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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장곡사, 천장호의 하모니 … 충남 청양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2-10-18 17:12:44
  • 수정 2022-10-19 00: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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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갑산 ‘충남의 알프스’ ‘여행 1번지’ … 해발 낮아도 산세 웅장, 사계절 풍광 자랑

금강의 부여 구간을 흔히 백마강이라 한다. 백마강 서쪽에 위치한 충남 청양은 남쪽은 부여시, 동쪽으로는 공주시, 서쪽으로는 보령시, 북쪽은 홍성군과 예산군과 맞닿아 있다. 청양은 칠갑산, 우산(기룡산), 백월산(비봉산), 구봉산, 두타산, 관비산, 사자산 등 크고 작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조선 후기 각지에서 발행된 읍지를 모아 편찬한 ‘여지도서’에 청양은 ‘세 방면이 높고 가파른 고개이며 서쪽이 조금 평평하며 지역이 외지며 토지는 메마르다’고 기술돼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권진(權縉 1572~1624)은 “낯위에 스치는 바람은 멀리서 불어오고, 마루 앞에 마주 뜬 달이 한없이 맑구나. 두 가지 맑은 천고의 이 땅, 취하여 쓴들 그 누가 다투리오.”라고 노래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청양은 “본래 백제의 ‘고량부리현’이었는데 신라 때에 청무로 고쳐 임성군의 속현으로 만들고, 고려 초기에 ‘청양현’이라 고쳐, 고려 현종 9년에는 천안부로 불렀다가 홍주로 이속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청양은 6.25전쟁 때에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을 정도로 오지 중의 오지였다.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부여에서도 청양은 오지로 통했다. 그 덕에 무분별한 개발과 도시화에서 거리를 두고 발전한 청양은 오늘날에는 환경오염이나 자연 훼손이 거의 없는 청정 지역의 대명사가 됐다. 


칠갑산은 제천행사 올리던 신성한 땅 내포 지역과 전북 북부까지 조망


청양의 칠갑산(七甲山 561m)은 해발이 낮아 험하지는 않지만 깊고 웅장한 산세, 울창한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한다. 계절마다 색다른 자태를 뽐낸다. 봄에는 산철쭉과 벚꽃이 우아하게 단장한다. 여름엔 천연림과 시원한 계곡이 심신을 안정시켜준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우러지고, 겨울에는 천상 세계에 들어간 듯한 설경을 연출한다. 이 때문에 ‘청양 여행 1번지’ ‘충남의 알프스’로 불린다.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칠갑산은 백제의 도읍이 부여로 옮겨진 이후 국가 제천행사를 지내는 곳으로 신성시됐다. 북두(北斗)의 일곱 성인인 칠원성군(七元聖君), 또는 칠성(七星)을 뜻하는 칠(七)과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십간 중 으뜸인 갑(甲)에서 한하다. 천지만물 생성의 근원을 의미하는 칠과 천지시운의 원리가 되는 육십갑자의 으뜸이 결합한 의미다. 


칠갑산은 여의도의 4배 면적에 해당하며 산장로, 천장로, 도림로, 지천로, 사찰로, 휴양림로, 칠갑로 등 7개 루트를 통해 산정상에 오를 수 있다. / 출처 청양군청

칠갑산 고스락(정상부)은 꽤 넓은 평지이며 거기에 산제를 지낼 수 있는 상석이 있다. 사방이 훤히 트여있어 조망하기에 으뜸이다. 충남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어 내포(바다와 인접한 충남 서북부: 홍성 예산을 중심으로 서산 당진 태안 청양 보령 서천 아산 등을 아우름)의 산들을 비롯한 충남의 모든 산들은 물론 전북 북부의 산들도 볼 수 있다.


지천(하류)과 잉화달천(중류) 등이 칠갑산의 깊은 계곡에 7곳의 명당을 만들었다 하여 칠갑산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칠갑산은 차령산맥의 여맥으로 청양군 대치면, 정산면, 장평면에 걸쳐져 있다. 이들 3개면을 중심으로 하는 남동부 정산 지역과 청양읍을 중심으로 북서부 청양 지역으로 생활권이 나뉜다. 


정상을 중심으로 아흔아홉계곡과 까치내, 냉천계곡, 천장호, 장곡사 등이 우산살처럼 퍼져 있다. 여러 갈래 등산 코스 중 한치고개 산장휴게소를 경유에 정상으로 올랐다가 장곡사 쪽으로 하산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약 3시간이 걸린다.  


캠핑하기 좋은 아흔아홉계곡과 한때 국내 최장이었던 천장호 출렁다리


칠갑산에서 바라본 천장호 전경/ 변영숙 제공

칠갑산에서 발원한 계곡은 어을하천, 작전, 지천, 금강천 순으로 흘러내린다. 대치면 개곡리와 장천리, 장평면 지천리 등 3개 마을을 경유한다. 흐르는 물이 바위에 부딪혀 굽어지는 물의 모양이 갈지(之)자 닮아 ‘지천’, 아홉 번 굽어진다고 해서 ‘구곡’이라 한다. 지천구곡은 개곡리에서 지천리까지 약 5km를 달린다.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계곡을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른다. 여름에는 휘어지는 곳마다 넓은 자갈밭과 모래밭이 펼쳐져 캠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까치내와 물레방앗간 유원지는 수심이 얕고 유속이 느려 물놀이하기에 좋다. 


칠갑산의 존재를 알린 데에는 무엇보다도 1989년 발표된 가수 주병선의 ‘칠갑산’ 노래의 공이 크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느냐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애절한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청양과 공주를 잇는 36번 국도를 따라 칠갑산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갑자기 산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한 커다란 저수지와 그 위에 길게 늘어진 출렁다리가 보인다. 청양 여행에서 가장 핫한 칠갑산 ‘천장호 출렁다리’이다.


천장호 출렁다리 전경/ 변영숙 제공

2009년 완공 당시 길이가 207m로 국내 최장이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로 화제를 모았다. 출렁다리 주탑은 청양을 상징하는 붉은색 고추 3개를 모아놓은 형태다.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지자체가 하루가 멀다 하고 기록을 갈아 치우며 전국의 호수와 산골짜기에 길고 높은 출렁다리를 놓는 바람에 이제 천장호 출렁다리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칠갑산 천장호로 향하는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는 칠갑산 아흔아홉계곡의 비경을 감상하기 위함일 것이다. 


주차장에서 청양 칠갑산 천장호 출렁다리까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향로정이라는 정자와 ‘콩밭 매는 아낙네’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하트 모양과 고추 모양으로 꾸며 놓은 포토존을 만날 수 있다. 호수 둘레를 따라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고 등산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오면 천장호 ‘황룡과 호랑이’ 전설을 만나게 된다. 천장호 인근에 살던 살던 아이가 몸이 아파 의원을 찾아가야 하는데 물이 불어 갈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천장호에서 승천을 기다리던 황룡이 승천을 포기하고 자신의 몸으로 다리를 만들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본 호랑이가 감명을 받아 영물이 되어 천장호 인근의 주민들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천장호를 건너 칠갑산에 오르면 악을 다스리고 복을 받아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해서도 많이 찾는다. 


충남 삼곡사 중 한 곳, 가장 아름다운 길의 끝 ‘장곡사’ 


칠갑산 골짜기에 위치한 청양의 장곡사(長谷寺)는 예로부터  공주의 마곡사(麻谷寺), 예산의 안곡사(安谷寺)와 함께 삼곡사로 불렸다. 긴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깊숙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절집들이다. 여기에 청양 운곡면 사자산(獅子山)의 운곡사(雲谷寺)까지 더해 사곡사로 칭하기도 한다. 


장곡사 삼거리부터 장곡사까지 5.7km 구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봄이 되면 빼곡하게 심어진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팝콘처럼 터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벚꽃 터널 길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장곡사는 벚꽃길이 끝나고도 한참을 더 달려야 한다. 아직 식사 전이라면 장곡사 가는 길에 포진해 있는 산채요리 전문점에서의 식사를 권한다. 마침 2대째 운영하고 있는 손두부 원조집이 눈에 띈다. 점심 장사를 끝내고 식당 마루에 길게 누워 휴식을 취하던 주인이 필자가 들어서자 귀찮은 기색 없이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한다. 식당 주인의 달콤한 휴식을 깬 데 대한 미안함에 산채비빔밥에 손두부까지 주문한다. 직접 재배한 콩을 갈아 매일 아침 만들어내는 손두부는 시중 마트에서 판매하는 대기업표 두부들과 달리 단단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거칠지만 부드러운 두부 맛이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속정이 깊고 부드러운 산마을 사람들과 꼭 닮았다. 산채비빔밥과 손두부로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산마루 너머로 기울어가는 해를 보고도 마음이 느긋하다.


장곡사는 ‘긴 골짜기’라는 뜻이다. 골짜기가 얼마나 길면 절 이름이 장곡사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장곡사는 칠갑산의 깊은 골짜기를 차로 한참 달려야 겨우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잘 정비된 도로 덕분에 깊은 산속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때인 850년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을 뿐 그 이상의 내력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남아있는 전각들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 장곡사는 깊은 정적에 파묻혀 있다. 돌 축대 위에 운학루가 먼저 반긴다. 돌 틈에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가 부지런한 절 사람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15년 전 눈 내리는 겨울날 찾은 장곡사는 고즈넉함을 넘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고요함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장곡사는 시골 촌부처럼 아무 일 없이 늙어갈 일만 남은 절 같았다. 그러나 2022년 다시 찾은 장곡사는 예상과 달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세월의 깊이를 머금고 있던 설선당에서는 새 단장을 마친 여인네의 분내가 났다. 부뚜막에 조왕신을 모셨던 공양간도 몰라보게 말끔해졌다.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절도 사람 사는 곳이라 절 사람들에게 무작정 ‘세월의 깊이’를 강변하며 불편함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공양간을 기웃거리고 있자니 멀리서 대뜸 “들어가면 안 돼요”라며 고함을 질렀다. 어디선가 필자를 지켜보고 있던 처사가 질러대는 소리였는데 순식간에 불청객이 되어 버린 듯하여 씁쓸했다. 오래된 친구처럼 가슴에 품고 있던 장곡사에 대한 호감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장곡사는 보기와 달리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알부자 같은 절이다. 다른 사찰과 달리 하대웅전과 상대웅전 등 두 개의 대웅전이 있다. 시기적으로 상대웅전(보물 162호)은 14세기에, 하대웅전(보물 181호)은 16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절의 최상급 건물이다.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과 대웅전을 같이 둔 사찰은 여럿 있지만 대웅전만 두 개를 보유한 절은 장곡사가 유일하다. ‘기도의 효험’이 뛰어나 장곡산을 찾는 사람이 늘자 하나 더 만든 것으로 보인다. 증개축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사찰로 통합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일직선이 아니라 서로 엇갈리게 배치돼 있다. 상대웅전은 동남향, 하대웅전은 서남향이다. 상대웅전이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상대웅전은 비로자나부처가 주불로 모셔져 있으며 협시불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모셔져 있다. 하대웅전은 약사여래가 주불이며 비로자나불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다. 두 대웅전 모두 석가모니불은 모시지 않았다. 


장곡사 하대웅전 전경/ 변영숙 제공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축대 아래 하대웅전이 다소곳하게 서 있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을 한 하대웅전은 조선 중기 건물이다. 쇠붙이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은 목조 건물로 새삼스레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든다. 


하대웅전에는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이 모셔져 있다. 갸름한 타원형 얼굴과 반달 모양의 눈썹, 가늘면서도 눈 오똑한 코 등 당대 불상들의 전형적인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다. 약사여래좌상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문을 통해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조성된 불상임이 밝혀졌다.


하대웅전에서 비스듬한 경사면을 따라 위쪽으로 50m 정도 올라가면 상대웅전과 응진전이 나오고 조금 더 위쪽 오른 편에는 삼성각이 자리 잡고 있으며 등산로로 연결된다.


상대웅전 앞마당에 서면 멀리 칠갑산에 둘러싸인 장곡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힘겹게 산을 깎아내고 겨우 마련한 비좁은 터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애잔하다. 


장곡사 상대웅전 전경/ 변영숙 제공

상대웅전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법당 안에는 왼편부터 철조아미타불좌상, 중심불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제174호)와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제58호) 등 불상 3좌가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과 약사여래좌상은 원래는 철조 불상이었으나 현재는 금동불사를 하고 약사여래의 상징인 약함도 새로 만들었다.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은 신라 말이나 고려 시대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재로 석조대좌와 광배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니 눈여겨봐야 한다. 이 석조대좌는 넓은 사각형 모양의 화강암 지대석 위에 하대, 중대, 상대를 쌓아 탑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대석에는 겹잎 복련 무늬가 새겨져 있고 네 귀퉁이에는 귀꽃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그 위로 5단의 받침을 세우고 앞뒤로 2개씩, 좌우로 1개씩 안상을 새겼다. 상대석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돌아가며 새겨 화려함을 더했다. 


철조약사여래좌상 뒤편에 세워진 나무 광배에는 연꽃과 불꽃 모양을 새겨 화려함과 장엄함을 더하고 있다. 나무광배는 애초 석조광배였으나 후에 나무 광배로 대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곡사 철조약사좌상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영험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장곡사 미륵불괘불탱이 국보 300호로 지정돼 있다. 이처럼 장곡사에는 국보 2점과 보물 4점을 갖추고 있다. 장곡사 설선당은 충남도 유형문화제 151호로 지정돼 있다. 


장곡사 초입에는 전국 각처의 장승 300여기를 재현한 장승공원이 있다. 장곡사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면 은행나무 가로수가 길을 이어 가을의 정취를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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