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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존감을 세우는 효과적인 방법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등록 2012-05-22 11:37:46
  • 수정 2019-09-02 17: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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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물적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지고 '기능적 겸손' 실천해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건실하게 키운 한 CEO가 필자의 스트레스 클리닉을 방문했다. 세련된 매너와 단단한 이미지를 가진 그의 고민거리는 뉴스를 보다가 불의로 가득찬 사회적 사건 뉴스를 보게 되면 지나칠 정도로 화가 나고 심지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응징하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범법자들이 자기에게 직접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분노의 정도가 부적절하게 크다는 것이었다. 그와 상담하는 횟수가 늘어나자 업무적으로 ‘을’의 입장에서 ‘갑’에게 자존심이 상한 기억들, 누적된 자존감의 상처가 분노 에너지로 축적돼 자신과 크게 상관 없는 뉴스 내용의 대상에도 과도한 부정적 감정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불법을 일삼고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을 향해 “특별히 고생한 것도 없이 부와 자리를 승계받고, 운 좋게 높은 지위에 올라 파워를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고 속내를 토로했다. 이 때문에 사람 자체가 싫어지고 점점 모임을 피하게 된다고도 했다.
정신상담을 하다보면 ‘자존감의 상처’는 누구나 할 것 없는 모두의 문제라 여겨질 정도로 일반적이다. 자존감에 대한 만족을 보장시켜줄 것으로 여겨지던 사회적 지위를 성취해도 여전히 자존감 계기판에는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고 감성 엔진은 과열되고 만다. 사람이 위로를 받아야할 대상이 곧 사람인데 오히려 서로 자존감에 상처만을 주는 존재가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니 사람의 위로를 대신하는 애완동물 비즈니스만 번창하고 있다.
자존감(self-esteem)은 미국인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한 용어다. 자존감의 상처가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최근에는 자존감이란 개념이 우울증 등 정신병리의 발생 원인이자 및 치료 대상이란 영역을 넘어 자기계발의 원동력으로서의 교육 및 비즈니스 프로그램에 활용하려는 붐이 일고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자존감 계기판의 수치는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늘어만가고 있는 자살률 통계가 이를 반증한다.
자존감이 상하면 결과적으로 우울해진다. 그렇다면 우울함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자존감은 근사함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 중 내가 근사하다는 생각을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성공했다 평가할 고위 공무원 또는 대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자신이 근사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주세요’라고 불쑥 질문을 던져보면 손을 드는 사람이 아예 없다. 얼굴 표정을 보면 쑥스러워서 손을 못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느껴 반응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이고 감정적 반응이다. 내가 느끼는 자존감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자신의 자존감 계기판 수치가 떨어지고 경고등이 들어온다고 해도 실제로 내가 가치가 떨어지고 엉망인 사람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자존감 계기판의 수치만 믿고 낙담하고 우울해지기 일쑤다.
자존감의 함수, 근사함을 느끼는 정도는  ‘내가 이룬 것’에서 ‘내가 목표로 한 것’을 뺀 것이다. 두 변수의 차가 클수록 느끼는 근사함도 커진다. 그런데 자신의 목표가 지나치게 높으면 이 수치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자존감을 느끼기 어렵게 된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기 위해, 즉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높은 목표를 설정한다. 어려서부터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갈 것을 정신 없이 가정과 학교로부터 교육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자존감의 함수는 이루려는 목표가 높을수록 근사함을 느끼기 어렵다. 내가 이룬 것과의 차이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거기다 일단 달성한 목표는 순식간에 상향 조정돼 근사함을 느끼는 것은 잠깐이다.더 높은 목표를 향해 또다시 자신을 몰아세우게 된다.
결국 목표를 낮추는 게 대안이다. 자신의 성취와 상관 없이 목표를 낮게 잡고 사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 것이다. 겸손한 사람이 성취를 덜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목표가 낮기에 작은 성취에도 만족하고 주변의 비판에도 자존감 시스템을 안정하게 유지한다. 이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높은 자존감은 목표가 높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존감이 높기만 하고 안정성이 취약하면 쉽게 주변의 평가, 즉 ‘사회비교’ 의 결과에 따라 자존감 계기판의 바늘이 출렁거리게 된다.
여기서 목표를 낮추자는 게 단순히 1등할 것을 2등에 만족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곧 자신의 가치라는 속물적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기는 하나 진심으로 존경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좋은 리더는 누구일까. 자신의 지위에 고개 숙이는 사람들을 보며 얄팍한 자존감의 계기판 바늘을 올리기 보다는 이를 경계하고 자신의 본질적 가치에 충실하며 자신의 목표를 낮추는 ‘기능적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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