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 각지에서 보고된 백일해 환자는 1654명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같은 기간 누적 환자가 219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올해 환자가 7배 넘게 많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환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캐나다, 호주, 필리핀 등으로도 유행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올들어 미국에서 신고된 백일해 환자는 486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46명보다 2.8배 증가했다. 펜실베이니아, 캘리포니아, 뉴욕, 일리노이 순으로 환자가 많았다. 미국 서부 워싱턴과 오리건에선 지난해보다 환자가 각각 6배, 8.7배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선 경계 경보도 발령됐다. 워싱턴주는 1세 미만 영유아가 호흡기 증상 등을 호소하면 백일해 진단을 고려해보라고 의료진들에게 권고했다. 오리건주는 1세 미만 영유가 감염을 막기 위해 임신 27~36주차에 백신을 접종해달라고 권고했다.
신상엽 KMI한국의학연구소 수석상임연구위원(감염내과 전문의)은 ”올해 전 세계적으로 백일해 유행의 기세가 무섭다“며 ”미국과 중국, 필리핀 등에서는 대규모 환자 발생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학교 등 교육시설에서 대규모 유행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해의 특징, 발작성 기침과 높은 전파력
백일해(百日咳, Pertussis, Whooping cough)는 백일해균(Bordetella pertussi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세균성 호흡기질환으로 국내에서는 제2급 법정감염병으로 분류된다. 백일해의 기침은 일반 감기의 기침과 달리 발작성 기침(Whooping cough)이 나타난다. 발작성 기침은 날숨 동안에 짧고 연속적인 기침이 계속되다 날숨이 끝나면 갑자기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 ‘흡(whoop)’ 하는 소리를 내는 특징을 보인다. 발작성 기침 도중 얼굴이 빨개지고 눈이 충혈되며, 기침 끝에 구토가 동반되고, 끈끈한 점액성 가래가 나오기도 한다.
백일해는 이름처럼 100일 동안 기침을 하는 병이라는 의미로 중국에서 붙여진 명칭이지만 실제 발작성 기침이 두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백일해는 통상적인 기침을 100일 동안 하는 병이 아니라 수 주에(약 6~8주) 걸쳐 매우 고통스러운 발작성 기침을 경험하는 병이다. 백일해는 7~10일의 잠복기(4~21일)를 거치는데 증상이 거의 없는 감염 초기에 전파력이 가장 높아 예방이 어렵다.
백일해의 증상은 카타르기, 경해기, 회복기 등 크게 3단계로 나타난다. 카타르기(catarrhal stage)는 일반 감기와 비슷하게 콧물, 결막염, 눈물, 경한 기침, 미열 등 상기도 감염 증상이 1~2주간 나타난다. 균의 증식이 가장 활발하며 전염력이 높은 시기다.
경해기(痙咳期, Spasmodic 또는 paroxysmal stage)에는 짧은 발작성 기침과 끝에 길게 숨을 들이쉴 때 ‘훕(Whoop)’ 소리가 나는 기침을 특징으로 하며, ‘발작기’라고도 부른다. 기침이 심한 경우 얼굴이나 눈이 충혈되거나, 기침 후 구토, 끈끈한 가래, 청색증, 무호흡 등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기는 2~4주 또는 그 이상 지속된다.
이후 1~3주에 걸친 회복기(convalescent stage)에서 점차 발작성 기침의 횟수나 정도가 호전되는 양상을 보인다.
백일해의 원인 병원체는 세균으로 바이러스보다 훨씬 무거워 환자가 기침을 해도 비말전파만 가능하고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가족 내 2차 발병률이 80%를 넘는 경우가 많고 ‘기초감염재생산지수’가 10을 훨씬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환자 1명이 10명 이상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공기매개 바이러스 감염병인 홍역과 비슷할 정도로 전파력이 매우 높다.
백일해는 영유아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의 치명적인 감염병이다. 성인은 증상이 없거나 기침을 조금 오래하는 정도의 증상으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감염 예방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성인 환자를 통해 가정이나 어린이집 등에서 아이에게로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
백일해가 왜 최근에 유행하는가?
국내에서는 1958년에 본격적으로 DPT백신을 도입한 이후 백일해가 줄었다. 백신 부작용으로 인해 접종이 줄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부작용이 감소된 부분세포 백신 도입 후 백일해 발병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상남도의사회는 “최근 백일해 증가는 백일해 검사를 많이 하게 돼 진단이 늘어난 이유도 있다”며 “국내서 백일해가 언제부터 증가됐는지 정확한 시점은 특정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최근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의사회는 “국내서 백일해는 어느 정도 토착화됐다고 판단한다”며 “백일해의 국내 병원성은 외국에서 유행하는 것보다 약할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래서 증상이 비교적 가볍게 나타나고, 그러다 보니 의료 현장에서 진단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인의 경우 백일해의 증상은 대부분 무증상이지만 일부에서 기침을 할 수 있으며, 이런 기침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백일해 검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고 감염 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많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만성기침을 하는 성인에서 백일해가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진 국내 논문도 이미 발표된 바가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경남도의사회는 설명했다.
빠른 진단 및 치료와 백신 접종이 중요
백일해는 특징적인 발작성 기침 증상을 보이므로 의사가 문진과 환자와 접촉한 병력조사 등을 통해 임상 진단할 수 있다. 백일해의 주된 진단방법은 비인두 분비물에 대한 배양과 PCR검사다. 하지만 균 배양은 매우 힘들어서 실제로는 PCR검사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PCR검사는 증상 발현 3~4주 후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PCR검사는 한 번 만으로는 백일해 균을 확인을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어 추가 검사가 요구된다.
항체를 활용하는 혈액검사는 항체가로 진단한다. 하지만 더 정확한 방법과 기준이 설정될 필요가 있다. 더 나은 백일해 진단법이 나와 진단이 용이해진다면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가능하며, 확산을 예방하고 불필요한 검사와 약물을 처방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이밖에 흉부 방사선 검사가 진단에 도움이 된다.
증상 초기에는 아지스로마이신, 클래리스로마이신 등 마크로라이드(Macrolide) 계열의 항균제를 투여해 증상을 빨리 호전시키고 전염력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항균제 치료가 늦게 시작되면 효과가 제한적이다. 모든 확진자는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엔 3주, 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치료 시작 후 5일간 격리가 권고된다.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는 마크로라이드 계열 항균제를 복용하는 화학예방요법이 도움이 되므로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
백신 접종 요령과 더 나은 백신 개발을 위한 과제
백일해 예방을 위해서는 감염 시 중증으로 진행할 수 있는 1세 미만에 적기 백신 접종(2·4·6개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후 추가접종 3회(15~18개월, 4~6세, 11~12세)도 꼭 챙겨야 한다.
임신부는 매 임신마다 27~36주에 백신을 접종한다. 모체에서 형성된 방어 항체가 태반을 넘어 태아에게 넘어가 아직 접종받기 전 영아의 백일해를 예방해 준다. 실제 접종을 받지 않은 산모에서 태어난 2개월 미만 영아의 경우 백일해 사망률이 1%에 달한다.
백일해는 가족 내 2차 발병률이 매우 높다. 생후 12개월 미만 영아와 접촉하는 가족 및 의료기관이나 보육시설 종사자는 아이와 접촉하기 2주 전까지 백신 접종을 권고한다.
미국의 경우 음모론에 기반한 백신반대운동(Anti-Vaccination Movement)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확산되면서 백신 접종자 수가 크게 줄었고, 그 영향으로 청소년과 성인에서 백일해의 발생이 증가했다. 이는 지역사회 감염원으로 작용해 청소년, 성인들을 위한 백일해 백신이 개발됐다.
국내 1세 미만 아이들의 백일해 백신 접종률은 97.3%에 이를 정도로 높다. 발병 초기 항생제 등으로 치료하면 경과가 좋다.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성인 백신 접종률이 낮은 데다 1세 이후 아이들의 추가 접종률 떨어지는 게 약점이다. 질병관리청은 생후 2개월, 4개월, 6개월 차에 맞는 기초 접종과 생후 15~18개월, 4~6세, 11~12세에 맞는 추가 접종을 모두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아이를 돌보는 부모나 조부모 등도 백신을 맞는 게 좋다.
미국은 백일해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Td백신(파상풍 및 디프테리아) 접종을 없애고 Tdap백신(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 접종으로 바꿨다. 세계적으로 7세 이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백일해 백신은 두 회사의 제품이 있다. 사노피아벤티스의 ‘아다셀주’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부스트릭스프리필드시린지’가 있다.
참고로 Tdap는 성인 및 청소년용(8세 이상)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백신이다. 소아(8세 미만)에서는 DTa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백신을 맞는다. 소문자와 대문자는 항원량의 차이를 말하며 대문자가 항원량이 많다. 성인에서 소아 용량의 항원량을 맞을 경우 부작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성인에서 디프테리아, 백일해의 항원량을 줄여서 맞히게 된다.백일해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위협적인 감염병으로 남아 있다. 보다 효과 좋고 안전한 차세대 백일해 백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보령바이오파마가 전량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는 성인용 Tdap(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백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2년 12월 13일 'BVN008'에 대한 임상 1상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았다.
보령바이오파마는 Tdap 백신에 앞서 DTaP 백신에 대한 국내 허가를 받은 바 있다. DTaP 백신과 Tdap 백신은 모두 디프테리아(Diphtheriae)·파상풍(Tetanus)·백일해(acellar Pertussis) 항원을 포함한 백신이다. 상용화 시기를 2028년으로 잡고 있다. 다만 백신 원액은 수입할 예정이기 때문에 완전 국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유바이오로직스가 백일해 백신 원액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LG화학은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소아마비, 뇌수막염, B형간염을 예방하는 6가 혼합백신 ‘LR20062’을 생산하기 위해 핵심 항원인 ‘정제 백일해’ 원액 생산을 유바이오로직스에 위탁하는 계약을 지난 4월 24일 체결한 바 있다. 6가 백신이 나온다면 기존 5가(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소아마비, 뇌수막염) 백신 대비 접종 횟수를 2회 줄일 수 있다. 이 계약에 따라 LG화학은 유바이오로직스에 정제 백일해 균주를 제공하고, 원액 제조공정·시험법 기술을 이전한다.
신상엽 위원은 “백일해는 장기간 지속되는 발작성 기침을 특징으로 하는 전파력이 매우 높은 감염병으로 특히 소아청소년기에 1주 이상 발작성 기침이 나타나는 경우 반드시 백일해를 의심하고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백일해가 소아청소년기 적기 접종을 통해 예방이 가능하고 항균제 치료도 효과적이지만, 백일해의 가장 고위험군은 접종 전 영아이므로 임신부와 태어난 아이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는 사전에 백신 접종을 통해 아이가 백일해에 감염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