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레이던(LEIDEN)의 제약사 파밍(Pharming Group N.V.)은 경구용 선택적 PI3K 델타 억제제 레니올리십(leniolisib)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12세 이상의 청소년 및 성인의 ‘활성화 PI3K 델타 증후군’(activated phosphoinositide 3-kinase delta syndrome, APDS) 치료제로 승인받았다고 24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이로써 레니올리십은 불과 10년 전에 발견된 이 질병에 대한 최초의 질병 교정 치료제(disease-modifying treatment)가 됐다. 그동안 APDS 환자는 항생제, 면역억제제, 면역글로불린 대체약물 등을 투여받아왔다.
레니올리십의 브랜드는 ‘조엔자(Joenja)’로 정해졌으며 오는 4월초부터 시판될 예정이다. 파밍은 이 약의 한 알당 가격을 750달러로 책정했으며 1일 2회 복용하면 연간 약값은 54만7500달러에 달하게 된다.
APDS는 인구 100만명 당 1~2명꼴로 발생하는 선천성 희귀 원발성 면역결핍질환이다. 파밍은 현재 확인된 환자만 500명에 달하며,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 등지에 1500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 중 약 200명이 미국에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따라서 조엔자는 미국에서만 1억달러의 매출이 가능하며, 전세계적으로는 연간 최대 2억~3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미국의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전망했다.
백혈구의 성숙을 조절하는 PIK3CD 또는 PIK3R1 유전자가 변이돼 PI3Kδ (phosphoinositide 3-kinase delta) 경로가 활성화됨으로써 발병한다. 부모가 이 질환을 갖고 있을 경우 자녀들 중 이 질환에 걸릴 확률은 50% 정도여서 이 질환의 감별에는 유전자 가족 매핑이 필수적이다.
레니올리십은 PI3Kδ 단백질을 타깃하는 경구 투여 방식의 표적치료제다. PI3Kδ를 억제해 균형을 맞춤으로써 생리적 면역기능을 유지하도록 유도한다. 즉 B세포 및 T세포의 조절장애로 이어지는 PI3Kδ 신호경로를 억제한다.
APDS는 B세포, T세포를 포함한 활성형 면역세포의 부족을 유발, 치명적인 감염 위험을 증가시킨다. 중증 재발성 동폐(洞肺, 부비동과 폐, sinopulmonary) 감염을 통한 영구적 폐 손상, 림프구 증식(림프종), 자가면역반응, 장병증(腸病症, enteropathy) 등이 이런 사례다.
APDS 환자는 병원균과 싸우는 백혈구 수가 적기 때문에 폐, 부비동, 귀의 감염에 더욱 취약하다. 림프절, 비장, 편도선에 부종이 생겨 장애물을 만들 수 있다. 또 단백질 결핍을 통해 화학요법 및 줄기세포이식으로 치료해야 하는 혈액암에 걸리기 쉽게 하고, 새로운 합병증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파밍은 레니올리십의 2/3상 임상시험(31명 대상)에서 나온 긍정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2022년 7월 29일, FDA에 식약승인신청(NDA)을 제출했고 두 달 뒤인 9월 28일 접수와 동시에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받았다.
FDA의 이번 승인은 기저 시점 대비 미접촉(naïve) B세포가 증가하고(면역반응 향상), 림프절 병변의 크기가 감소하는 등 레니올리십이 면역 기능의 정상화를 도왔다는 2/3상 연구 데이터(31명)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중앙값 추적기간 기준으로 2년간 조엔자를 장기투여한 장기 라벨 공개 연장시험 데이터도 심사에 참조가 됐다.
림프절 크기는 레놀리십이 0.38 감소한 반면 위약은 0.12 감소해 두 그룹간 조정평균 격차는 0.25을 이뤘다(26명 대상). 레놀리십 투여군과 위약 투여군 간 naïve B세포 비율 격차는 37.3%였다(13명 대상, 최저 24.06%, 최대 50.54%).
임상연구 결과 피험자의 10% 이상에서 나타나는 가장 흔한 부작용은 두통, 부비동염, 아토피피부염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승인은 유럽의약품청(EMA)이 임상연구 데이터의 추가 제출을 요청하며 레니올리십에 대한 가속승인 심사를 표준심사로 전환한 지 한 달 만에 나왔다. 승인이 지연되지만 올해 하반기에 무난이 유럽연합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파밍은 예상하고 있다.
파밍은 2019년 8월 13일에 스위스 노바티스로부터 레니올리십을 APDS 환자 치료제로 개발 및 상용화하기 위한 독점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파밍은 노바티스에 선불계약금 2000만달러를 지급했다. 이번 승인으로 노바티스에 1050만달러의 마일스톤을 지불해야 한다. 매출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노바티스는 최대 1억9000만달러의 마일스톤을 추가로 챙길 수 있게 됐다. 노바티스는 별도로 순매출 대비 낮은 10%에서 높은 10%에 이르는 단계별 로열티를 받게 된다.
또 파밍은 이번 조엔자의 희귀소아질환 치료제 승인으로 FDA로부터 ‘우선심사 바우처’(PRV)를 받게 됐다. 2019년 계약에 따라 노바티스는 PRV를 구매할 권리를 갖되, PRV에 가치에 해당하는 (노바티스가 보유한) 파밍 주식 소수 지분을 바탕으로 PRV를 사들일 수 있다.
파밍은 자사의 유일한 상용화 제품인 유전성혈관부종(HAE) 치료제인 약물인 ‘루코네스트’(Ruconest)를 보유한 상황에서 2019년 또다른 희귀질환 치료제인 레니올리십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감행했다.
루코네스트는 최초이자 유일한 재조합 인간 C1-esterase inhibitor(rhC1INH) 성분의 급성 HAE 발작 치료제다. 재조합단백질로 혈장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2014년 7월 17일 미국에서 성인과 청소년의 치료제로 승인됐다. 파밍은 FDA에 이 약을 예방약으로 승인받으려 시도했으나 2018년 9월 추가 임상이 필요하다는 FDA의 반응종결서신(CRL)을 받고 무산됐다.
결론적으로 파밍의 레니올리십 투자는 성공했다. 파밍은 루코네스트로 지난해 2억600만달러를 거둬 들인 데 이어 레니올리십으로 이에 견줄 만한 추가 매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파밍의 54명에 달하는 영업 담당자가 있으며 내달 조엔자 출시를 앞두고 적극 마케팅 공세에 나설 예정이다. 두 제품으로 재미를 본 파밍은 또다른 희귀질환 파이프라인을 발굴하기 위해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