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치아보험 가입자 … 막상 필요할 땐 무용지물
의료실비보험 같은 실손보험 시장이 포화되면서 치아보험 노인보험(고혈압보험 치매보험 등)과 같은 특화 실손형 보험이 새롭게 시장을 일궈나가고 있다.치아보험은 다른 질병치료보다 건강보험 비급여치료가 많은 탓에 고비용이 드는 치과치료 비용을 보장해주는 보험이다.
소비자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치아보험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임플란트와 같은 보철치료는 100만원이 넘는 비용으로 가계에 부담을 주는데 치아보험가입으로 치료비 지출이 크게 줄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008년 라이나생명 치아보험이 처음 등장한 이후로 ACE손해보험, 현대해상, AIA생명이 잇달아 치아보험 상품을 내놓았다.지난 2월 동부화재, 그린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도 치아보험시장에 뛰어들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2010년 치과를 찾은 외래 환자는 약1620만명으로 이중 치아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약160만명에 불과해 치아보험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왔다.
라이나생명 관계자는 “다른 보험사들이 치아보험 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해 우리회사 치아보험 상품 판매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걱정했으나 오히려 다양한 특징을 가진 치아보험이 신규 가입을 늘려 예전보다 고객층이 넓어져 시장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보장비용 적고 면책기간ㆍ감액기간 길며 적용범위 좁아
그동안 치아보험은 라이나생명, ACE손해보험 등 주로 외국계 보험사가 취급해 왔으나, 보장 제한요소가 까다로운데다가 상품구조도 복잡해 걸핏하면 가입자의 보험 민원대상으로 비난을 들었다. 보험사 역시 치아보험이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아 리스크 부담을 우려한 나머지 이런 저런 구실로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는 ‘장치’를 만드는 게 사실이다.
치아보험에 가입할 땐 무엇보다 긴 보장개시일에 주의해야 한다. 손해보험사의 치아보험은 90일 동안 치과치료에 대해 면책기간이 있다.가입 후 석달 안에 치과치료를 받으면 보장이 전혀 없다. 생명보험사의 치아보험은 180일 지나야 보장이 시작된다. 손해보험사는 1년, 생명보험사 2년의 감액기간이 있어 이 기간 안에는 50%만 보장받을 수 있다.
보철치료는 손해보험사의 경우 6개월, 생명보험사는 1년의 면책기간이 있다. 이들 보험은 2년까지는 50%만 보장되며 2년이 지나야 100% 보장 받을 수 있다. 치아보험 적용범위는 충치나 잇몸질환 등 치과치료에 한정돼 있으며 라미네이트나 스케일링 등 미용 치과치료는 보장되지 않는다. 보험금액이 크다고 무조건 가입하기에 앞서 지급 횟수도 체크해야 한다. 틀니는 대부분 보험사에서 연 1회, 임플란트와 브릿지는 연 3회 보장하며, 임플란트는 개당 10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보험사마다 조건이 다르므로 가입할 때 확인토록 한다.
치아보험 가입했어도 치아파절 치료는 내 돈으로?
과수원을 하는 원주의 박모씨(34)는 며칠 전 사다리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복숭아나무에 치아가 부딪치는 바람에 앞니가 깨지는 사고를 당했다. 치과 치료 후 보험금을 지급받으려던 박 씨는 치아파절은 치아보험 보장이 안된다는 얘기를 듣고 “과수원 일을 하다 다칠 경우에 대비해 치아보험을 들어둔 것인데 이제와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으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며 “보험금을 지급하려고 가입시킨 건지, 자기들 배불리려고 그런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치아파절은 외부 충격에 의해 치아가 부분적 또는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골절’에 해당한다. 2007년 4월 이전에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에서 골절에 해당하는 특약으로 치아파절에 치료보험금이 보장됐지만 2007년 4월 이후부터는 치아파절에 보험금이 과다하게 지급돼 손해율이 올라가자 보험사들이 보장범위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대다수 치아보험 가입자들은 사고나 외부 충격에 의한 치아파절이 치아보험 보장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험사로부터 듣지 못한 채 치아보험에 가입해 사고 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치아보험 모두 치아파절을 보장 범위에 넣고 있지 않지만 손해보험사의 경우 자동차보험 같은 상해보험에 특약 형태로 가입하면 치아파절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치아보험에 가입하면 모든 치과치료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동부화재와 그린손해보험의 무진단형 상품은 ‘충치나 잇몸질환’이 직접적인 원인인 경우에만 보장된다.보험약관에 따르면 치아가 마모됐거나, 충치나 잇몸질환이 아닌 다른 이유로 치과치료를 받을 경우엔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다. 현대해상은 치주질환으로 인한 치료, 상해가 원인인 치과치료는 특약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특약 추가인 만큼 보험료가 비싸진다.
불완전판매와 가입 부적합자 가입 기승
3년전 치아보험에 가입한 대구광역시의 송 모씨(53)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송 씨가 임플란트 시술받은 치아가 작년에 충치로 신경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송 씨는 “치아보험 가입 전 치료받은 치아가 있으면 보험금 지급이 안된다는 말은 가입할 때 듣지 못했다”며 “이럴 줄 알았다면 보험에 가입 안했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이처럼 일부 보험사가 판매 실적을 올리려고 불완전판매를 조장하고 치과치료비 보험금 지급을 줄이기 위해 가입조건에 부적합한 소비자를 가입시키는 등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보험업계에선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치아보험 판매 단계에서 제대로 심사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며 “심사가 더욱 까다로워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치아보험은 생긴지 4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보험으로서의 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일부 치과질환이 있는 가입자들은 치과치료비를 줄일 목적으로 일부러 보험에 들거나,보험사도 이미 치과질환을 앓고 있는 소비자를 상대로 보험상품을 판매해 일단 떠넘기고 보자는 식의 ‘불완전판매’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대부분 치아보험이 무진단형 상품인 탓이다. 이에 보험업계는 치과검진을 의무화하는 진단형 치아보험을 늘리고, 보장개시 시기를 현행 가입후 1~2년에서 그 이후로 더 늦추자는 주장도 나온다.
진단형 치아보험 상품 출시 … 가입과 동시에 보장받지만 가입 어려워
지난 2월 동부화재와 그린손해보험이 기존 치아보험의 단점을 보완하며 가입과 동시에 치아보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진단형 치아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보험사가 지정한 병원에서 치아건강검진을 받은 후 치아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판단돼야 가입이 이뤄지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동부화재보험 설계사는 “신청자의 99%는 가입이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치아건강은 충치여부 치주상태 등을 종합해 볼 때 증상이 거의 없는 ‘양호’ 상태가 나오기는 하늘에 별따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행하는 ‘다빈도 외래진료 상병명’을 살펴보면 매년 치은염, 치주질환, 치아우식증(충치) 등 3대 치과질환이 상위 10위권에 포진돼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매년 발행하는 건강검진통계연보에는 성인 구강검진자 중 ‘치아와 입안이 건강함’이라는 소견비율은 전체 25% 수준에 불과하다.2010년 건강검진통계구강검진 종합소견 결과 전체 410만6503명 중 건강소견을 받은 사람은 111만5053명으로 약26%였다.
진단형 치아보험 가입비가 약 70% 비싼 것도 문제다. 진단형 치아보험을 신청했다가 구강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어 가입이 거부되면 무진단형 보험도 가입할 수 없다. 자신의 구강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처음부터 무진단형으로 신청하는 편이 좋다. 비용이 많이 드는 치과치료 때문에 고민하는 소비자를 위한 획기적인 보험상품이라 홍보하지만 미리 구강검진을 받게 해 가입시켜줄 선택권을 보험사가 가져 치아보험에 대한 리스크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에 소비자의 권익이 위축받고 있다.
진단형 치아보험은 라이나생명, ACE손해보험 등 기존 무진단형 치아보험이 갖고 있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어 소비자 피해는 크게 줄지 않을 전망이다. 임플란트 브릿지 틀니 등 보철치료는 치아 뿌리가 남아있거나 원래부터 치아가 없었던 경우는 보장대상이 아니다. 영구치를 뽑은 경우에만 보장이 가능하다.
가입자들 78.5% 보험금 제대로 받을지 걱정
국민의 70%가 치과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치료비가 비싸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치아보험은 반가운 보험 상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치아보험은 수요는 많지만 그에 부응하는 상품이 다양화되지 못해 소비자층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금융소비자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보험소비자들은 △치열교정·스케일링 등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는 상품개발(67.5%) △교통사고 등 상해로 인한 치과치료 보상범위 확대(59.5%) △어린이 충치치료 전용상품 확대(57%) △시가를 감안한 임플란트 비용 지급(26%) 등의 순으로 치아보험의 문제점을 꼽았다. 치아보험에 대한 불만으로는 치과치료 후 보험금을 청구할 때 지급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 걱정된다는 대답이 78.5%를 차지했고 상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56%나 됐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은 “치아보험은 구조가 복잡하고 충전, 크라운, 아말감, 레진 등 치과 전문용어가 많아 전문성이 요구되는 보험”이라며 “상품 특성을 다른 보험사 상품과 꼼꼼히 비교해보고 가입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보험 가입 전에 치과치료나 임플란트 등 보철치료를 받은 경우엔 보험가입을 거절당하고, 가입초기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감액기간 등 보상기간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가입 조건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내국인은 보험 가입 전 치과치료를 받으면 치아보험 가입이 거절되지만,해외에서 치과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국내에 의무기록이 남지 않아서 치아보험에 가입할 경우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시정해야 할 과제다. 보험가입자의 모럴해저드도 지적해볼 문제다.일부 가입자들이 자신의 병력을 속이고 부당하게 치아보험금을 받아가는 탓에 다른 가입자들은 정작 필요할 때 까다로운 보험금 지급절차 심사를 받아야 하고 이 때문에 보장을 아예 받지 못하거나 때를 놓치는 경우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K생명 보험설계사는 “몇몇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보험금 부당지급으로 이어져 보험사에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고, 보험금 지급 분쟁 및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