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티(REDWOOD CITY)의 코헤루스바이오사이언스(Coherus BioSciences)는 중국 상하이와 장쑤성 쑤저우에 거점을 둔 준시바이오사이언스(Junshi Biosciences, 君實生物)로부터 2021년 2월 도입한 PD-1 억제제인 토리팔리맙(Toripalimab)이 백금 화학요법 이후 재발성 또는 전이성 비인두암(nasopharyngeal carcinoma, NPC)에서 젬시타빈/시스플라틴과 병용하는 2차 이상 치료제로 지난 27일(미국 현지시각)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개발된 면역관문억제제로는 처음으로 FDA 승인을 받은 항암제가 됐다. PD-1 억제제인 토리팔리맙은 중국에서 승인돼 현재 ‘투오이’(Tuo Yi)란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으며 환급목록(보험급여)에도 포함돼 있다. 미국 내 상품명은 ‘록토지’(Loqtorzi)로 정해졌다.
중국에서 개발돼 미국에서 승인된 항암제 신약은 베이진(BeiGene)이 개발한 외투세포림프종 치료제인 ‘브루킨사’(Brukinsa, 성분명 자누브루티닙, zanubrutinib)가 처음이다. 브루톤티로신키나아제(BTK)를 표적으로 하는 2세대 BTK 억제제로 2019년 11월 15일 FDA 승인을 받았다. 따라서 록토지는 미국에서 승인된 중국의 두 번째 항암제 신약이 됐다.
중국 기준으로는 준시바이오의 투오이가 첫번째 PD-1 억제제이며, 이노벤트의 '타이비트'(Tyvyt, 성분명 신틸리맙 sintilimab), 항서제약(헝루이)의 '아이루이카'(AiRuika, 성분명 캄렐리주맙 Camrelizumab), 베이진의 '바이제안'(Baize'an, 티스렐리주맙 tislelizumab), 아케소(Akeso) 및 시노바이오팜((Sino Biopharmaceutical)이 공동 개발한 '안니커'(安尼可, AnNiKe 성분명 펜풀리맙 Penpulimab) 등이 순서대로 중국에서 허가받았다.
라이선스 인(in) 제품인 중국의 리스팜(Lee's Pharm, 원개발사 미국 소렌토테라퓨틱스는 2023년 2월 파산 결정, 리스팜은 신라젠 녹십자 유한양행과 제휴사)의 소카졸리맙(socazolimab)까지 포함하면 소카졸리맙이 중국 내 다섯번째 PD-1 억제제가 되고, 안니커가 여섯번째다. 현재 중국에서 환급목록(보험급여 적용 대상)에 포함된 면역관문억제제는 토리팔리맙, 신틸리맙, 티스렐리주맙 등 단 세 품목이다.
록토지의 이번 비인두암 미국 승인은 중국내 POLARIS-02(NCT02915432) 2상과 싱가포르, 대만 등이 포함된 아시아권에서 진행된 JUPITER-02(NCT03581786) 3상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이들 임상시험에서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은 11.7개월, 화학요법 8.0개월 대비 질병의 진행과 사망의 위험을 48% 낮춘 것으로 해석됐다. 토리팔리맙은 미국에서 식도암에 대한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아 적응증 확대를 꾀하고 있다.
토리팔리맙의 판권은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은 코헤루스, 인도 중남미 남아프리카 등 50여개국은 인도의 닥터레디스래버러토리(DR REDDYS LABORATORIES LTD), 사우디아라비아 등 20개국 중동 판권은 히크마(Hikma), 싱가포르 등 동남아 9개국 판권은 CMS(China Medical System Holding) 자회사인 알엑실리언트(Rxilient)가 싱가포르에 설립한 현지 합작사 엑셀맙(Excellmab) 등 4곳에 나눠져 있다. 각각 2021년 2월, 2023년 5월, 2022년 12월, 2023년 3월에 판권 양수도 계약이 이뤄졌다.
2020~2021년 주목받던 중국 면역항암제 후보들, FDA 승인 지연으로 '찬밥' 신세
중국 이노벤트바이오로직스(Innovent Biologics·信達生物制葯, 일명 씬다제약)가 중국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PD-1억제제인 ‘타이비트’(Tyvyt, 성분명 신틸리맙, sintilimab)는 2018년 12월 중국에서 호지킨림프종 치료제 승인을 시작으로 현재 6개의 적응증을 획득했다.
릴리는 2020년 8월, 이노벤트와 라이선스 도입 계약을 맺고 중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신틸리맙의 모든 권리를 획득했다. 당시 릴리는 이노벤트에 2억달러의 선불 계약금과 최대 8억2500만달러에 달하는 마일스톤을 보장했다.
하지만 FDA는 2022년 2월 8일, 브리핑 문서를 통해 6가지 이유를 들어 신틸리맙의 미국 승인을 거절하는 명분을 설명했다.
첫째는 중국내 임상이어서 다지역 임상시험(MRCT)이란 원칙에서 벗어났다. 미국 환자와 비교해 ORIENT-11 임상시험 피험자는 더 젊고 남성이 더 많으며 현재 또는 과거 흡연자가 적고 모두 아시아인이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 간주되지만 미국의 인종적 다양성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비소세포폐암의 특성상 다인종 피험자가 적합하다는 지적이다. 또 피험자의 최소 63%가 중국 전통 약물(한약)을 복용해 신틸리맙의 약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간하기 힘들다.
둘째는 ORIENT-11 임상시험의 대조군의 미국 진료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미국 인구와 미국 의료행위에 적용할 수 없다. 즉 미국에선 이미 2017년부터 면역관문억제제가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승인돼 표준치료로 사용됐는데 중국 임상시험의 대조군은 화학요법제 단일요법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세 번째, ORIENT-11 임상은 1차 평가지표로 무진행 생존기간(PFS)을 선정했는데 미국에서는 전체 생존기간(OS) 개선 이점을 제공하는 여러 1차 면역요법제 옵션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기간 연장 혜택을 입증하기 위해 신틸리맙을 미국에서 승인된 다른 면역관문억제제와 직접 비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네 번째는 ORIENT-11이 미국 임상시험계획(Investigational New Drug, IND) 승인에 따라 수행되지 않아 FDA와의 협의나 감독 없이 수행됐다. FDA와 이노벤트 실무자간 협의가 2020년 4월 21일에 처음 이뤄졌을 정도로 그동안 아무련 협의가 없었다. FDA는 IND에 따라 수행되지 않은 연구는 연구를 시작하기 전 독립적인 윤리위원회(IEC)의 검토 및 승인과 연구 기간 중 IEC의 지속적인 감독을 포함해 GCP(임상시험관리기준)를 준수해야 하는데 이런 증빙이 없다고 지적했다. GCP에 따라 변화하는 치료 표준을 반영하도록 FDA 및 환자의 사전 동의가 업데이트되지도 않았다.
다섯번째는 임상시험 수행 과정 및 데이터 무결성을 추가 확신할 근거가 필요한데 현장 실사할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임상시험 주관자는 데이터 샘플링만 제공했다.
여섯번째로 ORIENT-11 임상이 미국 내 미충족 의료수요를 다루지 않았고, 단일국가의 데이터를 수용해 규제 유연성을 발휘할 만큼의 대상은 아니다고 결론지었다. FDA는 결국 2022년 3월 24일, 신틸리맙의 거절을 확정했다. 이에 그 해 10월, 미국 내 승인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본 릴리가 이노벤트와의 계약을 철회했다. 중국 내 신틸리맙의 매출 감소가 계약 철회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2022년 5월 2일에는 중국 허치메드(Hutchmed)의 개발한 췌장내 및 췌장외 신경내분비종양(NET) 치료를 위한 신약후보물질 수루파티닙(surufatinib)의 신약승인신청이 FDA로부터 거절됐다. 중국에서 실시된 2건의 3상 시험과 미국에서 이뤄진 1건의 3상 가교임상시험 패키지 데이터가 미국 승인을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다지역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FDA의 냉대 속에서도 티스렐리주맙 유럽 승인, 토리팔리맙 2년만에 미국 승인
FDA는 같은 날(5월 2일),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현장실사 어려움으로 코헤루스 및 준시바이오의 토리팔리맙 승인 지연을 통보했다. 이어 같은 해 7월에 생물학적제제승인신청서(BLA)를 재제출했으나 12월 24일에도 현장실사 불가란 이유로 재차 승인 거절을 당했다. 다행히 올해 5월 31일 중국 현장실사가 완료되고, FDA가 지적한 3가지 보완사항도 이후 해결함으로써 이번에 록토지가 미국에서 승인됐다. 2021년 11월 FDA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베이진의 티스렐리주맙은 올해 9월 19일 ‘테빔브라’(Tevimbra)가 식도편평암의 2차 치료제로 유럽연합 승인을 받았다. 이는 중국 개발 면역관문억제제로는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날 공동개발을 진행해온 노바티스가 중화권 및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라이선스를 베이진에 반환한다고 발표했다. 또 같은 날 티스렐리주맙의 식도편평암의 1차 치료제로서 FDA 2차 신약승인신청 재제출이 공표됐다.
티스렐리주맙의 중국내 승인 적응증은 호지킨림프종, 요로상피암, 비소세포암, 간세포암, 식도편평암, 비인두암 등 10개가 넘는다. 노바티스의 계약 이탈은 FDA 승인 어려움과 저조한 글로벌 시장 전망 등이 이유로 분석된다. 노바티스는 2021년 1월 11일, 베이진과 22억달러(선불계약금 6억5000만달러, 미국 승인 시 13억달러, 판매 마일스톤 2억5000만달러) 규모의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티스렐리주맙의 미국 승인 신청은 2022년 7월 14일,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현장실사 어려움으로 연기됐으며 올해 9월 승인신청이 재제출됐다. 티스렐리맙의 중국내 매출은 올해 3분기까지 9억8900만위안(한화 약 1800억원) 수준이다.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중국 제약사가 개발한 면역항암제를 도입하려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러시를 이뤘다. 하지만 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FDA 승인이 지연되면서 사그러들고 있다.
지난해 릴리의 신틸리맙 판권 반환을 시작으로, 올해 5월 이큐알엑스(EQRx)가 중국 시스톤파마슈티컬스(CStone Pharmaceuticals, 基石藥業)의 PD-L1 억제제 수게말리맙(Sugemalimab)과 PD-1 억제제 노파진리맙(Nofazinlimab) 관련 판권 계약을 종료했다. 노바티스도 올해 9월 티스렐리맙 권리를 반환했다. 유일하게 코헤루스만이 준시바이오와의 계약을 유지하면서 토리팔리맙을 미국에서 승인받았다. 하지만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주’,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옵디보주’, 로슈의 ‘티쎈트릭주’ 등 6개 면역억제제가 미국에서 출시된 상황에서 미국 시장 침투가 용이할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