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신장병 치료제 개발 전문기업 아케비아테라퓨틱스(Akebia Therapeutics, 나스닥 AKBA)는 만성 신장병으로 인한 빈혈을 치료하기 위한 경구용 정제 ‘바프세오’(Vafseo 성분명 바다두스타트 vadadustat)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얻었다고 27일(현지시각) 발표했다.
바프세오는 이번에 최소한 3개월 이상 투석치료를 받고 있는 성인 만성 신장병 환자의 빈혈을 치료하기 위한 용도로 승인됐다.
바프세오는 1일 1회 복용하는 경구용 저산소증 유도인자 프롤릴 수산화효소(Hypoxia-inducible factor prolyl hydroxylase, HIF-PH) 저해제의 일종이다. HIF는 저산소 상태에서 인체가 적응할 수 있도록 산소 감지 경로가 켜지고 혈관신생, 적혈구생성, 해당작용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상향 발현하도록 유도한다. HIF-PH(hypoxia-inducible factor-proline dioxygenase와 같은 말)는 HIF를 분해하는 효소다.
이 약은 HIF-PH를 억제함으로써 인체가 마치 저산소증에서 적응하려는 것을 흉내내게 해 내인성 에리스로포이에틴( erythropoietin, EPO) 생성을 자극하게 된다. EPO의 약 90%가 신장에서 생성되는데, 만성신장병 환자는 EPO의 감소로 빈혈을 겪게 된다.
다시 말해 바프세오는 저산소증에 대응하는 신체적인 반응을 활성화시켜 적혈구 생성에 관여하는 에리스로포이에틴의 생성을 촉진하는 기전을 통해 빈혈을 개선한다.
앞서 FDA는 2022년 3월에 바다두스타트의 허가 신청에 포함된 자료가 유리한 유익성-위험성 평가를 뒷받침하지 않는다며 승인을 거절한 적이 있다. 당시 FDA는 아케비아에 위험성 대비 유익성을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임상시험을 수행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에 아케비아는 ‘바프세오’는 ‘INNO2VATE’ 임상시험에서 도출된 효능‧안전성 자료와 일본에서 이루어진 시판 후 안전성 조사자료를 근거로 FDA에 재승인신청을 제출했고 2023년 10월 26일, FDA가 이를 받아들여 ‘클래스2’로 분류하고 6개월 동안 심사하기로 했다. 심사기한은 2024년 3월 27일로 설정돼 있었다.
‘INNO2VATE’ 임상 결과는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지난 2021년 게재됐다. 최초 FDA 승인 신청 당시에도 참조자료로 제출됐다.
최초 승인 신청 당시에는 비투석 및 투석 환자 모두에 대해 승인신청이 이뤄졌으나, 작년의 재승인 신청에서는 투석 환자로 국한해 적응증을 축소한 가운데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는 비투석 환자에서 주요심장 부작용(Major Adverse Cardiovascular Events, MACE)이 기존 치료제(대조약)인 암젠(Amgen)과 쿄와하코기린의 ‘아라네스프프리필드시린지주’(Aranesp, 성분 darbepoetin alfa)와 비교해 비열등성 지표를 충족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아케비아는 FDA가 승인을 거부한 2022년 3월 이후 대대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아울러 그해 9월 글로벌 파트너인 일본 오츠카와 협력 및 라이선스 계약을 종료하면서 바다두스타트에 관한 권리를 회수했다.
다만 일본 미쓰비시다나베파마가 일본과 특정 아시아국가에서 바프세오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미국 허가를 계기로 바프세오는 일본, 미국, 유럽연합 등 전 세계 37개국에서 발매를 승인받았다. 일본에서 2020년 6월, 유럽에서 2023년 5월에 각각 허가받았다.
아케비아테라퓨틱스의 존 버틀러(John P. Butler) 대표는 “이번 FDA의 허가승인으로 미국에서 만성 신장병으로 인한 빈혈을 진단받았고 투석치료를 받고 있는 약 50만명의 환자에게 치료대안을 공급할 수 있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만성 신장병 환자들은 투석치료센터에서 적혈구 생성 촉진제(에리스로포이에틴) 주사제를 사용해 빈혈을 치료받고 있다. 하지만 목표 범위 이내로 헤모글로빈 농도를 높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새로운 치료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PRO2TECT’ 및 ‘INNO2VATE’ 프로그램의 사외운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바프세오의 글로벌 3상 임상을 주도한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의 글렌 셔토우(Glenn M. Chertow) 신장내과 교수는 “투석치료 유지요법을 받고 있는 환자들이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목표치 범위 이내에서 헤모글로빈 농도를 효과적으로 높이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줄 추가적인 치료대안을 사용하면 유익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케비아테라퓨틱스는 신장병 분야에서 강력한 영업력을 구축한 자체 영업팀을 통해 바프세오를 발매할 방침이다. 아울러 미국 내 투석치료기관들에 혁신적인 치료제들을 공급하고 있는 호주-스위스 제약기업 CSL비포르(CSL Vifor)로부터 도움을 얻는다는 복안이다. 호주 기반의 CSL은 2021년 12월 14일, 스위스 비포르파마를 117억달러에 인수했다.
비포르파마는 피인수 당시 FDA 허가를 받은 성인 중증 항호중구세포질항체 관련 혈관염(Anti-neutrophil cytoplasmic antibody associated vasculitis, ANCA 관련 혈관염, AAV) ‘타브네오스’(Tavneos 성분명 아바코판, avacopan, 코드명 CCX168)의 미국 외 판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미국 코네티컷주 스탬퍼드(Stamford) 소재 카라테라퓨틱스(Cara Therapeutics)와 공동 개발한 만성신장질환(CKD) 환자의 투석에 따른 중등도~중증의 가려움증 치료제인 ‘코르수바’(Korsuva, 성분명 디펠리케팔린, difelikefalin, 코드명 CR845) 주사제의 판권도 갖고 있다.
HIF-PH 억제제 계열로는 바프세오 외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제스더브록’(Jesduvroq 성분명 다프로두스타트 daprodustat)과 피브로겐(FibroGen) 및 아스트라제네카(AZ)의 ‘에브렌조정’(EVRENZO 성분명 록사두스타트 roxadustat), 일본타바코의 ‘에나로이정’(ENAROY 성분명 에나로두스타트, enarodustat) 등이 있다.
다프로두스타트는 투석 환자와 비투석 환자 모두에 대한 임상시험에 성공해 2022년 상반기 미국과 유럽에 신약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제스더브록이 2023년 2월 1일, 최소한 4개월 이상 투석치료를 받고 있는 성인 만성 신장병 환자에게 동반된 빈혈 증상을 치료하는 적응증을 획득했다. 그러나 당초 신청했던 ‘투석을 받고 있지 않은’ 환자에 대한 치료 용도는 승인되지 못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에브렌조 역시 FDA 승인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다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승인됐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한국과 중국의 판권을 유지하고 나머지 지역의 권리를 올해 2월 피브로겐에 반환했다.
국내서는 에브렌조(록사두스타트)와 ‘바다넴정’(바다두스타트)가 허가돼 있다. 일본타바코가 개발하고 JW중외제약이 기술이전을 받아 국내서 제조하는 ‘에나로이’도 허가받았다. 아직 급여를 받은 품목은 없다. 이번에 미국서 승인된 다프로두스타트 성분은 국내에 상륙하지 않았다.
그동안 업계 관계자들은 HIF-PH 억제제가 산소 수준 감소에 대해 인체가 적응하는 자연적인 반응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제제의 승인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암젠의 ‘에포젠’(Epogen)이나 존슨앤드존슨의 ‘프로크리트’(Procrit)와 같은 기존 표준치료 주사제와 같은 적혈구생성자극에서 볼 수 있는 심장 관련 부작용을 환자가 피할 수 있는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유효성 및 안전성이 기존 치료제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