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몰래 카메라'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6952명으로 집계됐다.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지만 남성 피해자도 1년 사이에 피해자 수가 약 2배 증가했다.
지난 4일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2021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운영 결과를 발표했다. 센터에서 지원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수는 6952명으로 지원한 서비스는 총 18만8083건이다.
전년 대비 피해자 수는 39.8%, 서비스 지원 건수는 10.2%씩 각각 증가했다. 피해자 중 지난 2020년 대비 여성은 4047명에서 5109명으로, 남성은 926명에서 1843명으로 각각 늘었다.
여성가족부는 남성 피해자의 증가 원인은 몸캠 피싱 등 불법 촬영물 협박 피해 신고 건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피해자 연령은 △10대 21.3% △20대 21.0% △30대 6.8% △40대 2.5% △50대 이상 2.0% 등이다. 연령을 밝히지 않은 피해자는 46.4%다.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보면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51.7%인 3595명이다. 28.2%는 일시적 관계, 7.8%는 친밀한 관계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유형으로는 접수된 피해 1만353건 중 유포 불안이 25.7%로 가장 많았고 불법 촬영 21.5%, 유포 20.3%, 유포 협박 18.7%, 사이버 괴롭힘 4.1%, 편집ㆍ합성 1.7% 순이다.
‘몰카’는 몰래 설치한 카메라 또는 스마트폰카메라를 이용해 타인의 얼굴이나 신체 등을 촬영하는 행위로 명백한 성범죄다. 최근 몇 년새 국내 몰카 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화장실, 지하철 등에서 자주 발생하는 몰카 성범죄가 심각한 사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누구나 이용 가능한 다중이용시설이나 공중장소의 경우 불법 촬영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소위 몰카라 불리는 카메라 등 이용촬영 죄는 카메라 혹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촬영하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로 성폭력 처벌 법 제14조에 의거하여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몰카는 동일 재범비율이 비교적 높은 성범죄로 법원에서 일벌백계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초범이라고 해도 무거운 형을 선고하는 추세이며 형사적 처벌과 함께 성범죄자로 등록되어 공개, 고지하는 성범죄자 관리 제도에 의해 사회적으로 큰 제약까지 따르게 된다. 예전에는 벌금형 혹은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상당했지만 최근에는 검거 횟수가 지나치게 많은 재범의 경우 그 죄질이 좋지 않다고 보아 실형을 선고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몰카 범죄가 적발되었다면 향후 형량을 줄이기 위해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간혹 수사기관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범죄를 부인한다면 가중 처벌될 수 있으며 휴대폰에 대한 포렌식을 통해 여죄가 밝혀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몰카 행위가 성도착증의 일종인 관음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관음증(觀淫症, voyeurism)은 나체 또는 성행위에 관련된 사람을 몰래 관찰하고 이와 관련된 행동과 환상에 사로잡히는 질환이다. 옷을 벗고 있거나 벗은 사람, 성행위 중인 사람을 몰래 관찰하는 것에 환상을 갖고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게 특징이다.
흔히 관음증은 변태 행위의 하나 정도로 치부되지만 노출증, 마찰도착증, 성적피학장애, 성적가학장애, 소아성애장애, 물품음란장애, 복장도착장애와 함께 ‘성도착증(paraphilia)’의 하나로 분류된다. 정식 의학적 명칭은 ‘관음장애’다.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펴낸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Ⅳ-TR)에 따르면 옷을 벗거나 성행위 중인 타인을 눈치 채지 못하게 관찰하는 것에 대한 공상, 성적충동, 성적행동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관음증으로 진단한다”며 “몰카 범죄를 저지른 관음증 환자는 ‘단순히 혼자 즐기는 것일 뿐 범죄는 아니다’, ‘초소형카메라 등을 사용해 검거될 위험이 없다’ 등 왜곡된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관음증은 ‘피핑탐증후군(Peeping Tomism)’으로도 불린다. ‘Peeping’은 엿보다는 의미의 영단어, Tom은 중세의 한 재단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중세 초기 영국의 한 백작은 가혹한 세금징수로 악명을 떨쳤다. 보다 못한 백작부인이 세금징수를 줄여달라고 간청하자 백작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다. 예상과 달리 백작부인은 그렇게 하겠다며 알몸으로 말을 탔고, 감동받은 마을주민들은 부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일부러 마을 문을 닫고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탐(Tom)이라는 재단사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해 백작부인의 몸을 몰래 훔쳐봤고, 이 사실이 밝혀져 눈을 멀게 하는 형벌을 받았다.
관음증을 비롯한 성도착증이 생기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로 충동을 억제하는 전두엽이나 성욕을 느끼는 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면 발생할 수 있다. 둘째는 성장기에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하는 영상을 많이 접하거나 학대 등으로 잘못된 성(性) 인식이 형성된 게 원인일 수 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활자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웬만한 영상에는 반응하지 않고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며 “인터넷의 발달로 성적 흥분을 자극하는 동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돼 몰카를 찍기 수월한 환경이 조성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주관적인 만족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몰카범죄가 증가하는 이유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성도착증은 18세 이전에 형성돼 20대 중반부터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는 경향을 나타낸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청소년이 음란물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돼 발병 연령대가 낮아지는 추세다.
성도착증 치료는 정상적인 성관계 경험이 있고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치료를 원하면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증상이 일찍 시작될수록, 행위가 잦을수록,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이 없을수록, 약물을 남용할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먼저 정신과적 상담이나 검사로 치매나 반사회적 성격장애 같은 기타 정신질환과 구분한다. 이어 인지행동요법이나 그룹치료를 실시한다. 인지요법은 치료대상자를 피의자로 가정해 범죄 상황을 설정한 뒤 경찰에 검거되거나, 이로 인해 직장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매우 부정적인 상황을 주입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증상이 심각하면 행동·심리치료에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약물치료엔 선택적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등을 사용한다.
김정현 교수는 “법적 처벌을 강화하되 근본 원인인 그릇된 성의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선친국처럼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관음증이 단순히 개인의 성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사회구성원에게 인식시키고 청소년기부터 건전한 성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몰카 피해자를 보호 및 치료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홍진표 교수는 “성범죄 피해자는 남들의 시선을 피하거나 쉽게 상처를 받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기 쉽다”며 “혼자 고민하지 말고 바로 전문가에게 상담치료를 받은 뒤 명상이나 여행으로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