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험사 에이트나는 보험 가입자의 혈압과 혈당 등 건강 관련 지표를 수시로 확인하고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 처방전을 받지 않더라도 고혈압약이나 당뇨약 등을 우편으로 배달해준다. 일본 보험사는 자회사를 만들어 고령 가입자가 질환을 앓을 때 간병 서비스를 제공한다. AI(인공지능)를 동원해 가입자들에게 건강 코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험사도 있다.
일상 생활에 바쁜 개인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건강관리(헬스케어)를 대신 챙겨주는 보험 서비스가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보험사들도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해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헬스케어 서비스로 ‘걸음 수 할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의료법상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제한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채택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걸음 수 측정이 가장 데이터 수집이 편하고 소비자 접근성이 높은 운동이라는 점에서 개발 난이도가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서비스 확대에 나섰지만, 이름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KB손해보험의 온라인 채널인 KB손해보험 다이렉트는 전용앱에 고객의 건강과 자동차보험료 할인을 모두 고려한 'KB-WALK(워크)' 기능을 출시했다.
K-WALK는 이용자의 걸음수를 매일 체크해 건강을 챙기는데 돕고 자동차보험의 걸음수 할인특약을 쉽게 가입하도록 지원한다. 앞서 KB손해보험은 지난 7월 보험 청약일 기준 90일 이내에 하루 5000보 이상, 달성일이 50일 이상인 경우 보험료를 3% 할인해주는 자동차보험 특약인 ‘걸음수할인특약’을 출시했다.
삼성화재는 걷기·달리기 등 운동을 통해 목표 달성하고 이에 따라 포인트를 제공하던 기존 애니핏을 확장한 통합 건강관리 서비스 ‘애니핏 2.0’을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걸음 수 체크 뿐만 아니라 당뇨병 자가관리가 가능한 당뇨케어, 건강검진 우대 예약, 종합병원 예약, 병원·약국 찾기 등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한화생명이 선보인 '라이프플러스 운동하는 건강보험'은 걷기와 달리기, 수영, 등산, 사이클 등 총 5개 활동량을 보험료 할인에 반영한다. 걷기 이외 활동의 경우 운동거리를 기반으로 한 걸음 수 환산을 통해 건강관리 수치를 반영한다. 하루 평균 7500보를 달성하면 다음달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으며, 최대 110만원까지 할인 해준다.
AIA생명의 'AIA바이틸리티'는 걸음수, 심장박동수에 따라 보험료 할인 혜택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오렌지라이프생명은 건강관리 워킹앱 '닐리리만보'로 1만보 달성시 보험료를 일부 지원한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서비스에서 걸음 수 할인을 우선 개발하는 것은 개발의 편의성과 소비자 접근성 때문이다.
걸음 수 측정은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할 수 있어 개발이 용이하며 별도의 웨어러블기기 구매 없이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걷기 운동은 소비자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어 참여도가 높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걸음 수 특약은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관심을 끌기 좋다"면서 "특히 스마트폰만 있어도 데이터를 확보가 가능해 다른 건강 정보 수집보다 현실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법상 데이터 수집이 제한된다는 점도 보험사들이 걷기할인 특약으로 몰리는 이유라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법 제27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특히 의료인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로 규정돼 있다. 간수치나 혈당과 같은 세부적인 데이터를 활용해 진단을 내릴 수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직 헬스케어 서비스를 어느 정도까지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통제하느냐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마이데이터 사업과 같이 일정 수준 안에서는 자유롭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적극 활용해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의 가능성을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