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대생이 상담을 청해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남자가 있는데 키도 작고 자기 스타일이 아니어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며 자신에게 몇 번 들이댔지만 모른 체 했다고 했다. 그래도 술 취하면 데리러 오고, 친구랑 싸우면 자기 편 들어주고, 군말 없이 쇼핑도 따라다니고 잘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사귈 정도로 좋은 건 아닌 게 결정적 한 방이 없기 때문이란다. 물론 그 남자가 자기를 여자로 보는 것은 알고 사귀고 싶지는 않지만 자기에 대한 애정을 문득문득 느끼게 해줘 고맙다고는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연락도 잘 안하고 만나자 해도 튕기기에 카톡으로 “너 여자 생겼냐?”고 물으니 “고민 중”이라고 답변이 왔단다. 괜히 가슴이 철렁하고 심통이 나서 “여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사귀냐? 너 생각보다 가볍구나?” 했더니 “난 내 여자에게만 올인하는 스타일이야”라고 답변이 왔다고 했다.
자신도 이러는 스스로가 웃기다는거 아는데 속된 말로 내가 갖긴 싫은데 남주기는 아깝다고 했다. 여자들에게 자상하고 유머 감각도 있어 인기가 있을 줄은 알았는데 한 후배가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주며 고백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니 후배 여자애가 자기 스타일로 바꿔 놓기도 했고.
그런데 마음이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자기 마음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건지 갑자기 경쟁자가 나타나서 이러는 건지. 아마도 후배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예전처럼 곁에 두기만 했을 것 같은데 그 남자 옆에 다른 여자가 있는 건 싫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그 남자를 마음에 들여놓은 건지 어쩌면 좋겠냐고 하소연했다.
상담 내용을 듣다보니 이 여대생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우락부락하고 무식한 근육질이 아닌, 섬세한 근육으로 뒤덮인 섹시하고 날렵한 몸매에 자기 일도 성실히 해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상대에게는 관심 없는 척 약간 나쁜 남자 스타일이지만 실상은 속 깊고 상대를 너무 사랑해 기념일에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이벤트로 뻑 가게 하는 남자인건지?
그렇다면 상담을 청한 여대생의 인생도 뻑 갈 확률이 높다. 현실에 이런 남자는 거의 없고 만난다 해도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아 질투 때문에 피곤해져 불행해질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내게 너무 잘난 당신’은 남자든 여자든 불행의 시작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남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낌이 오는 남자를 찾는다면 더 어렵다. 감성적 만족은 중요한 것이지만 구체적이지 못하면 세상에서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기준이기 때문이다. 감성적 만족은 결과물이어야지 그것이 선택의 기준이 되면 인생이 어려워진다.
일단 어떻게든 그 남자를 유혹해 사귀는 것이 좋다. 사귀다 아니면 그때 헤어져도 된다. 얘기를 들어보면 큰 장점이 있는 친구다. 부부갈등으로 내원하는 여성들의 90%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화 때문에 찾아온다. 여성은 남성보다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지 않는 스트레스에 훨씬 취약하다. 애완견의 가장 큰 특징은 짜증내고 뭐라 해도 결국은 꼬리를 흔들고 재롱 떨며 ‘닌 너밖에 없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감능력이라는 측면에서 그 남자는 최상급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유전적으로 잘 공감하지 못한다. 여성스럽고 연애경험 없는 된통 당하는 경우는 남성적 매력에 환상을 갖고 마초 같은 거친 남자랑 결혼한 경우다. 멋지고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가 알고 보니 자기 멋대로인 고집불통에 공감능력 제로인 수컷인 것이다.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낼 수밖에 없다.
‘찬구처럼 지내요. 술 취하면 데리러 와요. 군말 없이 함께 쇼핑 다녀요’라면 애완견으로서의 기본적인 펀더멘털은 충실한 친구다. 크게 싫은 게 아니라면 무조건 결혼대상자 리스트에 넣어야 한다. 그 남자는 상대를 이성으로 느끼고 있고 내 여자에게만 올인하는 스타일이라니 그 또한 좋다. 두 가지 요소만 더 갖추고 있다면 완벽하다.
어찌됐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가정을 꾸려갈 능력과 침대 위에서 성적인 교감을 나눌 능력만 있다면 최상급 남편감이다. 한 방이 있는 남자는 피곤하다. 쾌감의 한 방도 날릴 수 있겠지만 당신 뒤통수에 한 방을 날릴 수도 있다.
그 남자가 아직 ‘생각 중’이라니 결정은 하지 않은 것 같고 상대에게 할 만큼 했으나 요지부동이니 차선을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상담 내용을 들어보니 남자경험도 썩 많지 않고 공주병 비슷한 증상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수동적인 관계미학으로는 요즘처럼 치열한 연애 경쟁시장에서 제대로 된 남자를 낚아채는 것이 쉽지 않다.
그냥 공격적으로 나가는 게 좋다. 나 너랑 사귀고 싶다고. 알고 봤더니 너에게 이성적 호감이 있었고 지금 그 여자보다 내가 더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라. 팜파탈적 테크닉을 지금 갑자기 배우는 건 불가능하고 어설픈 트릭을 쓰느니 정면 돌파하는 게 낫다. 세게 지른 후 반응을 보면 아마도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뛸 듯이 기뻐하며 제안을 받아들여 사랑의 종이 된다. 그 남자가 나를 정말 사랑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
둘째, 당신을 선택해 연애를 하지만 결혼까진 가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애라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뿐더러 인생에 하등 도움되지 않는 미련이라는 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셋째, 나를 차고 그 여자에게 간다. 아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진짜 사랑할 기회를 놓친 거라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와도 결코 그를 받아주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