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의료영상에 인공지능(AI) 기반 소프트웨어 기술을 접목해 질병을 질병을 진단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에 영상의학 전문가들이 AI 성능을 모니터링할 제도를 보완해 철저한 검증으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대한영상의학회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적절한 적용에 대한 포럼’을 열고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선진입 의료기술’ 및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제도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AI를 이용한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들이 꾸준히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제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만 통과하면 새로운 의료기술로 비급여 시장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의학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근거 창출 연구 의무화 폐지 △임시 등재 기간 2→4년 연장 △안전성 문제가 없다면 퇴출 불가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다.대한영상의학회 최준일 정책연구이사(서울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근거 창출 연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변경하고,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특성상 2년이면 충분히 유효성을 판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2년을 더 연장하는 것은 (진단보조 AI 의료기술에 대한) 근거 창출 노력은 하지 않고 조기에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경우 의료기술과 인체 위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문제가 없다면 퇴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꼽았다. 근거나 유효성이 부족해도 인체에 대한 위해만 없다면 시장에 선진입해 영원히 급여 혹은 비급여로 남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AI 의료기술은 진단능력 향상, 의료인 업무 부담 경감, 의료 결과 향상 등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진단보조 AI가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의료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도 공존하고 있다.
대한영상의학회가 발간하는 학회지(KJR)의 박성호 편집장(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은 “많은 연구를 통해 통제되거나 제한된 연구 환경에서 AI가 환자와 의료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잠재력이 확인됐지만, 실제 진료에 널리 보급돼 개선 효과를 보여준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AI 도입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려면 전문가에 의한 지속적인 AI 성능 모니터링 등이 필요하고, 이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편집장은 “AI 진단보조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과 검증을 간과하거나 생략하고 환자 중심이 아닌 산업적 부분을 강조한 근시안적인 제도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준범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혁신의료기술 트랙과 평가 유예제도 트랙이 서로 중복된다고 꼬집었다.
서 교수는 “혁신의료기술 트랙에서 3년간 비급여로 청구하다가 평가에 떨어질 것 같으면 이 트랙을 버리고 평가 유예로 갈아타서 4년간 비급여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의미”며 “수술이나 시술을 위해 만들어진 평가유예 제도가 진단보조 인공지능으로 대상이 확대되면서 혼란이 가중됐고,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경우 혁신의료기술 트랙으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즉시 진입 제도의 경우 아무런 평가없이 비급여로 청구할 수 있게 해주고 평가에 떨어져도 시장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퇴출 기전 자체가 없다는 의미로 선진입 제도의 취지는 물론 건강보험 급여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질병의 진단 영역에 AI 소프트웨어 도입을 활성화하려면 환자, 사용자(의사·병원), 개발자, 정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 설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충욱 대한영상의학회 보험이사(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학회는 AI 진단보조수가를 검사비의 약 5%를 적절한 비용으로 제안했지만, CT 같은 방사선 특수영상 AI 소프트웨어의 보험수가는 검사비의 2.5~3%로 책정돼 있고, 낮은 금액으로 인해 모든 회사가 비보험 수가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를 대표한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적용되는 신의료기술의 시장 진입은 매우 신중하고 꼼꼼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의사 등 전문가들이 치료나 진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린 기기나 기술이 퇴출도 안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찬익 휴런 부사장은 “검증을 통한 (AI 의료기술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는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전 세계 수 많은 기업들이 인공지능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근거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학 협력 강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승은 대한영상의학회 회장은 “의료 분야에서 AI를 이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지속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며 “제대로 된 검증과 퇴출이 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 현 제도를 재검토해 검증은 더 강화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