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전 17세 몽골소녀 마랄마(MARALMAA)는 올해 1월 친구들과 썰매를 타다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다리가 뼈가 보일 정도로 심한 개방형 골절로 몽골의 정형외과에서 고정술을 시행 후 2일만에 퇴원했지만 퇴원 후에도 심한 통증으로 여러 차례 입원을 반복했다. 이 소녀는 골수염으로 번지자 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한국서 치료를 받고 완치된 사례가 있었다.
흔히 ‘뼈에 생기는 염증’ 하면 관절염을 떠올린다. 고령인구 증가로 퇴행성 무릎관절염 환자가 급격히 늘면서 질환의 원인 및 예방법, 인공관절수술·연골주사 같은 치료법이 널리 알려졌다. 반면 골수염은 관절염에 비해 환자가 훨씬 적어 대중에게 아직 생소한 편이다. 그만큼 진단과 치료가 늦고 이로 인해 후유증이나 합병증이 퇴행성관절염 못잖아 적절한 대비가 필요하다.
골수는 뼈 사이 공간을 채우는 부드러운 조직으로 적혈구와 백혈구를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골수는 적색골수(red marrow)와 황색골수(yellow marrow)로 나뉜다. 적색골수는 적혈구와 혈소판, 황색골수는 백혈구를 생성한다. 적색골수는 적혈구를 생산하기 때문에 붉은 색을 띠고, 황색골수는 지방세포(fat cell)가 많아 황색으로 보인다.
성인은 평균 2.6kg의 골수를 갖고 있다. 골수염은 뼈와 골수에 세균이 침입해 조직이 파괴되고 부종, 통증, 고름 등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크게 급성 혈행성 골수염과 만성골수염으로 구분된다. 급성 혈행성 골수염은 유아나 성장기 소아, 특히 남자아이에서 발생률이 높다. 주로 부피가 크고 성장이 빠른 대퇴골(넙다리뼈)에서 나타난다.
주요 증상으로 국소열감, 뼈 통증, 식욕저하 등이 동반된다. 원인균의 80~90%가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이다. 유소아의 팔·다리뼈는 성장판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영양동맥에서 갈라져 나온 혈관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혈관은 혈류 속도가 느려 균주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
오종건 고려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상기도염(감기)이나 부스럼 등 감염성 질환을 앓은 아이는 치료 후 세균 일부가 체내에 남을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세균이 피를 따라 돌다 무릎뼈로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신적 만성질환을 앓거나, 영양 상태가 불량하거나,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골수염이 더 잘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 때 치료하지 않으면 항생제 효과가 떨어져 수술이 필요하고, 자칫 만성골수염이나 화농성관절염으로 악화될 수 있어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치료는 혈액검사와 X-레이로 증상이 비슷한 화농성 관절염, 급성 백혈병, 봉소염, 육아종 등과 구별하는 게 우선이다. 뼈에 농양이 없을 땐 항생제만 투여해도 치료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원인균주인 황색포도알균에 대한 항생제를 우선적으로 처방한다. 드문 확률로 내성을 가진 MRSA(메타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이 원인일 땐 강력한 항생제인 반코마이신(Vancomycin)을 처방한다. 항생제요법 후에도 36~48시간 동안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X-레이 검사 결과 골파괴가 진행 중이거나, 뼈에 고름이 고여 있을 땐 수술이 필요하다.
수술은 골막을 절개하고 뼈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은 뒤 관을 연결해 뼈에 고인 고름과 농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만성골수염은 급성 혈행성 골수염과 달리 주로 골절 등 외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부러진 뼈의 일부가 외부에 노출되는 개방성 골절은 세균이 상처를 통해 골절 부위에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기 쉽다.
심할 경우 뼈와 골수가 파괴되고 고름이 나오는 ‘외상 후 만성골수염’으로 악화될 수 있다. 개방성골절이 아니더라도 수술 후 감염으로 만성골수염이 발병하기도 한다. 만성골수염은 부종, 통증 등이 나타나고 작은 상처에서 소량의 고름이 지속적으로 배출된다. 아무 증상 없이 고름만 나오기도 한다.
소독한 뒤 항생제를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고름이 멈추고 상처도 나아 심각성을 인식하기 어렵다. 오종건 교수는 “골수염 증상은 뼈 속 세균이 골수를 광범위하게 파괴하고 이후 단단한 뼈를 뚫어 근육과 피부를 괴사시킨 뒤 밖으로 고름을 배출시키는 것”이라며 “소량의 고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골수염 진행 가능성을 꼭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는 골수염 발병 위험이 높고 치료효과가 좋지 않다. 골수염 발병 부위와 인접한 관절의 관절염, 운동장애 등 후유증도 남을 수 있다. 감염이 심하거나 혈액공급 장애가 지속되면 죽은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팔·다리를 절단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 노약자는 감염이 전신으로 확산될 경우 패혈증으로 인해 쇼크나 사망할 수 있다.
오종건 교수는 “많은 골절 환자가 ‘뼈만 붙으면 되지’라는 생각에 방치해 병을 키우거나, 골수염을 불치병으로 오인해 치료를 포기한다”며 “치료가 어렵고 재발이 잦은 질병인 것은 맞지만 적극 치료하면 완치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만성골수염 치료는 원인 세균을 모두 죽이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균에 의해 파괴되고 죽은 괴사 조직, 뼈, 주변 연부조직을 수술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이처럼 괴사된 조직을 말끔하게 제거하는 것을 변연절제술이라고 한다.
수술 후 남아있는 균은 항생제를 처방해 사멸시킨다. 균을 제거한 뒤엔 괴사 조직을 제거할 때 결손된 뼈와 주변 연부조직을 환자의 다른 부위 피부나 대체진피를 이식하는 피판술, 뼈이식, 골이동술 등을 통해 재건해준다.
오종건 교수는 “만성골수염은 괴사 조직 제거, 균 사멸, 결손 부위 재건 등 세 가지 원칙만 잘 지키면 상당 부분 치료할 수 있다”며 “단 완치돼도 10년 이후까지 재발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추적관찰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