙을 억제한다. 피임약의 프로게스테론은 일명 황체유지호르몬으로 난자가 나온 뒤에 남은 난포를 황체로 발달·유지시켜 자궁내막을 두텁게 하고 새로운 난자가 성숙되지 않도록 방해함으로써 임신을 방지하는 효과를 유도한다.

긴급피임제는 고함량의 여성호르몬을 일시에 투여, 착상 억제 

사전피임제와 긴급피임제가 다른 것은 성분의 함량에 달려 있다. 사전피임제는 에티닐에스트라디올이 0.02~0.03㎎ 함유돼 있지만 긴급피임제는 그 3.3~5배에 달하는 0.1㎎이 들어 있다. 또 레보노르게스트렐은 사전피임제의 경우 0.1㎎(또는 0.15㎎짜리도 있음) 들어있지만 긴급피임제는 그 10~15배인 1~1.5㎎이 들어 있다.
긴급피임제는 단기간에 강력하고 폭발적으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및 프로게스테론, 또는 고함량의 프로게스테론만 단독)을 투여함으로써 배란을 지연, 억제하고 정자나 난자의 난관 통과를 방해하여 수정을 억제하고 자궁내막을 변형시킴으로써 착상을 억제하므로 임신을 예방할 수 있다.
배란 후 난자는 난관의 팽대부에서 정자와 만나 수정되고 난관을 따라 이동해 약 72시간 후에 자궁에 도달하게 되고 이후 자궁내막에 착상되기까지 추가로 72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배란 후 착상까지는 약 6일이 소요된다. 긴급피임제는 배란된 난자의 착상을 막는 게 주된 효과이므로 성관계 후 착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72시간 이내에 투여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착상 이후, 즉 임신이 성립된 이후에는 긴급피임제를 통해 유산시킬 수는 없다.

식약청, 긴급피임제는 비상시 1회성 복용하므로 일반약 전환이 타당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긴급피임제를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면서 “긴급피임제는 성교후 72시간 이내에 먹어야 유효하고, 비상시 한번만 먹는 약이며, 구토 같은 부작용도 대부분 48시간 이내에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프랑스,스위스,캐나다,영국,미국에서도 긴급피임제는 일반약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식약청은 사전피임제를 전문약으로 전환해 의사처방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게 한 이유에 대해 “사전피임약은 호르몬 함량이 낮지만 장기간 복용해야 하고 장기 복용시 혈전증(피떡이 혈관을 막는 질환)·정맥염·심근경색·뇌출혈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흡연 여성의 경우 심장혈관계 부작용(혈전증)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어 피임약 복용 시 금연해야 한다. 실제 사전 피임약을 사용해 혈전증 정맥염을 경험한 여성은 10만명당 연간 20~40건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유방암이나 자궁내막암 환자와 혈전색전증, 간염환자 등에겐 피임약을 투여하지 말아야 한다. 또 40세 이상 여성과 비만, 편두통, 우울증 환자 등은 신중하게 복용해야 한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약사회와 마찬가지로 긴급피임제를 의사 처방없이 살 수 있는 일반약으로의 전환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다. 경실련 등 일부 시민단체는 “긴급피임약은 성관계 후 늦어도 72시간 이내 복용해야 효과가 있고 이 기간에 의사가 진찰을 해도 임신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으므로 여성 스스로의 판단으로 복용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어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피임약은 오남용 우려가 커 반복해서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심각하며 정상 용량 범위 안에서 사용하더라도 생식기출혈은 최대 31%까지 나타나고 혈전증, 구역,구토, 오심, 복통, 두통, 어지럼증, 피부질환(결절성 홍반,여드름,기미) 등의 부작용이 빈도 높게 나타난다”며 “청소년들의 성 노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은 올바른 성의식과 피임 문화 정착을 방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도 “사후피임약은 피임실패율이 15%(최대 42%)에 달해 사후피임약이 일반약으로 풀리면 사전피임이 소홀해져 불법 낙태가 늘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두 산부인과 단체는 사후 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한 미국·영국·노르웨이·스웨덴·중국 등은 기대했던 낙태율은 줄지 않고 청소년의 임신과 성병 유병률만 높아졌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 생명운동본부 등은 “긴급피임약은 단순한 피임약이 아니라 수정된 난자가 자궁내막에 착상하는 것을 막는 반(反)생명적 낙태약”이라며 일반약 전환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전피임약 전문약 전환, 접근성 막아 오히려 낙태 증가 우려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과 관련, 경실련은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경실련은 “의약품 접근성 차원에서 여성들이 매번 산부인과 진료를 통해 피임약을 처방받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라고 반문하며 “의사처방을 통해서만 사전피임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될 경우, 청소년들의 피임약 접근성이 떨어져 원치 않는 임신이나 낙태 등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임약에 대한 복약지도를 철저히 해서 스스로 조절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할 뿐 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트릴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약사회는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과 관련, “식약청이 사전피임약의 부작용을 과도하게 부각해 국민 불편을 초래하려 한다”며 “50 년간 큰 부작용 없이 사전 피임약이 잘 사용되어 왔고 20여년전부터는 호르몬 함량이 대폭 줄어 더욱 안전해졌는데 저함량의 사전 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전피임제가 전문약으로 전환되면 의료비 부담이 현행 대비 4.4~5.3배 증가돼 국민 부담이 가중된다”며 “사전 피임약은 복용에 관한 질문과 복약지도의 내용이 여성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한 부분으로, 여성의 성적 자주권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밝혔다.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에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공덕동에 사는 유모 씨(23·여)는 “피임약을 의사에게 처방받게 된다면 프라이버시 노출을 꺼려하는 많은 가임 여성들이 피임약 구매를 기피하게 되고 결국 이는 사후피임약 남용과 피임실패로 인한 낙태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사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반대했다.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의약품 접근성이 높아져서 좋은 반면 성생활에 대한 자기책임 없이 성생활이 문란해지고 오남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전까지 처방전 없이 자유롭게 구입하도록 방치했던 사전 피임약의 부작용을 뒤늦게 거론한 보건당국의 조치에 대해서도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원효로에 근무하는 김모 씨(38·여)는 “뜬금없이 사전피임약의 부작용을 부각시키며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며 “그렇게 부작용이 심각했으면 진작에 국민 대중에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둘러 졸속 결정, 소비자 위한 판단인지 의문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되는 긴급피임제는 아직 제한 연령이나 오남용등 여러 제제에 대한 확실한 안전장치의 틀조차 마련되지 않아 이번 일반약 전환은 큰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긴급피임제는 기존의 피임수단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피치 못할 단 몇 번의 경우 사용해야하는 수단이다. 식약청이 긴급피임제를 일반약으로 분류하게 된 배경은 긴급한 상황에서 1회에 한하여 복용할 시 생리학적 부작용 여부만으로 평가할 때 단순한 구역이나 어지럼증을 유발하지만 48시간 이내 사라지고, 이를 제외한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아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긴급피임제 복용자의 경우 자궁출혈, 두통, 구역, 현기증, 복통 등의 부작용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재분류를 검토한 중앙약심 회의에서 관련 단체와 전문가와의 논의를 통해 일반약으로 전환된 점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복용방법에도 차이가 있는데 사전피임제는 21일간 복용 후 7일간 휴약해 지속적인 피임을 위해 복용기간과 방법을 반복하는 반면 긴급피임제는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 한번만 복용하면 된다. 복용법상 단 1회 복용하는 의약품이라 해도 무분별하게 반복해서 사용할 경우, 부작용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원치 않는 임신을 방지한다는 긴급피임제의 효능은 일반약 전환의 경우 도리어 원치 않는 임신을 유발시킬 가능성도 다분하다. 효능만 믿고 사전피임(콘돔, 자궁 내 기구, 경구용 사전피임제)을 하지 않는 성관계가 늘어나게 되면 이 원인으로 임신의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미혼 여성이나 계획되지 않은 임신 여성들은 불법낙태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전망이다.
긴급피임약의 주요 작용기전은 착상억제로서 일단 수정란이 착상된 이후에 임신 유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해 이론상 낙태약은 아니다. 하지만 사전피임제의 자유로운 구입은 막아놓은 채 낙태방지의 대안으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된 긴급피임제가 남용될 경우 더 많은 낙태를 유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피임제 재분류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관련 전문가들이 의사협회와 약사회의 이권다툼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는가 하는 문제다. 식약청은 ‘과학적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밝혔지만 국민의 의약품 사용관행과 편의성을 무시하고 의·약간 나눠먹기에 동조하고 선진국 사례를 들어 모방 답습함으로써 주체의식 없는 보건행정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피임약정리(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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