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AZ)는 AKT 억제 표적항암제인 신약 ‘티루캡정’(Truqap, 성분명 카피바서팁, capivasertib)이 이 계열 최초의 신약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고 17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이 신약은 AZ의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 SERD)인 ‘파슬로덱스주’(Faslodex 성분명 풀베스트란트 fulvestrant) 병용요법제로서, PIK3CA, AKT1, PTEN 변이 가운데 하나 이상의 바이오마커를 가진 호르몬수용체(HR) 양성, 사람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2(HER2) 음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 성인 환자의 치료제로 허가됐다. FDA는 티루캡 승인과 더불어 PIK3CA, AKT1, PTEN 바이오마커를 확인할 수 있는 동반진단 검사법도 승인했다.
대상 환자는 전이성 환경에서 최소 한 가지 이상의 내분비 기반 요법을 받은 후 진행됐거나, 보조요법 도중 또는 보조요법 완료 후 12개월 이내에 재발을 경험한 환자다.
이번 승인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올해 6월 1일자에 게재된 ‘CAPItello-291’ 임상 3상 시험의 결과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티루캡+파슬로덱스 병용요법은 이 임상시험에서 PI3K/AKT 경로 바이오마커 변이가 있는 암 환자의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파슬로덱스 단독요법 대비 50%가량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게재된 40%보다 향상된 업그레이드 평가다.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은 티루캡+파슬로덱스 병용군이 7.3개월, 파슬로덱스 단독군이 3.1개월이었다(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선 각각 7.2개월, 3.6개월).
CAPItello-291에서 티루캡+파슬로덱스의 안전성 프로파일은 이전 임상시험에서 관찰된 것과 유사했다.
AZ는 2005년 영국 아스텍스테라퓨틱스(Astex Therapeutics)로부터 티루캡의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당시 선불로 275만파운드를 지불하고, 마일스톤으로 최대 1억5000만 파운드를 약속했다.
유방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흔한 암으로 매년 전세계에서 230만명이 새로 진단된다. HR 양성 유방암은 가장 흔한 유방암 아형이며, 진행성 HR 양성 유방암 환자의 최대 50%는 PIK3CA, AKT1, PTEN 변이 중 한 가지를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암을 유발하는 RAS-PI3K-AKT-mTOR 신호전달 캐스케이드에서 AKT를 표적하는 항암제는 비교적 최근에 연구가 이뤄졌다.
세린/트레오닌 특이적 인산화효소(serine/threonine-specific protein kinases)인 AKT는 PI3K-AKT-mTOR 신호전달경로의 핵심 구성요소로 세포 성장, 증식, 자살(apoptosis), 전사. 당대사 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단백질키나제B(Protein kinase B, PKB)라고도 한다. 이 경로의 이탈(Deregulation, 비정상화)은 호르몬수용체 양성(HR+, 에스트로겐 및 프로게스테론 양성) 질환, HER2 증폭, 삼중음성유방암(TNBC,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HER2 모두 양성)을 포함한 유방암에서 흔하게 관찰된다.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의 코말 자베리(Komal Jhaveri) 박사는 “진행성 HR 양성 유방암 환자는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1차 내분비요법 후 암 진행 또는 항암제 내성을 경험한다”며 “따라서 새로운 접근법의 효과를 시급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카피바서팁과 풀베스트란트 병용요법은 이런 환경에서 특정 바이오마커를 가진 환자의 최대 절반에게 절실히 필요한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전달함으로써 질병 진행을 지연시키고 질병을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아스트라제네카 항암제사업부 데이브 프레드릭슨(Dave Fredrickson) 집행 부회장은 “미국에서 신속한 티루캡 승인은 HR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 PI3K/AKT 경로의 중요한 역할을 시사하며 이러한 암 환자의 최대 50%가 이러한 변이를 동반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진단 시 검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승인은 미국에서 특정 유형의 유방암 환자에게 중요한 계열 내 최초의 새로운 옵션을 제공한다”며 “전 세계에서 많은 유방암 환자들이 티루캡을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FDA는 티루캡+파슬로덱스 신약승인신청을 지난 6일 접수하면서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하고 및 ‘프로젝트 오르비스’ 프로그램에 따라 호주, 브라질, 캐나다, 이스라엘, 싱가포르, 스위스, 영국 등의 보건당국과 동시에 심사를 진행했다. 아울러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에서도 이에 대한 승인 승인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승인을 넣고 미국 제약업 애널리스트들은 “PIK3CA, AKT1, PTEN 중 하나의 바이오마커를 보유해야 한다는 단서 조건은 티루캡의 처방 범위를 제약했다”며 “탐색적 분석 결과 유전자 서열 분석 결과가 알려지지 않은 일부 환자를 제외하고 AKT 경로에 변이가 없는 유방암 환자의 무진행생존율을 21% 향상시켰기 때문에 FDA의 바이오마커 제한은 심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FDA가 AKT 변이 음성 환자군을 대상으로 분석해 티루캡 병용요법이 생존기간 연장에 기여하지 않거나 오히려 손해를 끼칠 것을 감안해 이번 승인 결정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과거에 나온 CAPItello-291의 전체생존율에 대한 중간분석에서 티루캡+파슬로덱스 병용요법은 AKT 변이군에서 사망 위험을 31%, 전체 모집단에서 26% 줄였다. 당시 AKT 무(無) 변이군의 전체 생존율 성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프레드릭슨 부회장은 “향후 임상 연구자들이 환자를 계속 추적관찰하면서 지금 이상으로 라벨을 확장할 수 있는지 여부를 다시 검토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이번 제한된 라벨은 환자, 의사, 보험사 등으로 하여금 더 넓은 적응증을 갖는 과정에서 전향적, 포괄적으로 유효성을 입증해야 할 경제적, 정서적 부담을 주게 됐다. 주식투자기관 리링크(Leerink)의 애널리스트들은 티루캡의 좁아진 적응증 범위 때문에 연간 최대 매출 추정치를 이전의 23억6000만달러에서 12억8000만달러로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선 2차 유방암 치료 환자의 60%가 차세대유전자서열분석(NGS) 검사를 받고 있으며, HR 양성 유방암 환자의 50%가량이 AKT 변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좁은 라벨로 인한 제약사의 손실은 다소 줄어들 수 있다. 또 티루캡 등장으로 2019년에 ‘이전에 내분비요법제로 치료한 경험이 있는 HR+/HER2-, PIK3CA 변이 유방암’에 대해 파슬로덱스와의 병용요법으로 허가받은 노바티스의 PIK3CA 억제제 계열 ‘피크레이정’(Piqray, 성분명 알펠리십 alpelisib)을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티루캡은 3상 ‘CAPItello-290’ 임상시험을 통해 삼중음성유방암의 1차 치료제로 평가받고 있다. 판독 결과는 2024년 상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CAPItello-292’ 3상 임상시험은 초기 HR+/HER2-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티루캡 및 파슬로덱스에 화이자의 CDK4/6 억제제인 ‘입랜스캡슐’(Ibrance 성분명 팔보시클립, palbociclib)을 추가해 연구 중이다.
AZ는 이번 티루캡 승인으로 유방암 무기고에 신병기를 추가하게 됐다. 일본 다이이찌산쿄(Daiichi Sankyo)와 제휴해 개발한 항체약물결합체(ADC)인 ‘엔허투주100mg’(Enhertu 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 fam-trastuzumab-deruxtecan-nxki, T-DXd)는 2022년 8월에 HER2 저발현, 수술불가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의 2차 이상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HER2 저발현은 과거에 사실상 HER2 음성으로 간주됐다.
이보다 앞서 엔허투는 2022년 5월, 엔허투는 ‘이전에 두 개 이상의 항 HER2기반의 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엔허투가 HER2 양성과 음성을 넘나드는 유방암 치료제가 된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또 작년에 긍정적인 2상 데이터를 내놓고 현재 다양한 3상 시험을 진행 중인 경구용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 SERD) 신약후보물질인 카미제스트란트(camizestrant, AZD9833)를 개발 중이다. 파슬로덱스의 단점을 극복할 차세대 제제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