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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영암의 얼굴 ‘구림마을’ … 토반들이 정착한 한옥, 정자 즐비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11-28 16:04:24
  • 수정 2021-11-28 17: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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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인박사와 도선국사가 태어난 곳 … 주지봉과 군서천이 감싸는 ‘배산임수’ 길지

월출산의 서쪽 자락에는 형성된 지 2200년이 넘는 영암군 군서면 구림(鳩林)마을이 있다. 12개의 자연부락이 모여 있는 구림마을은 일본에 유학과 백제문화를 전파한 백제시대 왕인박사와 통일신라시대 4대 고승으로 풍수지리와 도교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태어난 곳이다.  


처음 구림마을을 방문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직도 이런 마을이 있네!’하고 놀랄 만큼 한국의 전통마을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보수나 재정비를 통해 마을을 꾸몄겠으나 마을에 상점이나 식당이나 카페 등이 전혀 없을 정도로 상업화를 지양하고 옛 모습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구림교를 건너 마을(동구림리)로 들어서면 구림초등학교가 나오고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을 보호하듯 떠하니 버티고 서 있다. 주지봉에서 발원한 군서천을 따라 고택들과 돌담들이 이어지고 솔숲 우거진 곳에 정자와 누각이 서 있는 풍광은 시간을 거슬러 은밀한 시간 여행을 떠나온 것만 같다. 


구림마을은 앞쪽(동남쪽)으로는 시원한 월출산 문필봉이 서 있고 그 뒤쪽으로 주지봉(490.7m)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마을 안쪽으로는 군서천이 태극 문양을 그리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월출산의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기운이 마을 전체에 감도는 듯하다. 도선국사와 왕인박사가 태어났으니 명당임은 이미 증명이 된 셈이다. 구림교를 건너면 바로 마을 이름 ‘구림’과 관련된 설화에 등장하는 바위 ‘국사암’(國師巖)과 국암사(國巖祠)가 서구림리 서호정마을에 있다. 국암사는 최지몽 등 낭주최씨 조상 4위를 모신 사당으로 1972년에 지어졌다. 사당 앞 건물에 서책이 보관돼 국암서원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조정에서 편액을 받은 정식 서원은 아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출신 낭주(朗州, 지금의 영암) 최씨의 정원에 열린 외(오이)가 십자나 넘게 자랐다. 모두 기이하게 여기던 차에 최씨 딸이 몰래 그 외를 따먹었다. 그러자 임신이 돼 아들을 낳았다. 최 씨는 이 아이를 집에서 떨어진 대숲 바위 아래에 갖다 버렸다. 2주 후 쯤 딸이 가서 보니 수리와 비둘기가 아이를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최 씨는 다시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 아이는 자라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는데 이름을 도선이라 했다. 그는 당나라에 들어가 밀교 승려인 일행(一行)선사로부터 지리법을 배워 돌아와 산을 답사하고 물을 보는데 신명스러움이 많았다. 후에 그곳을 구림(구림의 鳩는 비둘기를 의미) 또는 비취(飛鷲, 鷲는 독수리를 말함)라 했다.


도선국사의 탄생 설화가 깃든 국사암(앞쪽)과 그 뒤의 국암사. 변영숙 제공

도선국사의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국사암’이다. 그 이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국사암을 갈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수많은 여인들이 이 바위돌을 갈아 마셨다고 한다. 국사암 표면에 곰보자국처럼 패인 수많은 구멍들이 모두 돌을 갈아먹기 위해 파낸 흔적이라고 한다.


국사암을 기점으로 동쪽 마을은 동계(東溪, 동구림리, 학암마을도 크게 보면 동계), 서쪽은 서호정(西胡亭. 서구림리), 남쪽 산 밑은 고산(高山, 동구림리), 북쪽은 북송정(北松亭, 서구림리, 남송정으로 북송정의 남쪽이며 서구림리)으로 부른다. 지금도 구림마을에서는 비둘기를 상서롭게 여겨 군서천 위 남송정교 난간에 마을의 비호물로 비둘기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18세기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따르면 구림마을의 열다섯 동네는 쌍취정(雙翠亭), 북송정(北松亭), 남송정(南松亭), 상서호정(上西湖亭), 하서호정(下西湖亭), 학암(鶴岩), 죽정(竹亭), 구림(鳩林), 국사암(國師岩), 동송정(東松亭), 취정(翠亭), 동정자(東亭子), 남정자(南亭子), 동계리(東溪里), 고산리(高山里) 등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영암군 서종면(西終面)의 고산리(高山里)·동계리(東溪里)·학암리(鶴岩里)·쌍와리(雙蛙里)·신근정리(新根亭里)를 병합하여 동구림리를, 율정리(栗亭里)·서호정리(西湖亭里)·남송정리(南松亭里)·북송정리(北松亭里)·국사암리(國師岩里)와 서시면(西始面)의 신흥리(新興里)를 병합해 서구림리를 개설했다. 서종면은 대부분 군서면으로 통합됐고 일부는 영암읍으로 흡수돼 소멸됐다. 

 

참고로 영암의 남서단인 삼호읍은 대불산업단지가 조성돼 현대삼호중공업 본사가 있고,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이 들어서 한 때 포뮬러원 그랑프리가 개최됐다. 과거 삼호면이 삼호읍으로 승격돼 영암군에는 영암읍과 삼호읍 등 2개의 읍이 있다. 시종면, 서호면, 미암면은 간척지가 많고 지대가 낮고 평평해 평야지대로 활용되는 면적이 많다. 삼호읍과 해남군 산이면 사이의 영암호, 영암 삼호방조제 앞바다, 영산강 하구둑인 삼호읍과 목포시 사이의 바다에서는 8~11월에 은빛갈치를 쉽게 잡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여름에는 개체수가 많다가 가을에 접어들면서 줄어들고 대신 씨알이 굵어진다. 


구림마을에는 ‘대동계’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구림대동계는 마을의 질서를 지키고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마을공동체이다. 1565년(조선 명종 20)에 이 마을의 유학자인 함양 박씨 박규정(朴奎精 1498~1580)과 선산 임씨 임호(林浩 1522~1592) 등이 처음 조직했으며 구림동계 혹은 서호동계라고 부른다. 


구림마을 대동계가 모임을 가졌던 회사정. 변영숙 제공

계원 명단, 계원들의 규칙과 합의 사항을 정리한 문서들이 전해오며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과거 대동계에 가입하려면 ‘구림리에서 사방 20리 안에 살면서 가문과 학식을 두루 갖추고 품행이 단정한 토반으로 한학을 공부한 유림’이어야만 했다. 대동계는 정기적으로 열리기도 했지만 사안에 따라 임시로 열리기도 했다. 의사 결정은 과반수 찬성으로 정했으며 바둑알을 자루에 넣는 방식으로 의사 표시를 하게 했다. 마을 안쪽 솔숲에 대동계의 집회 장소였던 ‘회사정’(會社亭)이 서구림리에 남아 있다. 국가 대소사를 논의하고 내빈을 영접하는 장소로도 활용된 대동계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구림마을 조종수 가옥. 변영숙 제공

구림마을 죽정서원

구림마을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아름다운 고택과 정자, 누각,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곳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부농의 가옥 형태를 보여주는 창녕 조씨 문중 종가 저택인 ‘조종수가옥’, 함양 박씨의 입향조인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 1418~1487)이 지은 간죽정(間竹亭)과 박성건 등 5위를 배향한 죽정사(竹亭祠)와 박성건이 후학을 가르치던 죽정서원(竹亭書院) 등이 서구림리에 있다.


구림마을 죽림정의 고적한 가을 풍경. 변영숙 제공

함양박씨 박흡(朴洽 ?~1593) 등 6형제(6장군)가 자란 ‘육우당(六友堂)’, 죽림(竹林) 현징(玄徵 1629~1702)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해서 지은 정자로 유배온 영의정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이름을 지어 준 ‘죽림정’(竹林亭) 등도 인근 서구림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박흡은 임진왜란때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1537~1593) 장군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싸움 등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운 충절의 장군이다. 죽림정 현판은 송시열의 글씨다. 현재는 많은 고택들이 한옥민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왕인박사, 상대포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다


왕인(王仁)은 백제 근초고왕 때 학자로 논어 등 경전을 공부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과 한자를 전했으며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태자(菟道稚郞子)의 스승을 지내기도 했다. 


구림마을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문필봉 북동쪽 기슭에는 대규모 왕인 박사 유적지가 조성돼 있다. 왕인이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동구림리 성기동 집터와 그가 마셨다고 전해오는 성천(聖泉)이 있다.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이밖에 왕인의 사당과 전시관이 조성돼 있으며 매년 4월이면 왕인박사 유적지에서 ‘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왕인석상은 월출산 문필봉 북쪽 자락 양사재와 가까운, 박사가 책을 쌓아놓고 공부했다는 자연동굴인 책굴(冊屈)의 옆에 세워져 있다. 양사재와 주지봉 기슭 문산재는 왕인이 일본으로 떠난 후 고향 후학들이 인재를 길러낸 곳으로 매년 3월 3일 추모제를 지냈다고 한다. 


서구림리 상대마을 서쪽 옛 상대포(上臺浦) 지역에는 상대포역사공원이 조성돼 있다. 상대포는 고대 서남권 지방의 국제무역항으로 중국, 일본 등과의 교역 중심지였다. 밀물이 되면 깊이 2m 정도의 바다가 되어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설화에 따르면 왕인 박사가 천자문과 논어를 들고 도공, 와공, 야공, 직동 등 많은 기술자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곳이 바로 이곳 상대포이다. 왕인박사는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아스카(飛鳥) 문화를 꽃피운 비조(鼻祖)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통일신라 말 당대 최고의 학자들인 최치원, 최승우, 김가기 등이 중국 유학을 떠났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산강 간척사업으로 상대포는 사라진 지 오래고, 상대포역사공원에는 누각과 작은 연못 등이 조성돼 있다. 왕인박사가 타고 간 왕인호 모형물만 옛 기억을 찾아보려 애쓰고 있다.


40년간 모은 1만점 미술품 중 3600점 전시한 하정웅미술관 


하정웅미술관과 영암도기박물관은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만큼 훌륭한 전시공간이다. 서구림리 국사암과 죽림정 사이에 위치한 하정웅미술관은 구림전통마을과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현대적 건물이지만 의외로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영암군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인 동강(東江) 하정웅(河正雄, 1939년 11월 3일생~)의 컬렉션 중 3600여 점을 작품을 기증받으면서 건립됐다. 미술관은 매년 2~3회에 걸쳐 동강 컬렉션 미술품을 공개 전시한다. 하정웅은 자신이 약 40년에 걸쳐 평생 동안 수집한 회화, 판화, 조각, 공예, 사진, 서예 등 미술품 1만여점 전부를 광주시립미술관 등 국내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등에 기증한 메세나 활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반도 최초의 유약 바른 도자기 내놓은 영암


영암읍의 영암도기박물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기를 테마로 설립된 박물관이다. 사적 제388호로 지정된 구암 가마터, 고분, 생활유적 등에서 출토된 도자 유물 등이 전시된다. 영암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 최초로 유약을 바른 시유도기(施釉陶器) 발상지이다. 시유도기 발상지인 영암 도기터에서 제작된 도기를 판매하며, 도예체험 등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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