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군을 대표하는 절로는 금태산(金太山 해발 341m) 계승사(桂承寺)와 연화산(蓮花山 해발 528m) 옥천사(玉泉寺)가 있다.
계승사는 고성군 영현면 대법리, 연화산 줄기 서남쪽 금태산 자락 절벽에 자리잡은 작은 절이다. 신라 문무왕 15년(675년)에 의상대사(義湘 625~702)가 금태암을 창건했지만 사라졌다가 1963년 그 자리에 계승사를 신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이 절의 기반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수천 수만겹 퇴적 구조의 절벽이다. 절 마당 높은 축대도 가파른 계단도 퇴적암 판석들을 쌓아 올린 것이다. 시루떡처럼 쌓인 바위 속에 든 아득한 세월이 묻혀 있다.
대웅전 요사채 앞 너럭바위에는 물결무늬의 화석이 존재하는데 1억년 전에는 이 곳이 거대한 호수의 얕은 물가였음을 말해준다. 흙바닥에 섬세한 물결무늬가 당시의 살랑거리는 물결을 연상케 한다. 계승사 보타전 앞의 홍매는 해마다 3월말에 요염하게 핀다.
이 절의 지질층과 화석들은 1963년 옛 금태암을 이어받아 계승사를 창건하기까지 흙과 바위 더미에 묻혀 있었다. 절을 지으며 이런 소중한 유산들을 마구잡이로 파괴했다고 한다.
이 절의 약사전에 오르면 아득하게 펼쳐진 첩첩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남 사천 쪽 와룡산(799m) 봉우리까지 한눈에 잡히는 명당 자리로 알려져 있다.
계승사 기암괴석의 절벽 사이에 흘러 나오는 석간수(石間水)는 약수로 유명하다. 옛날에 석간수 자리에는 매일 부처님의 공양미(供養米)가 3되 2홉이 솟아 나왔는데 시봉행자(侍奉行者)가 욕심을 부려 공양미가 많이 나오도록 구멍을 키웠더니 그만 그날부터 공양미는 나오지 않고 석간수만 솟아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성계가 고려말에 산남도(山南道)로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조선창업(朝鮮創業)의 꿈을 꾸고 잠시 수도하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지만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금태산(金太山)이란 이름도 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명명이라고 전해진다. 다만 보타전 곁에 ‘모셔 둔’, 뒷산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커다란 바윗돌 ‘하심석’ 옆에, 절터에서 발굴했다는 반질반질하게 닳아빠진 오래된 맷돌들이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옥천사는 신라의 화엄종찰, 임진·정유왜란에는 호국사찰
계승사의 북동쪽,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건너 편에 연화산 옥천사(개천면 북평리)가 있다.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의상이 창건하였다. 대웅전 뒤에 맑은 샘물이 나와 옥천사로 불린다. 연화사는 말 그대로 연꽃 같은 평안한 지형임을 말한다. 지금은 하동 쌍계사의 말사(末寺)이지만 문무왕 당시에는 화엄종찰로 지정된 화엄 10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
임진·정유왜란 때는 구국 승병의 군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호국사찰의 기능도 수행하였다. 그 때문에 일본군에 의해 불타는 운명을 맞기도 하였다. 옥천사는 1700년대에는 이전에 비해 훨씬 큰 규모로 중창됐다.
조선후기의 대표적 건물인 옥천사 자방루는 중보에 그려진 비천상과 비룡상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듯 생동감 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층계 옆에는 탐스러운 불두화가 봄을 기다린다. 전각들 중에서 한 명이 겨우 들어가 좌정할 수 있는 크기의 독성각, 산령각이 이채롭다. 불편함을 통해 제행무상을 깨닫게 하려는 수도자의 정신이 담겨 있다.
옥천각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유물 전시관인 보장각으로 간다. 보장각에는 옥천사로 입산한 근래의 뛰어난 선승인 청담 스님의 영정이 안치돼 있다. 1911년 일본 총독부는 사찰령을 제정해 왜색불교를 침투시켰다. 해방이 됐어도 왜색불교가 대세를 이뤘다. 1954년부터 청담 스님은 이를 바로잡고자 동산·효봉·금오 스님 등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을 시작했다.
청담 스님은 “성불을 한 생 늦추더라도 불교 유신을 달성하겠다”며 정화불교운동을 선도했다. 1971년 11월 15일 서울 도선사에서 입적했다. 법정 스님은 그의 수제자로 애도문을 남겼다.
공룡 발자국 화석은 고성 상족암뿐만 아니라 연화산 도립공원 안 옥천사 들머리 주차장 옆 물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산벚꽃 지고 열흘 후면 녹차 수확 … 2만명 녹차밭 비밀정원 ‘만화방초’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 벽방산(碧芳山, 해발 650m) 중턱에는 만화방초(萬花芳草)라는 개인 정원이 있다. 주인장인 정종조 씨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밤 따고 젖소 키우던 곳에 녹차밭을 조성해 ‘비밀의 화원’처럼 조성한 곳이다. 부산에서 무역업을 크게 하다가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스트레스를 잊으려 고향 땅의 아까시 나무를 캐내고 녹차밭을 일궜다.
산중수도한 덕에 사업은 다시 풀려나갔고 돈을 버는 족족 농장에 털어넣었다.동백나무는 충청도에서, 단풍나무는 전라도에서, 들꽃은 산과 들에서 얻어왔다. 외환위기 후 10년간 일주일의 반은 부산에서, 나머지 반은 농장에서 보내며 정원을 가꾸다가 2007년에야 일반인에 만화방초를 공개했다.
만화방초의 차밭은 약 2만 평에 달하지만 소량만 수확한다. 비료나 농약을 안 쓰는 100% 자연산이기 때문에 품질은 최고를 자랑한다. 3년에 한번만 거름을 줘 야생녹차의 원기가 살아 있다.
정사장은 녹차밭에 산벚나무를 심었다. 화사하기로 따지면 왕벚꽃이 낫지만 자연미는 산벚꽃을 못 따라간다. 향도 산벚꽃이 더 짙고 깊다.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고 꽃이 차 수확 시기를 알려준다. 만화방초의 첫 차 따는 시기는 매년 벚꽃 지고 10일 후다. 밭고랑 사이에는 꽃을 심었다. 벚꽃이 지면 영산홍, 그 다음에는 금낭화, 가을에는 상사화가 피어난다. 꽃이 한창일 때는 푸른 차나무 한 고랑, 붉은 꽃 한 고랑이 교대로 산비탈을 물들인다.
이 곳의 수국 꽃밭, 나리 꽃밭, 수련 연못, 편백나무 숲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웬만한 식물원을 방불케 한다. 특이한 색깔의 산수국이나 수련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명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