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7월 예식을 앞둔 직장인 황 씨(32)는 새해 들어 상견례를 시작으로 결혼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식장 계약, 스튜디오 촬영, 신혼집 장만, 각종 혼수 장만 등 조사하고 비교해가며 결정해야 할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게 굵직굵직한 ‘미션’들을 잘 수행하고 이제는 청첩장을 찍을 차례였다. 그런데, 이 무렵 황 씨에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에 힘들게 결혼 준비를 이어오다 보니 심적으로 지친 감도 없지 않았지만, 핵심은 ‘이 결혼 정말 해도 괜찮을까’였다. 예비 신랑에 대한 애정과 신뢰도가 떨어진 건 아니지만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결혼 후에 사람이 변해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황 씨처럼 결혼을 앞두고 우울감을 겪는 예비신랑, 신부들이 적지 않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결혼을 앞두고 한 번쯤 겪게 된다는 결혼 전 우울감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이를 현명하고 지혜롭게 이겨낼 방법이 있을까? 윤지애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들어봤다.
결혼 전 스트레스, 해고 때보다 심해
핑크빛 설렘과 기대감으로 부푼 결혼,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다. 결혼 날짜가 정해지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 보면 예비신부와 신랑은 사소한 문제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겪게 된다.
실제로 제일 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100점 만점으로 했을 때, 결혼의 스트레스 지수는 50점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직장 해고로 인한 스트레스(47점)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메리지 블루’는 일본 작가 유이카와 게이의 베스트셀러 소설 제목에서 유래한 말로, 결혼을 앞두고 남녀들이 겪는 심리적인 불안을 의미한다.
윤지애 교수는 “발달단계는 소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인기에도 시기에 따른 발달단계의 과업을 잘 이루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삶의 주기가 크게 전환되는 시기에는 개인의 역할의 변화가 따르며 그 중 초기 성인기로의 이행에 관여하는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가 결혼”이라고 말하고 “이 시기에는 흔히 불안이나 우울을 느끼게 되며 반응적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새로 주어진 책임 혹은 현재 맡고 있는 책임에 대해 처리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메리지 블루에 대항하는 다섯 가지 자세
그렇다면 메리지 블루에 맞서기 위해 예비신랑, 신부에게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첫째,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야 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긍정적인 부분을 발휘할 때이다.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자신만의 성숙한 방법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좋다. 특히, 융통성과 유연성은 큰 인생의 변화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이다.
둘째, 서로 간의 신뢰, 지지적인 가족관계 및 대인관계는 큰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준다. 결혼의 준비는 가족과 내 주변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는데, 이들은 나에게 이 어려움과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 줄 수 있다.
셋째, 언어적 의사소통 기술, 즉 대화가 중요하다. 유연성과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것이 좋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가치에 대해 탐색하고 인정해주는 동시에 건강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결혼 전 나의 역할(Role)과 결혼 후 역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 결혼 전 나의 역할을 버리는 것이 아쉽고, 새로운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알아차리는 것은 새로운 역할을 맞이할 때의 중요한 준비과정이다.
마지막으로, 큰 인생의 준비를 하는 중에도 일상을 놓쳐서는 안 된다. 새로운 책임에 대한 염려와 기대 속에서도, 현재의 책임에 대한 것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돌보는 것이 포함되고, 당연히 배우자가 될 사람이 포함된다. 또한, 평소에 즐겨했던 여가생활이나 휴식을 지속하는 것은 스트레스에 압도되지 않고 해소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미국의 정신분석자 에릭슨(Erikson)의 ‘심리사회 발달단계’에 따르면, 총 8단계 중 6단계의 주요한 발달과제를 청년기부터 초기 성인기의 ‘친밀감 vs 고립감’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친밀감이란 ‘다른 사람의 요구와 근심을 자기 자신의 것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윤지애 교수는 “결혼 생활은 가장 고도의 대인관계 기술을 요구하며, 다음 발달단계로 넘어가는 관문 또한 결코 녹록치 않다”고 말하며 “결혼을 준비하는 전 과정은 초기 성인기의 중요한 덕목인 친밀감을 발휘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