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외모 못잖게 개인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요소다. 지나치게 가늘고 하이톤인 목소리는 가벼운 이미지를 줄 수 있고 듣는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는 원인이 된다. 반대로 중저음의 목소리는 남성에겐 선호도가 높지만 여성에겐 매력이 반감되는 ‘콤플렉스’가 되기 십상이다.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가장 고치고 싶어 하는 발성습관은 콧소리(비음)다. 콧소리, 코맹맹이 소리 등으로 불리는 비음은 성대에서 만들어진 목소리가 성대 윗부분에서 코를 향해 빠져나갈 때 생긴다. 성대에서 만들어진 목소리는 성대 윗부분을 통과한 뒤 90도로 꺾이면서 혀와 입천장을 지나 상대방의 귀로 전달된다. 이 때 입이 아닌 코로 나가는 목소리의 비율이 높을수록 콧소리가 심해진다.
콧소리가 많이 섞일수록 발음이 부정확해져 의사 전달력이 떨어지고, 진중함을 주기 어려우며, 심할 경우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다. 여성이라면 ‘여우 같다’며 근거 없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비음을 애교 섞인 목소리쯤으로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목소리 변형을 유발하는 성대결절 같은 발성기관 문제를 알리는 신호일 수 있어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또한 요즈음 연말연시 술만 마시면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귀여운 척한다고 핀잔을 주지는 말자. 술버릇이 아니라 ‘혈관 운동성 비염’의 증상일 수 있다.
왜 코맹맹이 소리가 날까? 우선 상대적으로 콧속이 좁은 게 원인일 수 있다. 알코올은 콧속의 혈관을 확장해 점막을 붓게 만든다. 콧속이 좁은 상태에서 점막이 부으면 공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된다. 목소리는 목에서 발성을 통해 난 소리가 얼굴 전체를 울려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이므로 콧속 공간이 좁아지면 목소리가 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는 비염을 앓기 때문일 수 있다. 흔히 비염은 꽃가루나 먼지 같은 물질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비염은 이런 알레르기성 비염과 비(非)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다
휘어진 코가 콧소리의 원인이라며 목소리 교정을 위해 비중격만곡증수술(비중격성형술)을 받는 환자도 종종 있다. 하지만 코 내부가 아닌 연구개 문제이거나 잘못된 발성습관이 원인이라면 비중격성형술을 받아도 눈에 띄는 효과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과도한 콧소리는 음성장애의 한 종류인 공명장애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음성장애는 크게 발성장애와 공명장애로 나뉜다. 발성장애는 과도한 목 사용과 성대의 염증·종양으로 성대가 손상돼, 공명장애는 비강의 공명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어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병리 상태다.
콧소리는 크게 개방성 비음(rhinolalia aperta), 폐쇄성 비음(rhinolalia clausa), 습관성 비음으로 나뉜다. 개방성 비음은 입천장 뒤쪽의 연한 부분인 연구개가 완전히 닫히지 않는 연구개장애, 입천장이 갈라진 구개열 등으로 발생한다. 구개열은 거의 대부분 산모의 비타민 섭취 부족, 유전 등 선천적 요인에 의한 기형이 원인이다. 연구개장애도 구개열처럼 일부 선천성으로 나타나지만 대부분 연구개 일부를 절제하는 코골이수술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폐쇄성 비음은 코 안쪽 염증이나 종양, 코 휘어짐, 축농증 등으로 비강이나 비인두가 좁아져 발생한다. 성장기 아이는 편도 또는 아데노이드비대증의 비율이 높고 성인은 비염, 비인두암, 만성축농증, 비중격만곡증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오경호 고려대 안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개방성 비음은 비강과 비인두로 들어가는 공기가 너무 많아서, 폐쇄성 비음은 너무 적어서 발생한다”며 “개방성 비음은 상대적으로 낭랑한 콧소리가 나고 비음인 ㅁ·ㄴ·ㅇ 받침이 강하게 발음돼 ‘과다비성’으로 불리는 반면 폐쇄성 비음은 코가 막힌 듯 답답한 코맹맹이 소리가 나고 ㅁ·ㄴ·ㅇ 발음이 각각 ㅂ·ㄷ·ㄱ으로 대체돼 ‘과소비성’으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습관성 비음은 잘못된 발성 습관으로 인해 나타난다. 말할 때 습관적으로 혀 뒷부분인 혀뿌리가 위로 올라가거나, 턱을 위로 들거나,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코 쪽으로 나가면 비음이 섞일 수 있다. 평소 목소리에 콧소리가 많이 섞이는지 확인하려면 엄지와 검지로 코를 막은 뒤 ‘파도타기’를 발음해 보면 된다. 이들 단어는 두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지거나, 혀가 잇몸 또는 입천장에 닿으면서 소리나는 파열음이라 비음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발음할 때 코가 거의 울리지 않아야 한다. 만약 코가 계속 울린다면 평소 말할 때 콧소리가 많이 섞이는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과도한 비음을 교정하려면 녹음한 목소리를 통해 공기누수 등 발성기관의 이상을 확인하는 음성분석검사, 특정 발음을 반복해 읽어 코로 소리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체크하는 비음도검사를 통해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한다.
개방성 비음이면서 구개열이 원인일 땐 갈라진 입천장을 봉합하는 입천장성형술, 연구개 문제라면 인두 점막과 근육을 일부 절제해 입천장 뒤쪽 목젖 부위에 연결함으로써 비강 통로를 좁게 만드는 인두피판술을 고려해볼 수 있다.
폐쇄성 비음이면서 콧구멍을 둘로 나누는 벽인 비중격이 휘어진 비중격만곡증이 있다면 비중격성형술이 필요하다. 이 수술은 휘어진 코 연골을 일부 절제하거나 곧게 펴 코막힘, 후비루(콧물이 코 뒤로 넘어가는 증상), 수면무호흡 등을 개선한다.
단 이 수술의 비음 교정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오 교수는 “실제 임상에서 콧소리의 원인이 비중격만곡증 같은 폐쇄성 비음으로만 한정된 환자는 드물고, 발성기관의 구조적 문제 외에 잘못된 발성 습관이 동반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술의 콧소리 교정효과는 미미한 편”이라며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의 코막힘, 수면무호흡, 후각장애 등이 없다면 굳이 수술을 고집하기보다 발성 습관을 바로잡는 음성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콧소리를 줄이고 의사 전달력을 높이려면 기본적으로 목 안쪽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느낌으로 말해야 한다. 턱을 들지 않고 목 쪽으로 약간 당긴 상태에서 성대에 힘을 줘 말하는 게 핵심이다. 복식호흡을 통해 많은 양의 공기를 끌어올린 뒤 성대가 크고 느리게 진동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도 목소리를 좋게 만드는 한 방법이다.
집에서 쉽게 발성훈련을 하려면 먼저 목에 힘을 빼고 가슴에 공기를 가득 머금은 상태에서 한숨을 크게 내쉬듯 ‘하’ 소리를 내면서 공기를 내보낸다. 몇 차례 반복 후 가볍게 성대에 진동을 주는 느낌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하’ 하는 한숨을 ‘아’ 소리로 바꾸어 낸다. 성대의 진동을 느끼면서 점차 배에 힘을 줘 소리를 키워나가는 훈련을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면 잘못된 발성습관이나 결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평소 말할 때 들리는 나의 목소리는 얼굴 안에서 진동하는 소리와 귀에 들리는 소리가 합쳐진 것이다. 즉 실제 다른 사람이 듣는 내 목소리는 녹음된 것과 가장 유사하다.
갑자기 목소리가 쉬고 힘이 빠진다면 성대결절 같은 성대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성대결절은 성대 점막에 양성종양이 생기는 질환으로 전에는 없던 애성(쉰 목소리)이 주로 나타난다. 대부분 2~3일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따뜻한 수건으로 목을 감싼 뒤 소염제나 스테로이드제 등을 처방하면 괜찮아진다.
평소 담배를 피고 쉰목소리가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정밀진단을 받아 후두암 여부를 체크해보는 게 좋다. 후두암은 공기가 통과하는 기관 입구 부분인 후두에 생기는 악성종양으로 매끄럽고 부드러운 성대 표면이 거칠고 단단해져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갈수록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호흡곤란이 동반될 수 있다. 후두암치료는 내시경 레이저수술, 성대절제술, 방사선치료 등을 적절히 병행한다.
빨리 발견할수록 레이저를 사용해 상처 없이 암을 제거할 수 있고 완치율이 90%로 높아 조기진단이 중요하다. 치료가 늦으면 음식 섭취 및 발성에 지장이 생겨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완치율도 40% 이하로 급감해 흡연자나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은 정기적으로 후두내시경검사를 받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