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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여수섬 365개 중 가장 아름다운 섬 ‘금오도’ … 90m 절벽 ‘비렁길’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12-27 17:56:54
  • 수정 2021-12-27 18: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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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혜의 비경 ‘거문도·백도’ … 완도·고흥·여수 삼거리 ‘초도’ … 향일암과 갓김치 ‘돌산도’

여수의 크고 작은 섬이 무려 365개나 된다고 한다. 여수시가 지난 11월 30일 ‘2026여수세계섬박람회’ 개최 도시 홍보를 위해 365개 여수의 아름다운 10대 섬을 선정했는데 1위가 남면 금오도, 2위가 수정동 오동도, 3위가 삼산면 거문도, 4위가 돌산읍 돌산도, 5위가 화정면 낭도, 6위가 삼산면 백도였다. 나머지 7~10위는 화정면 사도, 화정면 하화도, 운천동 장도, 화정면 여자도 등이다.  


금오도는 ‘비렁길’이라는 트레킹하기 좋은 명품 탐방로가 있어 1위를 차지했다. 오동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고, 거문도는 섬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신이 내린 천혜의 비경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노화도 비렁길은 명품 트레킹 선사 … 황장목 키우던 원시섬

 

돌산도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 정상에서 보면 남쪽으로 점점이 흩어져 있는 30여 개의 섬들이 금오열도이고 그중 가장 큰 섬이 금오도(金鰲島)이다. ‘혈의 누’, ‘김복남 살인사건’, ‘인어공주’ 등 제법 알려진 영화들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금오도는 오랫동안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섬이었다. 고려 말 ~조선 초 왜구의 침입이 잦자 아예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을 실시해 민간인의 거주를 금했다. 큰 섬들은 수군진을 설치해 해안 방어를 했지만 금오도처럼 적은 섬들은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되면서 더 엄격하게 출입이 금지됐다. 궁궐이나 임금의 관, 판옥선 등을 만들 때 사용되는 질 좋은 소나무를 황장목(黃腸木)이라 하는데 금오도 황장목은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사용했을 정도로 최고였다. 봉산은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의미다. 고종은 이 황장봉산(금오도)을 명성황후가 살던 명례궁에 하사했으며, 명례궁은 이를 사슴목장으로 만들었다. 


영조 때 잠시 거주가 허용되기도 했으나 황장목 보호와 왜구 침입 방지를 위해 다시 공도정책이 실시됐다. 금오도에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1884년(고종 21년) 공도정책이 해제되면서부터이다. 따라서 금오도가 본격적으로 개척된 것은 130년이 조금 넘는다. 그렇다고 해서 섬에 전혀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생계가 어렵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숨어 살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금오도는 최고의 은신처가 됐다. 


이 섬은 숲이 울창해 검다는 의미의 ‘거무도’에서 유래해 한자로 ‘거마도(巨磨島)’로 불렸다가 섬 모양이 자라 모양을 닮았다 하여 ‘황금 거북(자라)’라는 의미의 ‘금오도’로 굳혀졌다는 설이 있다.  


금오도는 이곳의 명품 트레킹 길인 ‘비렁길’로 인기를 얻고 있다. 연간 30만명이 이 길을 걷기 위해 찾아온다.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을 뜻한다. 비렁길은 마을길과 아찔한 해안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로 총 거리가 18.5㎞에 달한다. 모두 5개 코스로 짜여 있으며 전 구간 도보에 2시간 정도 걸린다. 비렁길은 인공조림이 아니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섬에서 만단 노인은 ‘제주 올레길보다 금오도 비렁길이 훨씬 낫다’고 자랑한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미역널방길’로 불리는 제1코스다. 함구미 – 미역널방 – 송광사 터 - 신선대 –  두포로 이어진다. 길은 함구미마을 뒷산에서 시작된다. 함구미는 크다는 뜻의 ‘한’과 포구를 뜻하는 ‘구미’가 합해진 이름이다. 길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정도로 좁다. 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마을 사람들이 용무를 보기 위해 밟고 지나간 흔적이 길이 된 것이다. 


숲길로 접어들자마자 사위는 어두워진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린다. 이따금 두툼한 동백 나뭇잎을 뚫고 햇빛이 들어찬 숲속은 그야말로 찬란하다. 고사리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생긴 대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이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영토싸움을 하다 붙어버린 연리지 나무들, 바람이 부는 대로 속절없이 휜 가지들, 만만한 나무를 골라 휘감고 타고 올라간 덩굴…, 육지의 인공조림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따금 나뭇잎들 사이로 고등어 등처럼 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금오도 숲속에서는 인간 역시 하나의 개체일 뿐이다. 자만할 이유도 실망할 일도 없다. 


울창한 숲을 빠져나오면 사방이 탁 트인 ‘미역널방’이 나온다. 마을 주민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지게에 지고 올라와 널었던 바위라고 해서 ‘미역널방’이라 부른다. 정겨운 이름이다. 하늘과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미역널방은 신을 모시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접신’ 장소였을 것이다. 실제로 무당들은 이곳에서 굿을 했다고 한다. 이 너른 바위에 미역이 널려 있는 풍경을 상상한다. 오로지 햇빛과 바닷바람에 말린 미역 맛은 어떨까. 미역널방 아래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망망대해다. 잠시 서 있었을 뿐인데 뱃멀미하듯 어지럽다. 


다시 발길을 옮긴다. 미역널방에서 송광사 터까지가 비렁길 중에서 가장 아찔한 구간이다. 말 그대로 깎아지른 벼랑 위 샛길을 걷는 구간이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하러 다니고, 미역을 지고 올라왔던 길이다. 변변한 길이었을 턱이 없다. 비렁길을 조성한다고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나무데크를 설치했다. 데크 사이에 끼여 있는 나무가 마치 형틀에 갇힌 죄수처럼 가엾다. 건너다보니 하얀색 데크길이 산 허리춤을 옭아맨 오랏줄처럼 보인다. 비경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무와 땅에 몹쓸 짓을 하는 듯하여 마음이 무겁다. 어느 시인은 이 길을 ‘새들이 다니던 길, 바람도 숨차던 길’이었다고 표현했다. 벼랑의 높이가 표고 90m라고 하니 어지간한 강심장도 움찔할 만하다. 먹고살려고 지게에 미역과 나무를 지고 올랐던 길이 이제는 ‘명품 트레킹 길’이 되었으니 세상일 참으로 기이할 뿐이다. 


미역널방을 지나면 거친 질감의 바위가 고스란히 드러난 바위산 아래 보조국사 지눌이 지었다는 ‘송광사 터’가 나온다. 지눌은 유자 씨를 물려 새 세 마리를 날려 절터를 정했다고 한다. 첫 번째 씨가 떨어진 곳에 순천 송광사 국사전을, 두 번째 씨가 떨어진 곳에 고흥 금산 송광암을 마지막으로 이곳 금오도에 송광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이른바 ‘삼송광’으로 불린다. 송광사 터를 지나 2km 정도 더 가면 신선이 놀다 갔다는 신선대가 나오고 직포를 지나 두포에서 1코스가 마무리된다.


바다가 아늑하게 내려다보이는 노화도 마을 풍경. 변영숙 작가

비렁길의 처음과 같은 항상 마을과 맞닿아 있어 섬마을의 삶의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금오도 산비탈 밭에는 방풍나물이 지천이다. 단풍나무 잎처럼 넓어서 단풍나물로도 불리는 방풍나물은 풍을 예방하고 남자의 바람기를 잡는 데도 특효라고 한다. 날씨가 따뜻해서 1년 내내 수확이 가능하여 섬사람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비렁길쉼터’에 내걸린 ‘방풍막걸리’, ‘병풍문어초무침’ 간판이 갈 길 바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바닷가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다. 궁금해서 가만가만 따라가보니 손에 든 해초를 방파제 양지바른 곳에 가지런히 펴서 널어놓는다. 어장이 빈약하고 양식업이 발달하지 않는 금오도 주민들은 바위나 돌에 붙은 파래, 김, 미역, 가사리 등을 뜯어와 말려 반찬거리를 했다. 이런 바다를 섬사람들은 ‘갱번’이라 부른다. 군부, 배말, 해삼, 거북손 같은 해산물도 갱번에서 잡아 올린다. 오랫동안 금오도 사람들의 식량창고가 되어주었던 갱번도 점점 고갈돼 예전만 못하다. 사람들이 섬을 떠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배 시간 때문에 1코스 완주를 포기하고 함구미 마을길로 접어든다. 돌담이 밭과 밭의 경계를 이루고 집과 집 사이를 구분한다. 바람과 태풍을 막기 위해 지붕보다 높이 쌓은 돌담은 요새가 따로 없다. 어디 바람과 태풍만 피하기 위함이었을까. 외부의 적들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도 컸을 것이다. 겨우 한 사람 정도 빠져나올 만큼의 틈만 두고 모두 돌담으로 에워쌌다. 비탈진 길에 서면 집보다 길이 훨씬 높아 앞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돌담은 끊어질 듯하면서 선착장까지 이어진다. 돌담 사이 유자나무에는 노란색 유자가 주렁주렁 달렸다. 육지 촌사람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하다. 


노화도 갯마을 풍경. 변영숙 작가

돌담들은 집집마다 모양과 높이가 모두 다르다. 비렁길도 좋지만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돌담길은 그냥 방치하기엔 너무도 아깝다. 마을 전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여 보존할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실제로 낭도의 부속섬인 추도(鰍島)의 돌담길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빈집들이 많다. 더러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가 하면 돌담 한구석이 무너져 내려앉은 곳도 있다. 문화재 등록이 시급한 이유다. 비렁길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듯 빈집에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다도해 최남단 거문도, 영국군 점령했던 ‘해밀턴섬’ … 백도는 運 따라야 감상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최남단의 섬이 거문도다.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114.7㎞ 떨어진 거문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다도해 최남단이다. 제주도와 여수의 딱 중간에 있다. 섬의 전체 면적은 12㎢. 물길이 험해 예부터 하늘이 도와야 갈 수 있는 섬으로 알려졌다. 옛 이름은 삼도·삼산도·거마도 등이었으나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뜻인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건의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 섬은 봄이 조금 일찍 찾아들고 가을이 꽤 더디 오는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전남 여수에서 쾌속선을 타면 2시간 만에 거문도에 닿는다. 거문도는 동도와 서도, 그 사이에 끼인 고도(古島) 등  3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3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 3.3㎢ 정도의 천연적 항만이 호수처럼 형성돼 있는 곳을 도내해라고 하는데, 큰 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항구 구실을 한다. 이런 입지 때문에 거문도항은 예부터 빈번히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1885년 영국 군함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2년 가까이 머물면서 해밀턴(Port Hamilton)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거문도의 3개 섬 가운데 면적이 가장 작은 고도가 통상 거문도의 중심지다. 외지인의 거문도 여행은 대개 이곳 고도리에서 시작한다. 고흥이나 여수에서 출항하는 여객선 모두 고도가 종착지다. 고도는 서도와 삼호교라는 다리로 연결돼 있으며, 거문대교를 이용해 서도에서 동도로 건너갈 수 있다.  


서도 덕촌마을의 들머리를 거쳐 서도 정상의 불탄봉(195m)에 오르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고사목과 억새밭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서도, 동도는 물론 날이 밝으면 멀리 동쪽의 백도까지 바라볼 수 있다. 불탄봉에서 능선을 따라 동남방으로 거문도 등대까지는 7㎞, 왕복 4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절벽 능선을 따라 쉴 새 없이 펼쳐지는 비경을 보느라 힘들기는커녕 지루할 틈마저 없을 정도다. 


백도 전경. 여수시 제공

백도는 워낙 난바다(먼바다)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 해역의 물길이 거세 외지인이 발길을 들이기 어려운 곳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딱 하루 다녀올 수 있다는 말이 거문도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온다. 백도는 우람한 흰 바위와 함께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350종 이상의 아열대 식물을 자랑한다. 섬과 반경 200m 구간이 국가 명승 제7호로 지정돼 섬에 오르는 것은 철저히 금지돼 있고, 유람선을 타고 볼 수만 있다. 백도로 가는 유람선은 고도리 선착장에서 오전·오후에 기상 상황과 인원에 따라 수시로 운행하고 있으며 왕복 소요시간은 2시간30여분이다. 


거문도등대 트레킹길은 봄이면 동백, 가을이면 억새가 찬란하다. 늦가을이나 겨울에도 철을 잃은 동백을 제법 볼 수 있다. 동백숲은 어두울 정도로 울창하고 숲이 끊긴 오솔길은 그 나름대로 넓은 대양을 볼 수 있어 좋다. 


거문도등대는 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은 국내 두 번째의 등대로 1905년부터 점등해 100년이 훌쩍 넘도록 뱃사람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유인 등대로는 국내 최초다. 초창기 시설은 현재 기능을 다해 전시 중이며 2006년 증축한 새 등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높이 33m의 등대 꼭대기는 방문객 누구라도 오를 수 있는 전망대로 쓰인다. 거문도와 백도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날씨가 좋으면 제주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거문도로 가는 쾌속선은 여수 여객선터미널과 고흥 나로도선착장에서 탈 수 있다. 여수 출발 쾌속선은 나로도와 손죽도, 초도(북서쪽의 대동항(또는 초도항), 남동쪽의 의성항 등 두 포구가 존재)를 거쳐 거문도에 도착한다. 통상 오전배는 동도를 경유해 고도(거문항)에 닿고 오후배는 서도를 거쳐 고도에 하선한다. 


여수항과 거문도의 중간 ‘초도’ … 상산봉에서 고흥, 완도 앞바다까지 조망


여수항과 거문도의 중간에 위치한 초도. 여수시 제공

여수 삼산면 초도(草島)는 여행 마니아에게도 낯선 섬이다. 억새가 무성해 ‘쌔섬’으로 부르다 한자로 초도로 굳어졌다. 이 섬은 바다 풍광 좋기로 이름난 거문도와 백도를 여행할 때면 으레 경유하게 되지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해 왔다.


초도의 최고봉은 섬산 상산봉(上山峰·339m)이다. 남해 일원의 여러 산 중 최상급에 속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같은 삼산면에 속한 손죽도와 거문도, 백도는 물론 완도군 청산도와 생일도, 뭍과 다리로 연결된 고흥군 거금도와 외나로도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 명소다. 


초도 진막해안에서 200m쯤 떨어진 안목섬을 잇는 ‘신비의 바닷길’이 한 달에 아홉 차례나 열려 색다른 볼거리와 낙지, 전복, 소라 등 갯것 체험의 기회를 준다. 제주에서 시집 온 초도 해녀들이 바다 깊숙이에서 건져온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도 있다. 바닷가 마을 곳곳에는 돌미역과 돌김이 자라 이를 채취해 널기에 바쁘다. 


초도는 작은 섬이지만 여러 개의 섬이 군도를 이루고 있다. 건너섬, 용섬, 중결섬, 술대섬, 구멍성, 취섬, 솔거섬, 밖목섬 등이다. 이밖에 둥글게 생겼다 하여 둥글섬, 길다 해서 진대섬, 섬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다 하여 구멍섬 등 이름들도 정겹다.  


초도에는 생달나무, 후박나무 등 아열대식물이 300여 종이 자란다. 상산봉 서쪽 능선 사면이 동백숲을 이루고 있다면 북동 능선은 산딸기나무와 한국의 블루베리라는 정금나무로 무성히 우거져 있다. 바위틈에 여기저기 산재한 진달래도 존재감을 알린다. 초도는 풀의 질이 좋아 소나 말을 키우기에도 최적이라고 전해진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기도처 돌산도 향일암 … 갓김치로 유명


여수구항에서 연륙교인 돌산대교나 돌산2대교를 건너면 남해를 바라보는 향일암(向日庵)이 떠 있는 돌산도(突山島)에 이른다. 이 섬의 금오산 자락, 남동쪽 모서리에 있는 향일암은 양양군 오봉산 낙산사, 강화군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 남해군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한 곳이다. 


향일암은 644년(신라 선덕여왕 13) 원효(元曉)스님이 창건, 처음엔 원통암(圓通庵)이라 했다. 958년(고려 광종9)에 윤필거사가 중창한 뒤 금오암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의 본거지였다. 1715년(조선 숙종41)에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개칭했다. 숙종 대에 원통보전, 삼성각, 관음전, 해수관음상을 복원했는데 2009년 12월 20일 화재로 소실돼 2012년 5월6일 원통보전, 종무소, 종각을 새로 낙성했다.


돌산도 금오산 향일암. 여수시 제공

향일암은 남해 수평선의 일출 광경이 장관이어서 매년 새해 첫날을 기념해 일출제가 열리고 기도객과 관광객이 넘쳐난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원효대사는 첫 눈에 명당자리임을 알아보고 이 곳에 사찰을 세웠다. 금오산이 거북이(자라)를 쏙 빼 닮았다면 절 자리는 거북이 몸통의 중심부다. 신비롭게도 금오산에는 거북이 등짝 같은 바위가 널려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향일암은 금거북이 경전을 지고 용궁(바다)속으로 들어가는 금구입해형(金龜入海形)의 명당이다. 중심전각인 원통보전 뒤편으로 불경을 쌓아놓은 듯한 경전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향일암은 봄꽃과 연초록의 신록은 물론 겨우내 몰아친 한파에도 동백꽃이 있어 사시사철 아름답다. 


향일암으로 들어 가는 길목에는 석문(石門)이 일곱 개나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일곱 번 해야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할 수 있다. 한 번에 한 명씩만 지날 수 있는 좁은 문이다. 제법 긴 석문은 낮에도 불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둡다. 석문이 끝나는 지점에 맞닿아 있는 관음전 입구엔 돌거북 상이 도열하듯 남해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관음전 옆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해수관음 입상이 서 있다. 그 좁고 어두운 문을 지나면 확 트인 남해바다가 펼쳐지는 원통보전이 다가온다.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게 일반적인 원통보전에는 특이하게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2009년 화재로 전소되기 전에는 원통보전이 대웅전이었기 때문이다. 화재 이후 관음도량이란 취지를 계승해 원효스님이 창건할 당시 ‘원통암’ 이름을 계승해 원통보전이라는 현판을 붙였지만 중심전각이다보니 석가모니를 모셨다.  


돌산갓김치는 바닷바람을 맞아 육지의 갓보다 톡쏘는 매운 맛과 특유의 향이 강하며 매운맛과 섬유질이 적다. 잎과 줄기가 붉은 뭍의 갓과 달리 잔털이 없으며 연하고 부드러운 연녹색 채소로 이름이 높다. 이따금씩 먹어보지만 늘 감탄하는 갓김치 맛이다. 


그러나 최근엔 바닷가 산책로를 만든다며 갯바위에 시멘트를 붓고, 해안 절벽 위에 대규모 리조트를 조성하고, 동백나무를 심는다며 산도를 무자비하게 내서 비난이 일고 있다. 관광진흥, 지역발전을 위해 난개발이 이뤄지면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던 돌산도 경관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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