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정신적 충격(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성인이 된 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 이유를 입증해주는 생리학적 원인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처음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어린 시절 사고나 폭행, 방임, 성적 학대를 겪은 경우 성인기에 우울증 발병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8~10배 높다는 연구결과는 있었지만 생리학적 원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이동수·전홍진(정신건강의학과)·강은숙(진단검사의학과) 교수팀은 미국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데이비드 미셜런 교수팀(David Mischoulon 정신과)과 공동 연구한 결과를 ‘정신의학연구지(Journal of Psychiatric Research)’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정상인과 달리 뇌신경 손상을 치료해주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ated neurotrophic factor, BDNF)의 세포내 이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4일 밝혔다. BDNF는 뇌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로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 양쪽의 신경세포에 작용하며 부족할 경우 우울증을 일으키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의 BDNF 혈중농도가 낮은 점에 주목했다. 우울증 환자 105명과 정상인 50명을 대상으로 BDNF 혈중농도를 검사한 뒤 트라우마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혈액 중 BDNF수치는 정상인에서 높았으나 혈소판 중 BDNF는 우울증 환자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홍진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BDNF가 신경세포내에서 혈액으로 이동하는 경로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며 “어릴 때 학대를 받은 경험이 많거나 충격이 클수록 혈중 BDNF 농도가 크게 떨어졌고 혈소판 BDNF는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어려서 성적학대를 경험했던 환자의 경우 혈소판 내에 혈소판 1백만개당 BDNF수치가 93.2pg(피코그램)으로 가장 높았던 반면 혈액 1㎖당 BDNF 농도는 374.4pg으로 다른 환자군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 이어 지속적 폭행을 당한 경우,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의 큰 사고 경험, 폭언이나 방임과 같은 정서적 학대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혈중 BDNF농도가 크게 떨어져 있는 경우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높고, 치료도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바꿔 말하면 BDNF 농도 변화가 왜 발생하는지를 알면 그에 따른 맞춤형 치료로 개발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전홍진 교수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환자는 우울증 치료가 어려웠다”면서 “이번 연구괄과를 통해 트라우마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생리학적 원인이 밝혀진 만큼 관련 치료제 개발과 개인별 맞춤치료 실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