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혈전증’은 인체의 정맥에 피가 응고돼 혈전이 생성되고 이로 인해 여러 합병증을 야기하는 질환이다. 대표적인 혈전증은 하지의 정맥 내에 혈전이 생기는 ‘심부정맥혈전증’인데, 이 혈전이 분리돼 심장을 지나 폐동맥을 막을 경우 ‘폐색전증’을 발생시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대부분은 진단과 동시에 혈액의 응고 능력을 감소시켜 혈전의 형성을 막는 항응고제 치료를 하게 된다.
다른 혈관에도 혈전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위·대장암 등 소화기계 암 환자에게서는 복강 내의 깊은 정맥에 혈전이 발생하는 ‘내장정맥혈전증’이 흔하게 발견된다. 하지만 심부정맥혈전증에 비해 내장정맥혈전증은 질병 경과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도 명확한 치료 방침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항응고제 치료를 시행해 왔지만, 출혈 등 오히려 여러 문제를 야기해 환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이근욱 분당서울대병원(서울의대) 혈액종양내과 교수팀(제1 저자: 혈액종양내과 강민수 전문의)이 위·대장암 환자들은 내장정맥혈전증을 진단받더라도 대부분 항응고 치료 없이 추적관찰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세계 최초로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이 교수팀은 2017년 6월에서 2020년 7월까지 내장정맥혈전증이 진단된 위·대장암 환자 51명을 전향적으로 등록해 환자들의 암 진행 상황 및 내장정맥혈전증의 임상 특징과 경과를 분석했다.
내장정맥혈전증을 진단받은 전체 환자 51명 중 특별한 증상이 없었던 환자는 90%(46명)로, 종양 평가를 위한 CT 등 영상 검사 시에 우연히 발견됐다. 아울러 전체 환자 중 정맥혈전증이 진행한다는 소견을 보인 환자는 약 31%(16명)로 나타났고, 혈전증으로 사망한 경우는 없었다.
또한, 항응고제 치료 여부에 따라 혈전증의 경과를 비교해보니, 항응고제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그룹(42명)에서는 절반 이상인 57%(24명)가 혈전증이 저절로 사라진 반면, 항응고제 치료를 받은 환자그룹(9명) 중에서는 약 22%(2명)만 혈전증이 사라졌다.
따라서 위·대장암 환자에서 내장정맥혈전증이 진단될 경우 항응고제 치료는 증상이 발생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에 대부분은 항응고제 치료 없이 추적관찰로 충분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아울러 내장정맥혈전증 보다는 암 자체가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근욱 교수는 “위·대장암 발생률 세계 1·2위인 한국에서 내장정맥혈전증의 임상 특징 및 경과에 대한 전향적 연구를 세계 최초로 시행한 것은 의의가 있다”라며, “항응고제 사용은 오히려 여러 합병증을 증가시켜 환자의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민수 전문의는 “위·대장암 질환은 암의 상태가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며, “무증상 내장정맥혈전증에 대한 항응고제 치료보다는 암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환자의 건강에 더 좋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 논문은 해외 저명 학술지 ‘Public Library of Science’에서 발행하는 ‘PLOS ONE’에 최근 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