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만 되면 눈꺼풀이 자주 처지거나 사물이 겹쳐 보이고,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친다면 ‘중증근무력증’(Myasthenia Gravis)의 신호일 수 있다.
중증근무력증은 몸의 면역체계가 정상 조직이나 장기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다. 신경과 근육이 만나는 부위(신경근육접합부)의 수용체가 자가항체의 공격을 받아 신호 전달이 원활하지 않아 발병한다. 근육의 움직임은 운동신경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과 수용체의 결합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신호 전달이 왜곡되면 운동장애가 발생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오성일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중증근무력증은 자가항체가 신경근 접합부 내 아세틸콜린 수용체나 MuSK 단백질 등과 결합해 신호 전달을 방해하면서 근육 약화를 유발하는 질환”이라며 “적절한 면역치료와 약물 조절이 이루어진다면 장기 예후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조기 진단과 꾸준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10~13명 정도이며, 매년 새롭게 진단되는 환자는 10만 명당 약 2명 안팎이다. 환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로, 주로 20~40대 여성과 50대 이후 남성에서 많이 발병한다.
가장 흔한 초기 증상은 ‘눈꺼풀 처짐(안검하수)’,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다. 점점 얼굴·목·팔다리 근육이 약해져 말을 오래 하면 발음이 어눌해지거나 음식을 삼키기 힘들고, 심해지면 호흡근까지 약화돼 호흡곤란이 오고 기관삽관이나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하다.
김지은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교수는 “피로하면 증상이 악화되고 휴식을 취하면 호전되다 보니, 피로나 심리 문제로 오해해 조기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오전보다 오후에 증상이 심해지는 ‘일중 변동’이 다른 신경·근육 질환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말했다.
진단을 위해 혈액검사로 자가항체를 확인하고, 반복신경자극검사, 신경전도검사, 근전도검사 등을 진행한다. 특히 환자의 10~30%에서 흉선종이 함께 발견되므로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치료 목표는 ‘증상 조절’과 ‘부작용 최소화’다. 증상 조절 약물인 피리도스티그민(Pyridostigmine)을 비롯해 스테로이드, 면역억제제 등을 사용하며, 약 부작용 관리를 위해 정기적인 진료가 필요하다. 흉선종이 있는 환자는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야 하며, 환자 상태에 따라 최소 침습 흉강경 수술이나 로봇수술 등을 시행한다.
최근 중증근무력증 치료법에 많은 변화가 있다. 기존의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 중심의 면역조절요법 외에도 C5 보체억제제(질루코플란, 에쿨리주맙, 라블리주맙, 켐디시란 등)와 FcRn 억제제(에프가티지모드알파, 로자놀릭시주맙 등) 등 새로운 기전의 표적 치료제들이 등장하며 치료 옵션이 확장되고 있다.
오성일 경희대병원(왼쪽), 김지은 김지은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교수
오 교수는 “현재 일부 환자는 기존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경과를 보이고 있다”며 “신약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2024년부터 항-아세틸콜린수용체(AChR) 항체 양성인 성인 전신 중증근무력증 환자를 대상으로 라불리주맙, 질루코플란, 에프가티지모드알파, 로자놀릭시주맙 등이 사용 허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고가의 비용 구조로 인해 약물 접근성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있어 급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오 교수는 “사회활동을 하던 청장년층이 중증근무력증으로 인해 갑작스레 경력 단절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평소에 적절히 관리된다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 및 보호자를 위한 조기 진단과 치료 개입은 물론, 고비용 신약의 보험 급여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증근무력증은 완치보다는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라며 “조기에 진단받고 꾸준히 치료하면 대부분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감염, 과로, 스트레스, 수면 부족, 더운 환경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하고, 일부 항생제·진정제·마그네슘제제 등 약물도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다른 진료과에서 처방받을 때는 반드시 중증근무력증 환자임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증근무력증은 희귀·난치질환으로 분류되지만, 조기 진단과 꾸준한 관리만 한다면 두려운 병이 아니다”며 “환자와 가족이 함께 관리해야 할 질환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