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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싸워야 할 때는 기꺼이 싸워야 한다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등록 2021-11-12 14:28:18
  • 수정 2021-12-19 2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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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하게 부딪히는 게 최고의 대응전략 … 정면에서 응시하고 맞서야

얼마 전 직장 상사인 부장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하고 있는 20대 여성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뒤에서 엉덩이를 볼펜으로 치고 함께 외근 나가면 손을 잡으려 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아무개 씨는 색기가 있고 몸매가 죽이니 라인을 살리는 옷을 입어라”는 식의 발언이 계속된다고 했다.


이미 사내에서 그 부장의 성희롱은 유명하고 이로 인해 여직원 두 명이 사직을 했음에도 회사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는 걸 보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식인 것 같다면서 21세기에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난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은 예전부터 불의를 보면 피하지 않는 타입이어서 이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은데 무언가 시위를 하고 싶어도 동조자가 없고 다른 직원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뒤에서 부장의 욕만 할 뿐 액션이 없다고 했다.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하면 부장의 성희롱을 멈추게 할 수 있겠냐고 하소연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게 자신의 지위와 파워를 이용해 상대방이 가진 무언가를 남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적인 요소일 때 성희롱, 성폭력이란 말을 쓴다.


그런 비열한 사람의 특징은 역으로 파워와 협박에 약하다는 것이다. 세상 살다 보면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싸우는 일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보다 몇 배의 에너지가 든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 뇌는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창조적인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지, 파괴적인 활동에서 쾌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그대로 넘어가면 감성의 뇌에 압박이 오고 화병이 생기며 평생 울화로 고생하면서 살게 된다. 싸우는 일이 없어야겠지만 싸울 때는 확실히 싸워야 한다.


다만 싸움은 전략과 기술이다. 그리고 일반 상식과 법적 상식이 꽤 다른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마음만 앞서다가는 더 억울한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잘 싸워야 한다.


일단 법적 절차를 말하자면 우선 증거를 모아야 한다. 스마트폰 동영상과 사진, 녹음 등을 이용해 성희롱의 분명한 자료를 모으고 내용을 육하원칙에 따라 잘 기록해야 한다.


성희롱도 중독이다. 별 볼일 없는 후진 남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적 쾌감을 얻는 것이다.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릴도 느끼면서 말이다. 두 명의 여직원이 그냥 퇴사했다니 아마도 이런 경험이 부장으로 하여금 이 행동의 위험성에 대한 불감증을 키웠을 것이다. 그러니 증인이 되어줄 직원, 즉 내 편을 많이 모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몸 사리고 있는 건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니 용기를 내 일을 진행하면 반신반의하다 같은 편이 되어줄 것이다. 


자료를 모았으면 지방노동관서나 국가인권위원회에 가서 진정을 하고 상담을 받아본 뒤 의무적인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를 만날 필요가 있다. 진정 후에는 민사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한다. 이쯤 되면 대부분 합의가 들어오는데 위자료와 정신과 통원 치료비까지 다 받을 수 있다.


아울러 협박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실제로 공격을 당하면 무섭게 반격한다. 실제적인 공격에 강한 면을 보이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에너지가 뿜어 나온다. 반면 협박에는 약하다. 우리 감성 시스템은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잇다는 걱정과 불안에 매우 취약하다.


성희롱에 대한 부장의 안전장치도 협박이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불평등 인사를 하겠다는 암묵적인 협박이 깔려 있는 것이다. 협박에 대응하는 최고의 솔루션 또한 협박이다. 역(逆) 협박인 셈이다. 성추행범처럼 약자에게 강한 사람은 스스로 협박에 몰리면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일대일 말고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라. 다시 성희롱적인 발언과 행동을 한다면 국가기관에 정식으로 진정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물론 이것은 만에 하나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결단이 필요한 행동이다. 부장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기회를 줄 필요조차 못 느낄 만큼 혐오감이 크다면 당장 법적 절차를 밟도록 하면 된다. 


싸움꾼으로 살 필요는 없지만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정말 악한 사람들도 있다. 악인이라고 겁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겁이 더 많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강하게 맞서야 한다. 


성희롱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걱정과 염려, 협박이든 최고의 대응전략은 강하게 부딪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좀 먹게 하는 것은 실제 전투가 아니라 일어날지 모르는 불이익에 대한 불안과 염려다. 이 심리 싸움에서 지면 불안과 공포가 평생 내 뒤통수를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따라서 정면에서 응시하고 맞서야 한다. 그러면 의외로 그 불안과 공포가 쉽게 사라진다. 


가끔은 독하게 살 필요도 있다. 내 감성을 위해서다. 거친 승리자로 사는 것이 착한 희생양으로 사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이득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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