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창업 2년 만에 사업을 접으려 하는 30대 초반의 청년이 상담을 청해왔다. 3년간 웹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하다 창업을 하면 다양한 경험도 쌓을 수 있고 돈을 못 벌어도 내 사업을 한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3명의 팀원을 데리고 창업을 했다. 그러나 유능한 직장인으로 대접받던 갑의 위치에서 직원을 다독거려야 하는 을(사업주)의 입장이 되니 갑(직원)의 무모한 요구와 횡포에 긴장의 연속인 생활이 이어지고 직원 중 한 사람이 퇴사하고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이후 남은 직원들도 술렁댄다고 했다.
갑(창업 전)으로 일할 때 확보한 인맥이 을(창업 후)이 되었을 때 도움될 거라 착각한 게 후회스럽고 주변에서는 이제라도 다시 취직해 편히 살라고 하는 데 최근 한 회사에서 입사 제안을 받고는 고민 중이라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취업이 힘든 시대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이러다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며 계속 사업을 해야 하는지, 취업해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그냥 쉬어야 하는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어쩌면 좋겠냐고 토로했다.
60세에 대기업 자회사 CEO로 재직하다 퇴임한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 있다. “월급쟁이로 이 정도 해먹었으면 성공한 거지만 조그만 회사라도 자기 것을 안정되게 하는 친구보다는 못한 거지요”
100% 동감되는 얘기다. 갑과 을은 비즈니스 용어인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진정한 심리관계를 나타내는 말인 것 같다. 비즈니스적으로는 계약 당사자와 용역 제공자를 구분하거나 돈의 흐름을 나타내는 건조한 용어인데 ‘화(anger)’의 흐름이나 심리적 에너지의 흐름을 상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갑과 을의 포지션은 수시로 변한다. 조직에서는 성과와 상관없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갑과 을이 정해질 때가 많다. 회사원,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일수록 울화병이 많다. 그런 걸 생각하면 자기 사업을 하는 게 정답인데 개인사업도 절대 만만한 게 아니다.
상담을 청했던 청년의 경우 아직 젊고 재취업도 가능하니 매우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감성적으로 너무 지친 나머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픈 심리적 회피 반응이 일어난 것 같아 걱정스럽다. 심리적 회피 반응은 쉰다고 좋아지지 않으며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놀지 말고 일단 회사에 취직해 월급 받으면서 쉬는 것도 좋다. 뇌의 휴식은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아니라 뇌에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이다. 갑일 수 있다면 갑을 즐기면 된다. 포악한 갑(사주)이 아니라 을(직원에게 밀리는 사업주)의 입장에 서보았으니 을(직원)을 이해해 주는 따뜻한 갑(사업주)이 되는 것이다. 대기업 계열사를 맡는 족족 성공시킨 유명 CEO가 이야기한 갑을론이 있다. “을일 때는 을의 상황을 즐기면 되고, 갑일 때는 갑의 위치에서 즐기면 된다. 어짜피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세상에 을의 포지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갑을 선호도에 따라 자기 사업을 할 것이냐 직장인을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다분히 감성적인 결정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총수라 해서 을의 한이 없을까? 어쩌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면밀히 분석해보면 상담을 청한 청년의 경우 비즈니스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업가들과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사업을 성공하려면 두 가지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
첫째, ‘돈에 대한 욕심’이다. 설사 돈을 못 벌더라도 내 사업을 한다는 기쁨에 창업한다면 100% 망한다. 사업은 기쁜 일이 아니며 엄청난 자기희생과 노력이 99%다.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돈을 엄청 좋아하고 바쁘게 뛰어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간쓸개를 다 내주어도 상관이 없어야 한다. 을이 아니라 을의 할아버지라도 돈을 위해서라면 기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티는 안 내도 자신의 자존심을 해쳐 감성시스템이 망가질 정도로 돈에 대한 욕망이 엄청나게 강하다. 거의 중독 수준의 갈망이다. 상담을 청했던 청년의 경우처럼 독립심, 자기 사업을 하겠다는 아름다운 심리적 목표로 창업을 하면 거의 100% 망한다. 목표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그 목표는 이룰 수 없고 결국 사업을 지탱할 동기 에너지가 사라져 사업은 멈출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집중도’다. 모든 상업은 결국 휴먼 비즈니스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그 사람들을 집요하게 관리하는 집중력과 끈기가 필수다. 하지만 에너지가 자신에게 쏠리는 사람, 나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경영자로서 한계가 있다. 경영자는 단 둘이 하는 구멍가게라도 사람 관리에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사람 관리의 목적은 우정을 위해서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한 휴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결국 돈을 버는 데 장애가 되는 사람을 잘 쳐내야 한다.
퇴직하겠다는 직원도 사업주 청년처럼 사람 좋은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돈에 미친 독한 파트너를 구했어야 했다. 양쪽 모두 심리적 독립감을 위한, 폼과 품격을 위한 창업을 하고 그에 응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야 하는가? 먹고 살아야 하는데 창업 외에 방법이 없을 때 창업하면 된다. 최고로 거룩한 창업 동기다. 이 정도 동기라면 갑의 압박과 을의 더러운 기분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그 전까지는 회사에 취직해 전문직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길게 보고 창업을 준비하면 된다.
내부적, 외부적 네트워크를 잘 다져놓고 창업의 핵심인 비즈니스 모델을 미리 준비한 후 창업해서 독하게 일하면 된다. 세상은 특별히 뛰어난 사람들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들의 리그다. 그렇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