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전문기업인 트래비어테라퓨틱스(Travere Therapeutics, 나스닥 TVTX)는 면역글로불린A 신병증(IgAN) 치료제 ‘필스파리’(Filspari 성분명 스파센탄 sparsentan)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을 받았다고 17일(현지시각)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성인 원발성 면역글로불린신병증에서 증상이 빠르게 진행돼 뇨중 단백질/크레아티닌 비율(urine protein-to-creatinine ratio, UPCR)이 1.5g/g 이상으로 나타난 단백뇨 위험성을 감소시켜 주는 약물로 승인받았다. 하지만 필스파리가 IgAN 환자에서 신장 기능의 감퇴 속도를 둔화시켜 주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았다.
이번 승인은 3상 ‘PROTECT’ 임상시험에서 확보된 유익성 자료를 근거로 이뤄졌다. 가속승인 형태로 허가받았으므로 향후 확증시험을 통해 정식승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2년에 걸친 확증시험의 주요 결과는 올해 4분기에 나올 예정이다.
PROTECT 임상은 필스파리가 신장 기능의 감퇴속도를 둔화시키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설계됐다. FDA는 현재 진행 중인 본임상 3상 ‘PROTECT 시험’에서 활성대조群과 비교했을 때 ‘필스파리’를 사용해 치료를 진행한 환자그룹의 경우 단백뇨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하고 통계적으로 괄목할 만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 시험결과를 근거로 가속승인을 결정했다.
PROTECT 임상은 IgAN 관련, 사상 최대 규모의 기존약 직접 비교평가 임상시험이다. 피험자 무작위 배정, 다의료기관, 이중맹검법, 활성대조군 방식으로 설계됐다.
18세 이상의 IgAN 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내약성 용량의 ACE 저해제 또는 ARB 차단제를 사용해 치료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단백뇨 증상이 지속된 404명의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필스파리’ 400mg 또는 사노피의 ARB 차단제 계열 항고혈압제 ‘아프로벨정’(APROVEL, 이르베사르탄 irbesartan) 300mg을 복용토록 하면서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내용으로 설계됐다.
2021년 8월, 트래비어테라퓨틱스가 중간 결과를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필스파리를 36주 복용군은 단백뇨가 착수시점에 비해 평균 49.8% 감소한 것으로 분석돼 이르베사르탄을 복용 대조군의 15.1%를 크게 압도했다.
FDA의 요구에 따라 허가받은 제품라벨에도 281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후 감수성 분석을 진행한 결과 필스파리 복용군이 착수시점에 비해 단백뇨가 평균적으로 45% 감소해 이르베사르탄 대조그룹의 15%를 유의하게 웃돌았다는 유효성 내역이 기재돼 있다.
임상시험 프로토콜에 따라 PROTECT 임상시험에 등록된 환자들은 맹검법으로 110주에 걸쳐 사구체 기울기(eGFR slope)에 미친 필스파리의 효과를 평가받았다. 최종 결과는 2023년 4분기에 나온다.
이중 엔도텔린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 비 면역억제제로는 최초로 IgAN 적응증 획득
필스파리는 이중 엔도텔린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Dual Endothelin Angiotensin Receptor Antagonist, DEARA)로서 엔도텔린A 수용체(ET AR)와 안지오텐신 II 아형 1 수용체(AT 1R)를 이중 선택적으로 표적으로 한다. IgAN에서 2개 핵심 경로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치료제로는 유일하다. 면역억제제가 아닌 약으로서 IgAN 적응증을 획득한 세계 최초의 약이기도 하다. 1일 1회 경구 복용한다.
희귀 신장질환인 IgAN은 체내에서 감염병과의 싸움을 돕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알려진 면역글로불린A(IgA)이 신장에 축적되면서 나타난다. 면역글로불린A가 신장에 쌓이면 신장의 정상적인 여과 기능이 와해되면서 혈뇨, 단백뇨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어 신장통증, 부종, 고혈압 등의 증상들을 수반하면서 신부전에 이르게 된다.
미국 내 환자 수는 최대 15만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3만~5만명이 필스파리로 치료할 수 있는 대상자로 여겨진다. 트래비어테라퓨틱스는 오는 27일부터 이 약이 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트래비어테라퓨틱스의 에릭 듀브(Eric Dube) 대표는 “이번 필스파리의 가속승인은 IgAN 커뮤니티를 위한 변혁적인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 확보됐음을 의미한다”며 “계열 최초의 면역억제제 이외의 치료 옵션으로서 궁극적으로 IgAN의 새로운 표준요법제로 자리잡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PROTECT 임상시험 운영위원으로 관여한 오하이오주립대 의대 브래드 로빈 (Brad Rovin) 신장내과 교수는 “필스파리 승인으로 IgAN 환자를 위한 새로운 표준요법제가 무대에 오르게 됐다”며 “지금까지 IgAN 환자들은 상당수가 본래 IgAN 적응증을 허가받지 않았지만 전통적으로 표준요법제처럼 사용돼왔던 치료제들에 충분한 치료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기존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s),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저해제(ACEi), 전신성 글루코코르티코이드(스테로이드) 등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환자들이 증상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신부전으로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처럼 혁신적인 치료제 승인은 IgAN과 관련해 지금까지 이뤄진 최대 규모의 약물 간 직접대조 방식의 3상 임상시험에서 도출된 자료에 근거를 두고 이뤄졌다”며 “증상이 빠르게 진행될 위험성이 높고, 오랜 기간 이렇게 좋은 치료제를 기다려왔던 성인 환자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돼 고무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PROTECT 임상시험 중간평가 결과 필스파리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전체 임상시험에서 양호한 안전성과 내약성을 내보였다. 피험자의 5% 이상에 가장 흔하게 수반된 부작용은 말초부종, 저혈압, 현훈, 고칼륨혈증, 빈혈 등이었다. 그러나 간 손상 및 선천성 결손아 출산 위험성으로 인해 필스파리는 FDA로부터 승인받은 위험성평가‧완화전략(REMS)이 적용된 가운데 복용해야 한다.
트래비어테라퓨틱스는 스위스 제약기업 CSL비포르(CSL Vifor)와 함께 필스파리의 유럽 의약품청(EMA)의 조건부 승인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양사는 지난해 8월 필스파리의 신약승인신청서를 EMA에 제출한 바 있다. 호주에 기반을 둔 CSL은 2021년 12월 14일 비포를 흡수 합병한다고 발표했으며, 2022년 8월 2일 합병 절차를 마쳤다.
이와 별도로 트래비어테라퓨틱스는 국소분절사구체경화증(focal segmental glomerulosclerosis, FSGS) 환자를 대상으로 2년간 진행하는 3상 ‘DUPLEX’ 임상시험의 주요 결과가 올해 2분기에 도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성적표에 따라 올해 하반기 중 FSGS 적응증에 대한 정식승인 신청서가 FDA에 제출될 예정이다. 유럽연합에서는 올해 연말까지 FSGS 적응증 추가를 위한 조건부 승인 신청서가 제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필스파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모두 면역글로불린A 신병증 및 FSGS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