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 문제로 체내 세포에 특정 당지질이 축적되는 희귀질환인 고셔병은 다행히 치료제가 개발돼 있다. 하지만 고셔병에 의해 일부 환자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진 발작, 인지기능 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까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기침 가래 증상을 가라앉히는 감기약으로 사용되는 암브록솔 성분이 고셔병 증상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약 15년 전 발표된 바 있다. 걷지 못하던 환자가 암브록솔 덕분에 걷게 됐다는 임상사례도 나왔다. 하지만 효과가 없다거나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킨다는 반론도 제기된 바 있다. 그동안 암브록솔의 장기적인 효과를 입증하는 추가 연구가 없었는데, 이범희·황수진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교수팀을 이를 약 10년 간 추적관찰한 연구결과를 이번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3년부터 약 10년 동안 고셔병 환자 중 신경학적 증상이 있는 환자 6명을 대상으로 기존 표준치료법인 효소대체요법(enzyme replacement therapy, ERT)과 암브록솔(ambroxol, 오리지널약 ‘뮤코펙트정’, 정당 보험약가 59원) 치료법을 병용한 결과, 신경학적 증상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고 3일 밝혔다. 특히 초기에 치료를 시작한 환자들은 9년 후부터는 발작 증상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등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10만명 당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셔병은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glucocerebrosidase, GBA, 또는 글루코시다아제, glucosidase) 효소 결핍으로 글루코세레브로시드(glucocerebroside, GCB, 또는 글루코실세라마이드, glucosylcermide, Gb1)라는 당지질이 리소좀 안에 쌓이면서 발생한다. 결국 이 당지질이 체내에 축적돼 주로 비장·간·골수에 쌓여 비장·간비대증, 골손상, 뼈통증 등을 일으킨다. 비장 기능 이상으로 적혈구와 혈소판이 파괴돼 빈혈, 코피, 월경과다 등이 흔히 나타난다.
다행히 결핍된 효소를 추가로 공급하는 치료법인 효소대체요법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지만, 효소대체요법으로는 고셔병 환자 중 일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 환자 중에서는 절반 정도가 겪는 발작, 인지기능장애, 안구운동 문제, 손떨림, 보행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은 치료할 수 없다. 효소대체요법에 의해 추가로 공급된 효소가 뇌까지 도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암브록솔은 고셔병 때문에 결핍되어 있는 효소에 달라붙어 그 기능을 강화시키고, 뇌까지 공급될 수 있게 한다고 발표된 바 있다. 샤페론은 단백질의 접힘(folding) 및 펼침(unfolding), 또는 단백질 복합체의 조립(assembly) 및 해체(disassembly)를 돕는 단백질을 의미하며, 단백질의 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암브록솔도 샤페론 요법의 하나로 간주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6명의 고셔병 환자 중 4명은 신경학적 증상이 상대적으로 약한 증상 초기 환자들이었으며, 2명은 스스로 걷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진행된 환자였다.
연구 결과 신경학적 증상 초기 환자들의 발작 빈도는 2주에 5번 정도였는데 병용요법 후 발작 횟수가 조금 증가했다가 5년 후부터 약 2번, 9년 후부터는 발작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학적 증상이 진행된 환자들도 2주에 약 10번 발생하던 발작 증상이 치료 10년 후에는 절반인 5번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환자들의 고셔병 삶의 질 점수(mSST)를 측정했는데, 신경학적 증상 발생 초기 환자들은 평균 7.5점에서 병용 치료 10년 후 6점으로 낮아졌으며, 신경학적 증상이 진행된 환자들은 평균 17점에서 11점으로 낮아졌다. mSST는 낮을수록 삶의 질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6명 중 5명의 환자에서 저요산혈증, 기침 및 가래, 단백뇨 등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경미한 수준으로 모든 환자가 큰 문제없이 회복되었다.
이범희 교수는 “아직 고셔병 신경학적 증상 치료를 위한 약이 개발돼 있지는 않다보니 하루에 수십 알의 감기약을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암브록솔 성분의 약으로 고셔병의 신경학적 증상을 큰 부작용 없이 호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장기 연구로 밝혀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 환자의 5% 정도가 고셔병 발생 유전자의 보인자라고 알려진 만큼 고셔병과 파킨슨병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에 이번 연구결과가 바탕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혈액학회지(American Journal of Hematology, IF=10.1)’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