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목포 해상케이블카 … 다도해 고하도 목포대교 유달산 한눈에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2-11-22 08:31:14
  • 수정 2022-12-13 00:09:36
기사수정
  • 국내 두번째로 길어, 150m 해수면 위 ‘아찔한 뷰’ … 다순구미, 갓바위, 삼학도, 외달도, 이훈동정원

2019년 9월에 개통된 목포해상케이블카는 길이 3.23km로 개통 당시 우리나라 최장 케이블카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2021년 10월 개통한 강원도 춘천 삼악산의 케이블카(3.6km)가 가장 길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목포 여행지 중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다. 북항, 유달산, 고하도 등 세 개의 탑승장이 있다. 보통 북항 탑승장에서 왕복권을 구입해 고하도 탑승장에서 하차해 고하도를 탐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 탑승장에서 내려 유달산을 거닐게 된다.


북항 탑승장을 출발한 케이블카는 서서히 목포 도심 상공을 가로지른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목포의 도심은 한때 우리나라 3대 도시에 속했던 목포의 화려했던 과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곧이어 유달산을 지나 목포 앞바다로 미끄러지듯 나간다. 북항에서 고하도로 향할 때에는 유달산에서 정차하지 않고, 고하도에서 북항으로 되돌아갈 때에만 유달산에서 하차한다. 관객 쏠림을 막기 위한 장치다.


유달산에서 고하도로 향하는 해상케이블카의 해상 구간 /변영숙

육지 구간은 고도가 낮지만 바다 구간은 해수면 120~150m 위를 달리며 아찔한 뷰를 연출한다. 왕복으로 40분, 편도로 20분이 걸린다. 평일에는 하루 2000명, 주말에는 하루 6000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주말에는 보통 탑승하는 데 30분이 소요된다. 


케이블카를 타면 목포대교(죽교동 목포신외항(북항)과 유달동의 고하도를 잇는 다리), 서해의 고하도·외달도·안좌도·장좌도·율도·하의도, 멀리 해남의 화원반도 등 바다 위에 수많은 섬들이 점처럼 박혀 있는 다도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목포대교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 풍경과 목포 해상 케이블카의 야경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 야경 100선’에 속할 정도로 아름답다.


유달산 아래 고하도 육지면 첫 시험재배  


고하도(高下島)는 영산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유달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간척으로 허사도(許沙島)와 합쳐졌다. 바라볼 게 없는 허무한 섬이라 하여 허사도라고 했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 이후 108일 동안 머물며 전략을 정비했던 섬이다. 충무공 유적지(사당)와 목화체험 전시장, 목화 정원, 고하도 전망대 등이 있다. 


목포는 1904년에 처음으로 미국산 육지면(陸地綿)을 도입한 곳이다. 육지면은 문익점이 들여온 재래면은 이불솜이나 의료용 솜, 완충재 등으로 사용되기에는 적합했지만 공업용으로는 미흡했다. 이에 비해 육지면은 수확량이 20~30% 더 많았고 섬유가닥이 길어서 현대적인 면제품을 생산하기에 알맞았다. 일본 영사 약송토삼랑(若松兎三郞)이 고하도에서 육지면 시험재배를 시작했으며 전라남도의 토양과 기후가 육지면 재배에 적합한 것을 확인하고는 전국으로 육지면을 확대 보급했다. 고하도 조선 육지면 발상지비가 목포시 달동  779-2(고하도 선착장)에 세워져 있다.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 형태로 쌓아 올린 한 고하도 전망대에서 보는 다도해 풍광이 압권이다. 해안 산책로(해상데크)를 따라 아름다운 고하도의 해식애를 감상할 수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는 유달산 탑승장에서 하차해 유달산 탐방에 나설 수 있다. 탑승장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장정 10명도 너끈하게 앉을 수 있는 마당바위(해발 190m)가 나오고 유달산 최고봉인 ‘일등바위’(228.3m)까지 다녀올 수 있다.


서산동 시화 골목 … ‘다순구미’의 애환 가득한 곳 


목포 서산동 시화마을 /변영숙

유달산 자락을 따라 낡고 허름한 집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목포 서산동.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제 몸뚱어리 하나로 살아가야 했던 항구 노동자,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산꼭대기 마을이 ‘서산동 골목’이다.


서산동과 이웃한 온금동은 과거 가난하고 핍박받던 목포 사람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곳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둡고 침침한 방, 일어서면 머리에 닿는 낮은 천장, 창문 대신 벽에 뚫린 구멍 하나가 전부인 집들…. 2022년 온금동과 서산동 골목은 여전히 ‘다순구미’, ‘째보선창’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은 목포 어촌의 상징인 서산동, 온금동 사람들의 애환을 기리기 위해 인문도시사업의 일환으로 목포의 시인, 화가, 주민들과 뜻을 모아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서산동 시화 골목’을 조성했다.


시화 골목은 모두 4개의 골목길로 나누어져 있다. 골목 계단을 천천히 밟아 올라가며 널빤지에 새겨 담벼락에, 계단 난간에 걸어 둔 시들을 하나하나씩 읽어 나간다. 싯 구절들이 때로는 따뜻해서, 때로는 서글퍼서 발길을 멈추게 된다.


다순구미, 째보선창, 지금은 폐공장이 된 조선내화, 조금쌔끼 등을 주제로 한 시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시구절마다 ‘다순구미’ 사람들의 고달픔과 애환이 짙게 묻어난다. ‘따뜻한 바닷가의 후미진 곳’을 뜻하는 ‘다순구미’는 과거 온금동의 또 다른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온금동 주민들조차 모르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다순구미 풍경


비좁은 골목에 낡은 의자 하나 

햇살이 앉았다 갔는지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다<중략> 

빨랫줄에 걸린 꽃무늬 몸빼바지 

깃발처럼 나부낀다.

알겠다. 

문패가 없어도 

바다에 나간 지아비 기다리며 

늙어가는 

지어미가 사는 집인 걸.


용돈


서산동 보리 마당에서 

54년을 살면서 / 마늘 작업 / 시금치 작업 / 양파일 / 영감은 목수여서 초등학교, 우체국을 다 지었지 / 

큰 아들 상고 / 둘째 아들 문고 / 딸네들은 중학교 밖에 /

구래도 매달 주는 / 자식들 / 용돈에 / 이 엄마 행복하다 /


고되지만 최선을 다한 삶에 행복해하는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맨 꼭대기 그 옛날 보리타작을 하던 ‘보리마당’에 오르면 고하도와 멀리 영암 땅이 보인다.


서산동 시화 골목은 영화 촬영을 위한 ‘오픈 세트장’ 같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많은 영화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마을 입구에 영화 〈1987〉에 나온 ‘연희네 슈퍼’(김태리 집)가 자리 잡고 있다. 가게 문앞에 세워진 신문 가판대에는 ‘그날, 1987년 7월 6일자’ 신문이 연희가 꽂아 놓은 채 그대로 있다.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져 친구의 품에서 죽어가는 이한열의 사진이 여행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영화 속 가게가 박제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돼지 저금통, 쫄쫄이 젤리… 가게 달린 작은방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연희가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뛰어나올 것만 같고, 연희의 ‘마이마이’(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서는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 안갯속에 쌓인 길 /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 무지개와 같은 길 /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 그대여 힘이 돼 주오 / 나에게 주어진 길 / 찾을 수 있도록 / 그대여 길을 터 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유재하, 가리워진 길)


입속으로 ‘가리워진 길’을 흥얼거려 보지만 연희도, 이한열(강동원 분)도 없는 서산동 시화 골목에 서 있으면 괜스레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리는 듯 허전하다. ‘야만’이 휩쓸고 간 뒤안길에 서 있는 듯한 무기력과 황망함 같은 것이다.


가수 유재하는 1987년 10월 31일, 25세의 젊디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했다. 영화 <1987>의 감독이 1987년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한 천재 음악가의 노래를 OST로 사용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과 유재하의 삶에는 공통점이 있다. 미처 피어나지 못했던 너무도 짧아서 찬란했던 젊음이라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김태리와 강동원이 부르는 ‘가리워진 길’이 두고두고 진한 울림을 남긴다. 가리워진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에게 깊은 애도를!


이번에는 김래원이 계단을 막 뛰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영화 <롱 리브 더킹 : 목포 영웅>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목포 조폭 조직의 보스인 김래원이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의 ‘롱 리브 더킹’은 스토리의 진부함과 배우들의 낮은 연기력, 개연성 떨어지는 배경 설정으로 평단의 혹독한 평가를 받았지만 목포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목포 갓바위 … 영산강과 바다가 빚은 자연의 조각품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입암산(笠巖山, 해발 122m)을 배경으로 갓을 쓴 사람을 닮은 바위 2개가 나란히 서 있다. 일명 ‘갓바위’이다. 갓바위는 8000만 년 전 화산재가 굳어진 용결 응회암으로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돼 있다.


해상보행교가 설치돼 가까이서 갓바위를 만나볼 수 있다. 갓바위는 오로지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 햇빛이 만들어 낸 위대한 자연의 조각품이다. 파도가 치거나 안개가 낀 날 염분이 포함된 물에 젖었다 마르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잘려나가고 패여 나가 지금의 모습이 됐다.


갓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온다. 아주 먼 옛날, 병든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소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던 아들은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부잣집 머슴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못된 주인은 젊은이를 부려 먹기만 하고 품삯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들이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젊은이는 저승에서나마 편히 쉬시라고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아버지를 묻어 드리려다가 그만 바다에 관을 빠뜨리고 말았다. 젊은이는 자신의 불효를 뉘우치며 햇빛을 보고 살 수 없다면서 갓을 쓰고 아버지 묘를 지키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한참 후에 그곳에서 바위 2개가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큰 바위를 ‘아버지 바위’라 하고 작은 바위는 ‘아들 바위’라고 하였다.


또 하나의 전설은 부처님과 아라한이 영산강을 건너 이곳을 지나다 잠시 쉬어 가던 자리에 갓을 벗어놓고 그냥 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 갓이 바위가 됐다 하여 ‘중바위’(스님바위)라고도 한다.


갓바위는 목포 야경 명소로도 유명하다. 해상보행교를 따라 경관 조명이 설치돼 밤이면 조명 빛에 반사된 갓바위와 바다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행교 일부 구간은 밀물 때 수면과 함께 1m가량 높아지는 부교로 건설됐다.


갓바위 인근 평화광장 앞바다에서는 11월까지 저녁마다 ‘춤추는 바다 분수쇼’ 펼쳐진다. 국내 최대 바다 분수쇼와 K팝, 퓨전국악, 목포의 노래 등으로 스토리텔링한 창작 뮤지컬 공연 등이 선보인다. 공연 일정과 시간은 홈페이지(http://mokpowshow.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섬, 삼학도 … 공장지대에서 기념공원으로


‘목포는 항구다’에 등장하는 삼학도는 목포 동쪽 앞바다에 나란히 떠 있던 세 개의 섬이다. 그러나 1968~1973년 간척 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 이후 한국냉동, 호남제분 등 공장들과 저장고, 선술집 등이 들어서면서 흉물스럽게 변했다. 최근 목포시가 인공 수로를 만들고 공원을 조성하는 등 복원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그 옛날 삼학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옛날 유달산에서 한 청년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청년에게 반한 세 처녀가 상사병으로 죽어 학이 됐다. 이 사실을 모르는 청년은 학을 향해 활을 쏘았다. 세 마리 학은 모두 목포 앞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그 자리에서 세 개의 섬이 솟아 오른 것이 삼학도이다.


복원된 삼학도에는 ‘이난영공원’,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목포 어린이바다과학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1917년 목포에서 태어난 이난영은 목포 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조선면화공장에서 여공 생활을 하다 16세에 되던 해에 태양극단에 입단해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등 불후의 명곡을 남기고 1965년 4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난영은 경기도 파주에 용미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사후 41년 만인 2006년 삼학도로 옮겨져 일명 ‘이난영 나무’인 배롱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다. 수목장 주변으로 ‘이난영공원’이 조성돼 있다.


삼학도의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변영숙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2013년도에 설립됐다.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및 한반도 긴장 완화를 통한 국제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대통령의 위대한 삶의 여정을 자료와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기념관에는 노벨평화상 메달, ‘국군의날’ 기념식에 사용했던 의전 차량과 퇴임 후 사용했던 차량, 노벨상 수상 당시 입었던 옷, 대통령 내외의 밀랍인형, 업무용 책상 등이 전시돼 있다. 야외정원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제일 좋아했던 ‘인동초’ 정원도 조성되어 있다.


목포종합수산시장(목포중앙수산시장) /변영숙

삼학도 맞은편(서쪽) 목포종합수산시장(목포중앙수산시장)에는 목포의 명물 홍어와 먹갈치, 조기 등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목포 고하도의 앞바다(서쪽)에는 달리도가 있고 그 서편에 달린 작고 앙증맞은 외달도(外達島)가 있다. 때묻지 않은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낙조로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아 ‘사랑의 섬’으로 통한다. 갯벌체험과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백제의 별서정원’ 닉네임 가진 ‘이훈동정원’


일본식 정원의 전형을 담은 이훈동정원 /문화재청 홈페이지

유달산 남동쪽 자락 유달동엔 ‘이훈동정원’이 있다. 조선내화 회장으로, 목포의 유력 기업인이었던 이훈동의 저택이다. 1960년대에 이미 공업국으로 가야 살 수 있다는 혜안을 가진 이 회장은 제철산업의 필요성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역설했고 이후 포항제철이 탄생했다.


1930년대 목포 최대 곡물상 우치다니 만베이(內谷萬平)가 목포 최고 명당에 지은 고급 대저택이다. 해방 후 해남 출신의 국회의원 박기배가 소유하였던 것을 1950년대에 이훈동(李勳東 1917~2010)이 사들였다. 5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일본식 정원의 원형이 조선 서원 분위기로 일부 바뀌기는 했으나 일본 정원풍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개인정원으로는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입구정원, 안뜰정원, 임천정원, 후원으로 이뤄져 있다. 각종 석탑과 연못, 조경수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백제 별서정원’이란 평가답게 자연 그대로의 경관이 수려하다.


웨딩 촬영 장소로 인기를 끌었고 드라마 ‘모래시계’와 ‘야인시대’ 촬영지이기도 하다. 남쪽 정원 가운데 큰 후박나무는 당시 출연 배우의 이름을 따 ‘고현정 나무’라고 부른다. 


저택 앞에는 이 회장의 호(聲玉)를 딴 성옥기념관이 있다. 2003년 자녀들이 건립했다. 추사의 예서와 행서, 운보의 채색화조 십곡병, 남농의 금강산 보덕굴 편액 등의 희귀한 서예와 그림, 도자기 등을 소장하고 있다. 


근처 유달초등학교에는 우리나라 최후의 호랑이 박제가 눈길을 끈다. 1908년 영광 불갑산에서 한 농부가 사로잡았는데 연도가 확실하게 기록된 남한 최후의 호랑이다. 체중 180kg에 ‘임금 왕(王)’자가 뚜렷한 전형적인 한국 호랑이다.


목포는 주식 시장에서 저평가된 우량주 같다.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도시다.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강동경희대학교병원
JW신약
탁센
동아ST
한국다케다제약
사노피
동국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차병원
신풍제약주식회사
정관장몰
한국화이자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휴온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