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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은 이제 그만 하세요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등록 2021-11-19 15:45:31
  • 수정 2021-11-19 15: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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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들 땐 힘들다고 과감히 말하라…가면 쓴 만남은 관계적 허무만 존재

20대 직장여성이 진료실을 찾아와 상담을 했다. 첫 마디가 세상에서 거절당하는 게 가장 두렵다는 거였다. 타 부서 사람에게 업무요청을 하고 피드백이 오면 그 답변을 열어보는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해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다 퇴근 직전 열어본다고 했다. 이유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오면 상심이 커서 아무 일도 못하기 때문이란다.


보고서 올릴 때도 상사의 눈치를 엄청 보고 회의라도 하면 거의 초죽음 상태라고도 했다. 일을 잘해 칭찬을 들어도 딱 1초만 행복하고 다시 자신을 검열의 무대에 올려놓는가 하면 타 부서 직원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소문에 ‘그 사람과 잘해봐야지’가 아니라 ‘이런 소문이 내게 미치는 영향’만 생각하고 그 사람과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도 했다.


이처럼 자신은 매사 부정적인데 남들은 겉보기에 밝고 낙천적이며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며 ‘박하사탕녀’라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가 좋은 것이니 깨뜨리고 싶지는 않아 더 웃고 더 큰소리로 인사하지만 타인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는 게 너무 힘들고 한편으로는 이런 미련 곰탱이 같은 짓 그만두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겠냐고 하소연했다.   


멘솔 담배는 박하향이 나는 담배다. 멘톨은 박하향이 나는 물질을 가리킨다. 멘솔 담배는 젊은 층과 여성들이 많이 피운다. 독한 담배 대신 상쾌한 박하향이 나는 순한 담배이고 왠지 몸에 덜 해로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순한 맛의 박하향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더 끊기 어렵고 건강에 나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멘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일반 담배 흡연자보다 니코틴에 대한 중독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멘솔 담배의 박하향 때문에 더 깊이 담배를 빨아들여 폐 속에 담배연기를 더 오래 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담배 한 개비당 니코틴 흡입량이 일반 담배보다 더 많기 때문에 중독성과 의존성이 강해진다. 박하향 연기를 빨아들일 때 일시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그 효과가 순한 맛의 멘솔 담배를 더 독한 중독성 약물로 만드는 셈이다.


상담을 한 여성의 심리반응은 멘솔 담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박하향 페르소나가 세상을 중독적으로 만들고 있다. 중독의 핵심은 자극에 대한 내성, 즉 저항이다. 같은 자극에 무디어지는 멘톨향 같은 밝고 낙천적인 페르소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 깔린 거절 공포를 깊이 관찰하지 못하도록 내성을 키우고 있다. 본인 스스로 세상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본인 내면의 자아는 거절 공포로 가득 차 있는데 외적 가면, 페르소나는 박하의 상큼함으로 상대방의 깊은 관찰을 통한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매우 발달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터넷을 넘어 SNS까지 자신의 이야기와 주변의 이야기를 사진까지 곁들여 주변 사람에게 퍼트린다. 깊은 정보가 서로 매우 빠르고 충분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반면 한편에서는 공감 부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극단의 행동학적 증상인 ‘자살시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인이 자살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친구가 절대 자살할 이유가 없다. 전날도 만났지만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깊은 관찰이 없었기에 그 친구의 속내 깊은 아픔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영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카메라를 싫어한다고 한다. 진정한 관찰은 연필을 들고 그릴 때 더 분명히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관찰은 곧 공감이고 위로다. 모이기만 하고 서로 사진을 찍고 문자와 SNS로 각장의 근황을 알리는 우리는 과연 서로의 진심을 얼마나 관찰하고 있을까?


아마도 위의 여성이 거절 공포에 시달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감성시스템이 예민해져서 부정적인 경향이 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감성시스템은 자신의 것이고 쉽게 튜닝되지 않는다. ‘아, 내가 예민하구나 부정적인 생각도 많고’라고 그냥 인정하는 것이 좋다. 감정을 찍어 누르거나 계속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 괴롭힐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할 일이 있다. 자신을 박하향을 뺀 일반 담배로 만들어야 한다. 박하향을 빼야 상대가 본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고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깊은 관찰이 없는 만남은 허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박하향을 주는 본인만 허무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진정한 감정적 소통이 없는 가면끼리의 만남은 서로에 관계적 허무를 안겨줘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거절공포를 고치려 말고 먼저 박하향을 빼야 한다. 힘들면 힘든 내색을 해야 한다. 거절공포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생겨난다. 순간의 인기보다 진한 신뢰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박하사탕이 되는 것보다는 한두 명에게라도 진한 ‘쏘맥’이 되는게 낫다.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라도 본인을 감싸줄 친구가 최소한 두 명을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본인의 박하향에 중독돼 감싸줄 수 없는 상태다. 하루 빨리 박하향을 빼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박하향에 길들여진 중독자로 가득해질 것이다. 중독자들은 본인의 거절공포를 더 크게 만들기만 한다. 


용기를 갖고 앞으로는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지 말아야 한다. 싫다고 가버리면 그러라고 하면 된다. 진정한 친구 두 명만 있으면 세상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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