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최모 씨(35·여)는 한 달 전부터 잠자리에만 누우면 다리가 ‘쿡쿡’ 쑤시면서 당기는 느낌이 들어 밤이 두렵다. 자세를 바꾸면 잠깐 증상이 나아졌다가 다시 심해져 숙면을 취하기가 힘들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니 다음날 피로가 쌓여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감이 점차 커지자 병원을 찾은 결과 하지불안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 RSL) 환자들이 코로나19 팬더믹 초기인 2020년에 우울증 등 증상이 악화된 것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버드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Harvard Medical School) 연구팀은 최근 하지불안증후군 등록 환자 500명을 대상으로 수면장애, 주간졸음, 우울증, 불안 및 공황 등을 조사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낮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가 잠자리에 들면 마치 다리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과 저릿한 통증, 누군가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 등 다양한 증상을 나타낸다. 수면장애뿐만 아니라 주간졸림, 극심한 우울증, 불안과 공황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지불안증후군은 쉽게 잠이 들지만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수시로 깨거나 불편한 감각이 느껴져 자다가도 몸을 움직이는 고통을 겪는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다리에 불편한 감각과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충동 때문에 발생하는 수면장애다. ‘다리가 불편하다’, ‘기분이 나쁘다’,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 ‘콕콕 쑤신다’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정맥류나 척추질환과 달리 다리를 움직일 때보다 가만히 있을 때 통증이 심해지는 게 특징이다. 자세를 바꾸면 증상이 나아졌다가 다시 심해져 결국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게 된다.
대한수면연구회가 국내 20~69세 성인 남녀 5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설문조사한 결과 7.5%(373명)가 하지불안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 유병률은 30~50세는 약 5%, 64세 이상은 약 44% 정도다. 주로 40대 이후에 잘 생기지만 유전적인 원인으로 10~20대에서도 나타난다. 10대에 발병하면 학습장애나 주의력 결핍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직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인 ‘도파민’의 불균형이 증후군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도파민은 근육 움직임을 조절하는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철분 결핍도 주원인으로 추측된다. 선행 연구결과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30~40%는 혈액내 철분수치, 60~70%는 뇌척수액 철분수치가 정상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선행 연구결과 약 60%의 환자에서 가족력이 확인돼 유전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임신 및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변화, 철분 결핍성 빈혈, 콩팥기능 저하, 알코올중독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덥거나 추운 곳에 오래 노출됐을 때 발병하기도 한다. 이밖에 파킨슨증후군, 신장질환, 임신, 말초신경병증, 갑상선 이상, 류마티스관절염, 엽산 결핍, 포르피린증에 의해 발병하는 경우도 있다.
이 질환으로 유발되는 가장 큰 문제는 수면장애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신홍범 코슬립수면의원 원장팀이 2014년 발표한 ‘임상현장에서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수면다원검사 결과의 특징과 약물처방 현황’에 따르면 하지불안증후군 증상을 호소한 211명의 수면 효율은 78%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통 잠을 정상적으로 자는 일반인은 약 85~90% 수면 효율을 나타낸다. 수면 효율은 잠자리에 들은 뒤 아침에 눈을 뜨기까지의 시간의 비율을 의미한다. 또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는 얕은 잠을 자는 비율이 76%로 정상인의 55%보다 높았다. 비슷한 증상이 다리뿐만 아니라 팔이나 어깨 등에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상당수는 폐쇄성수면무호흡증, 주기성 사지운동장애 등을 동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1명 중 136명(64.5%)은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53명(25.1%)은 주기성 사지운동장애를 앓고 있었다. 주기성 사지운동장애는 발목이 앞쪽으로 구부러지거나, 무릎과 엉덩이관절의 앞쪽으로 수축돼 발생하는 현상으로 팔·다리를 꿈틀거리거나 걷어차는 증상이 나타나 마치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강 교수는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두 가지 이상의 수면장애가 동반된 경우가 많다”며 “하지불안증후군을 진단받았다면 야간수면다원검사를 실시해 다른 수면장애가 있는지 확인하고 치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신이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충동(대개 불편하거나 불쾌한 느낌을 동반)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나 불쾌한 느낌이 쉬거나 움직이지 않을 때 시작되거나 악화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나 불쾌한 느낌이 몸을 움직이면 완화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나 불쾌한 느낌이 저녁이나 밤에 더 나빠지거나 발생 등에 해당된다면 하지불안증후군을 의심하고 진단받아보는 게 좋다.
남성보다는 여성에서 자주 발생하고, 나이 들수록 발생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수면의학계에서는 이 질환을 처음 발견한 의사의 이름을 따 ‘에크봄병(Ekbom disease)’으로 병명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일부 의사들은 단순한 수면장애 중 하나인 하지불안증후군을 질환으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직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아 적절한 진단 및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 심혈관질환만큼이나 환자의 삶의 질에 영향을 끼쳐 올바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설고 하찮은 수면장애로 여겨 치료받으려는 환자가 적다. 의료계에서도 수면학회나 수면연구회를 제외하고는 질환에 대한 관심이 적다. 심지어 허리추간판수핵탈출증(척추디스크)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수면장애로 불면증이 심해지고 낮엔 심한 통증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늘 피로가 쌓여있어 삶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불안증후군을 앓으면 당뇨병·뇌졸중·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위험이 39% 증가한다는 선행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에 대한 특별한 진단법은 없어 환자의 증상과 병력을 통해 진단하는 수밖에 없다.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부위는 다리로 환자의 85% 이상에서 ‘주기적 사지운동증’(PLM, Periodic Limb Movements of Sleep)이 일어난다. 수면 중 20∼40초 간격으로, 매회 0.5∼5초간 지속적으로 다리에 경련성 수축이 일어나는 게 특징이다. 불면증, 피곤, 다리나 신체 다른 부위의 불쾌감, 통증 등이 나타난다.
어떤 환자는 다리가 아픈 증상을 척추나 고관절 이상으로 보고 3회 이상 디스크수술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다리의 불쾌감이 심한 경우 야구방망이로 자신의 다리를 내리치는 환자가 있을 정도로 삶의 질 저하가 심각한 질환이다.
질환 초기엔 자기 전 따뜻한 목욕, 스트레칭, 명상 등을 통해 근육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카페인 섭취를 줄이면 개선효과를 볼 수 있다. 수면 전 마사지, 족욕, 가벼운 운동(걷기, 스트레칭, 체조) 등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도파민효현제(촉진제) 등을 이용한 약물치료를 실시해야 한다. 강 교수는 “수면장애는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개선할 수 있지만 증상이 심하거나 수면의 심각하게 저하될 땐 전문의와 상담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치료에는 도파민 기능을 높이는 약이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약은 도파민 농도를 급격히 변화시키므로 도파민 회로가 손상돼 주로 밤에 나타났던 증상이 초저녁부터 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땐 약 복용을 중단해야 증상이 개선된다. 최근에는 뇌의 도파민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패치형 치료제가 출시됐다. 이 치료법은 도파민 농도를 급격하게 변화시키지 않으므로 도파민 회로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증후군은 철분이 부족한 임신 중인 여성에서도 쉽게 발생한다. 철결핍성빈혈이 원인일 경우 혈중 페리틴(ferritin) 농도를 측정해 75㎍/㎖ 이하인 경우 철분제를 복용하면 상태가 호전된다. 조용원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철분주사요법을 개발했다. 이 요법은 JW중외제약의 ‘페린젝트주’(성분명 수산화제이철카르복시말토오스, ferric carboxymaltose)를 5일 간격으로 두 번 주사한 뒤 경과를 본다.
대한신경학회는 하지불안증후군 치료를 위한 약물요법으로 2005년에 허가받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리큅’(성분명 로피니롤, ropinirole), 2007년 허가받은 베링거인겔하임의 ‘미라펙스’(성분명 프라미펙솔, pramipexole), 2010년에 허가받은 UCB제약의 경피용 패치 ‘뉴프로패취’(성분명 로티고틴, rotigotine) 등 도파민 작용제를 1차 선택으로 권고하고 있다. 리큅과 미라펙스는 파킨슨병 치료제이기도 하다. 유럽신경학회지는 ’하지불안증후군 관리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약제 모두 단기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추천했다. 심한 신경병증 증상이 동반된 중증도~중증 환자에게는 비아트리스(옛 화이자)의 간질치료제인 ‘뉴론틴정(성분명 가바펜틴, Gabapentin)’, ‘리리카캡슐(성분명 프레가발린, Pregabalin)’ 등을 처방한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자기치료에만 의존하다간 증상이 심해질 수 있으므로 되도록 빨리 수면질환 전문의료기관을 찾아 진단받는 게 좋다”며 “알코올, 카페인, 니코틴 등을 멀리하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