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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명산 많은 산부자 동네, 만산홍엽이 아름다운 홍천 가을여행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10-23 22:47:59
  • 수정 2021-10-25 20: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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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 여행지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강원도 양구, 화천, 홍천, 인제 등이 핫한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산준령과 큰 강과 호수 등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 경관과 청정한 생태환경을 자랑하는 지역들이다. 서울에서 2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어 당일치기 여행지로 인기다.


홍천은 가리산 자연휴양림과 삼봉산 자연휴양림, 팔봉산 유원지 등 자연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들이 넘쳐난다. 이밖에 미약골, 가령폭포, 공작산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가칠봉 삼봉약수 등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명산을 품고 있다.


산림청 100대 명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공작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천년 고찰 수타사(壽陀寺, 동면 덕치리)에서는 세조와 정희왕후의 족적을 살펴볼 수 있다. 왕이 직접 편찬한 단 한 권의 불교서적인 ‘월인석보’(月印釋譜, 보물 745호)도 만날 수 있다.


또 내촌면 백암산 남쪽 자락에는 강원도 내 단일 유적지로는 최다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물걸리사지’(物傑里寺址)가 있어 즐거운 답사 여행이 될 것이다.


홍천은 우리나라 나라꽃인 ‘무궁화’의 고장이자 동학농민운동 및 독립운동의 기운이 서린 고장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인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1863~1939 선생은 홍천 서면 모곡리에 터를 잡고 모곡학교를 세우고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무궁화 보급에 앞장섰다. 홍천군에 조성된 전국 최초의 무궁화 테마 수목원인 ‘홍천 무궁화수목원’ 방문은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의의를 새삼 깨닫는 여행길이 될 것이다.


바야흐로 계절은 가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이 아름다운 홍천으로 길을 나서보자.


한국 100대 명산에 공작산, 계방산, 응복산, 가리산, 팔봉산 등 5개나 이름 올려


강원도의 중서부 태백산 서쪽에 위치한 홍천군은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동서 300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서로 길게 늘어진 지형이다. 실제 남북은 39.4km에 불과한 반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는 96.1km에 달한다. 동서로 지형적 특성 등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태백산맥 서쪽 경사면에 면한 홍천의 동쪽은 계방산(1,577m), 응복산(1,360m), 가리산(1,051m) 등 해발 고도 1000m가 넘는 고산준령들이 즐비하다. 서쪽으로 오면서 산세는 점차 완만해져 팔봉산(327m)처럼 낮은 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홍천의 산들은 한국의 100대 명산에 다섯 개나 이름을 올릴 정도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가리산은 ‘강원 제1의 전망대’로 불릴 정도로 눈앞에 펼쳐지는 연봉과 소양강의 어우러짐이 절경이다.


계방산은 희귀한 식물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공작산은 아름다운 계곡과 가을 단풍, 생태숲 등으로 명성이 높다. 홍천강이 휘돌아 나가는 서쪽의 팔봉산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이밖에 홍천강의 발원지이자 깨끗한 용천수가 40리를 흐른다는 미약골,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10km 이어지는 용소계곡, 천연기념물 어름치와 열목어가 서식하는 1급 청정수가 흐르는 살둔계곡 등이 홍천 9경으로서 비경을 자랑한다. 하루에 다 방문할 수 없으니 순서를 정해야 한다.


홍천 무궁화수목원 … 민족 대변한다며 상징 꽃 핍박한 건 일본이 세계 유일 사례


홍천 무궁화수목원 내 억새원의 가을. 변영숙

홍천군 북방면 능평리에는 국내 최초로 무궁화를 테마로 조성된 ‘홍천 무궁화수목원’이 있다. 총 6.7ha 규모의 부지에 조성된 수목원에는 무궁화품종원을 비롯해 억새원, 장미원, 향기원, 단풍나무과원, 암석원, 무궁화미로원, 전나무원 등 16개의 주재원이 있다. 무궁화품종원에는 112개 품종, 총 8000여 그루의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무궁화(학명 Hibiscus syriacus)는 아욱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7~9월 사이에 핀다. 태양과 함께 꽃을 피우고 다음날에도 다시 같은 모습을 반복해 ‘태양의 꽃’으로 불린다.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과 달리 석 달 여름 내내 피고 지고를 되풀이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을 상징해왔다. 일제는 무궁화를 우리 민족과 동일시해 무궁화 묘목을 불태우고 무궁화 씨를 말리려고 했으니 우리 민족의 수난사가 곧 무궁화의 수난사였다. 전 세계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특정식물이 가혹한 수난을 겪은 일은 무궁화가 유일하다고 한다.


오늘날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으로 알려진 데에는 홍천 출신인 남궁억 선생의 영향이 지대하다. 대한제국 말의 사상가,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로서 독립협회 수석총무, 황성신문사 초대 사장 등을 역임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홍천으로 낙향한 남궁억은 1918년 모곡학교를 세우고 학생 실습지에 무궁화 묘목을 재배, 전국 각지에 보내어 무궁화 심기 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33년 ‘무궁화 사건’이 터졌다. 일제가 불온한 사상을 퍼뜨린다며 남궁억을 비롯한 교직원, 친척들까지 모두 체포하고 무궁화 묘목 8만주를 불태운 사건이다. 이 무궁화 사건 취조 중 기독교 비밀결사 십자당이 발각돼 남궁억을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1935년 병 보석으로 풀려난 남궁억은 이후 건강이 악화돼 1939년 눈을 감았다. 그가 마지막 남긴 유언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과목 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 나는 독립을 못 보고 너희는 볼 것이니.”


무궁화 사건은 무궁화가 민족의 꽃, 민중의 꽃, 나라의 꽃으로 더 확고하게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한서남궁억광장’에는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상 뒤로는 다양한 품종의 무궁화 묘목이 내년 7월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


홍천 무궁화수목원에는 중앙광장의 대형 무궁화 조형물과 무궁화 지도를 비롯해 화장실 옥상에 설치된 ‘무궁화 모자이크’, ‘동트는 홍천’과 같은 무궁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예술작품 등이 설치돼 있다.


이밖에 어린이 놀이터와 체험관, 카페 등 휴식과 체험 공간을 갖추고 있어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기에 좋다. 지난 10월 초에는 ‘숲속 도서관’이 개관해 자연과 독서를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됐다. 도서관 옥상 전망대에서 보는 파노라마 풍경과 입구에 세워진 ‘무궁화집’도 놓치지 말자. 유럽의 작은 예배당을 연상시키는 흰색 건물이 인상적인 ‘무궁화집’은 봄 가을로 코스모스와 청보리 등을 심어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새로운 포토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여백이 아름다운 폐사지, 홍천 물걸리사지


누군가 그랬다. 폐사지에는 여백이 있어 좋다고. 그리고 그 여백을 나름의 상상으로 가득 채울 수 있어 좋다고. 수백 년 혹은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 결국에는 존재를 드러내고야 마는 폐사지의 미학은 바로 여백과 기다림이 아닐까.


태백산맥의 서쪽 홍천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 절터가 남아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그 절터에 다섯 개나 되는 보물이 있다는 사실 역시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한다.


물걸리사지는 정확한 사명이 아니다. 절터에서 아무런 명문이 발견되지 않아 절 이름도 내력도 밝혀진 게 없다. 단지 통일신라시대의 홍양사 절터(洪陽寺址)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래서 절터의 이름도 마을 이름을 따서 물걸리사지라 부른다.


1967년 이곳 민가에서 발견된 금동여래입상 1구를 비롯해 1971년 발굴 조사를 통해 발견된 철불 조각, 수막새 및 암막새 기와, 토기, 조선시대 백자 조각 등으로 미뤄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지된 사찰로 보고 있다.


첩첩산중 강원도 홍천 산골에서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석조여래좌상, 석조비로자나불상 등 거대한 석조 유물들이 발견되자 당시의 놀라움과 흥분은 밀림 속에서 앙코르와트 유적을 찾아낸 것에 못지 않았다.


물걸리사지에서 발견된 3층 석탑(보물 제545호)을 비롯해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상(보물 제542호), 불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 등은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드넓은 터에 혈혈단신 3층 석탑이 서 있고 나머지 불상들은 모두 보호각 안에 보호되고 있다. 거칠고 단단한 불상에서는 온화함과 자애로움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불상들은 대부분 온전한 형상을 갖추지 못하고 마모가 심하지만 규모나 조각 수법의 화려함이 압도적이다. 3층 석탑과 불상들은 모두 9세기 중엽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


물걸리사지에 대해서는 일제 강점기에 작성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가 남아 있을 뿐이다. 역사의 흔적과 연결 고리를 발견해 역사의 퍼즐을 맞추는 것은 후대인의 일일 뿐이라는 듯 물걸리사지 유적들은 말이 없다.


삼부인 전설로 유명한 홍천 제1경 팔봉산 … 얕다고 우습게 알면 큰코 다쳐


팔봉산에서 바라본 홍천강 전경. 변영숙

홍천군 서쪽 끝 서면 홍천강가에 자리한 팔봉산은 이름 그대로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고도 327m의 나지막한 봉우리들이 잇달아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꽃봉오리처럼 곱다. 그러나 봉우리마다 암벽과 기암괴산을 품고 있어 절대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다. 홍천군을 휘감듯 흐르는 홍천강과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을 이루며 홍천 9경 중 1경으로 꼽힌다.


반짝 추위가 있었던 지난 주말 홍천 팔봉산을 찾았다. 강가에서 한 가족이 수제비 뜨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을 햇살이 강 수면 위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갈대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홍천강 풍경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강 건너편에는 봉우리의 윗부분만 똑똑 떼어낸 것 같은 야트막한 산들이 떡 버티고 서서 강기슭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잠시 후 내가 오를 팔봉산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에 나무로 만든 남근목이 시선을 끈다. 팔봉산의 음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입구를 통과하니 곧바로 오르막 오솔길이 시작된다. 길이 아닌 곳에 억지로 길을 낸 모양새다. 이제 첫발을 디뎠을 뿐인데 잡목들이 우거진 컴컴한 숲에서는 서늘하고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 으스스하다. ‘이런 것이 음기일까’ 생각하며 계속 산길을 오른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돌로 된 좁은 길을 걷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길이다.


10여 분 정도 지나 도달한 제1봉은 조금 실망스럽다. 제2, 3봉으로 갈수록 숲이 열리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동시에 봉우리도 점점 험악해진다. 거의 암벽 등반에 가깝다. 기다시피하여 겨우 제2봉에 오르니 삼부인당으로 불리는 제당이 나온다. 팔봉산에 전하는 삼부인 전설의 주인공들을 모시는 제당이다. 팔봉산에는 시어머니 이씨, 딸 김씨, 그리고 며느리 홍씨가 살고 있는데 질투심이 강해 시집가는 가마가 떨어지지가 않아 새색시들이 옷을 벗어 걸어 놓은 뒤에야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제당에서는 3월과 9월에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가 치러진다고 한다. 입구에서 본 남근목은 바로 이들 삼부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세운 것이다. 혹여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크기로 제작됐다고 한다.


3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말 그대로 암벽 타기다. 등산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는 거의 ‘초죽음’ 코스다. 바위에 박힌 징을 밟고 기다시피 올라야 한다. 바위에 박힌 디딤대와 난간에 의지에 겨우 도착한 3봉은 지금까지의 고생을 순식간에 잊게 해 준다. 굳이 왜 드론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홍천강과 주변 일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동물의 등을 연상시키는 숲이 우거진 산을 사이에 두고 한쪽으로는 홍천강이 휘돌아 나가고 또 한쪽에는 자그마한 마을이 안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금 더 멀리에는 첩첩 산에 둘러싸인 옹색하지만 황금빛 논과 들판이 펼쳐진다. 살짝 엉덩이를 틀어 앉으면 방금 차를 대고 올라온 주차장 일대가 들어온다. 팔봉산을 홍천 제1경으로 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팔봉산 4봉에 오르려면 통과해야 하는 해산굴. 변영숙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해산굴’이 있는 4봉으로 향한다. 해산굴을 생략하고 돌아서 갈 수도 있지만 4봉의 진수는 해산굴이라는 말에 시도해 보기로 한다. 해산굴은 어린아이도 빠져나가기 힘든 좁은 바위 틈을 비집고 나오는 어려움이 출산의 고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 굴을 통과하면 젊어진다고 하여 ‘장수굴’이라고도 불린다. 먼저 해산굴을 통과한 사람들이 뒤이어 굴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순산이요”하고 외쳐대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필자도 용기를 내어 해산굴을 통과했는데 굴을 빠져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잔뜩 힘이 들어간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옆에서 재밌다는 듯이 ‘순산이요’하고 외쳐댄다. 주말이면 회춘과 장수를 바라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진다고 한다.


이어지는 봉우리들도 모두 암벽이나 8봉은 특히 더 험하다. 노약자나 여성분들은 7봉에서 하산을 권고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하산하여 강가를 따라 다시 매표소로 나오면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팔봉산은 오르는 것이 힘든 만큼 보상도 확실한 산이다. 짙은 물색의 너른 홍천강이 휘어져 돌아 흐르고 그 넉넉한 물길 따라 사람들의 삶이 지속되는 가슴 뭉클한 풍광이 보고 싶다면 팔봉산을 오르라고 말하고 싶다. 단 필자 같은 등산 초보들은 기어서라도 오르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300m밖에 안 된다고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공작산 수타사 … 생태숲과 산소길의 계곡 비경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듯 공작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는 천년 고찰이 있으니 바로 홍천 수타사이다. 신라 성덕왕 7년(708)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40년간 폐허로 남아 있던 터에 조선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발발) 공잠스님이 중창했다.


수타사란 이름과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수타사 교각 아래 큰 물인 덕치천이 흘러 물이 두들긴다는 뜻으로 물 수(水)자와 떨어질 타(墮)자를 써서 수타사라 하였다. 그런데 매해 절 뒤에 있는 깊은 소에 승려들이 빠져 죽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승려가 이 모든 일은 이름 탓이라고 하자 목숨 수(壽)자와 아미타불에 쓰이는 타(陀)자를 써서 수타사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홍천 공작산 수타사와 덕지천의 가을. 변영숙

공작산에서 발원한 덕치천에 놓인 수타교를 건너 천왕문을 들어서면 사천왕상이 반긴다. 봉황문이라고도 불리는 수타사 천왕문에는 수타사 소조사천왕상(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1호)들이 있다. 수타사 소조사천왕상들은 진흙을 바닷물에 적셔 6개월 동안 숙성시키는 특별한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수타사에는 다수의 문화재가 전하는데 ‘월인석보 17, 18권’(보물 제 745-5호)과 ‘수타사 동종’(보물 제11-3호)이 대표적이다. 월인석보는 세조가 1459년(세조 5년)에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을 합해서 만든 불교서적이다. 왕이 직접 쓴 유일무이한 불교서적이자 최초의 한글 불교서적으로 한글의 변천을 알 수 있어 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월인석보는 1957년 사천왕을 수리하는 중에 지국천왕의 복장에서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수타사 동종은 1670년(현종 11년)에 승려인 사인비구(思印比丘)와 장인 태행(太行)이 공동으로 완성한 조선 중기의 종이다. 몸통 밑 부분에 연호가 적혀 있어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조기법이 독특해 범종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 중심 법당 대적광전의 닫집은 황룡, 풍령, 극락조, 악기 등으로 장식돼 보기 드물게 화려하고 장중해 눈여겨볼 만하다. 이 닫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발견됐다고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 월인석보, 후불탱화 등은 모두 수타사 보장각에 모셔져 있다.


수타사는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와도 인연이 깊은 왕실사찰이다. 수타사가 공작산 자락에 조성된 정희왕후의 태봉(胎峯)을 관리하는 원찰이 됨으로써 왕실의 보호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천왕문을 봉황문이라 부르는 것, 대적광전 지붕 위의 청기와 두 장 등은 모두 수타사와 왕실의 관계를 보여준다.


수타사는 사찰뿐만 아니라 주변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가을이면 수타사가 들어선 용담계곡은 넓은 암반과 기암절벽, 그리고 숲이 하나로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굳이 숲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계곡 초입만 들어서도 만추홍엽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공작산 수타사 용담계곡.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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