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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박증, 억누르려 할수록 더욱 심해진다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등록 2021-10-22 15:40:32
  • 수정 2021-11-01 19: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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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박으로 피곤한 당신 … 플라시보 효과를 에너지로 활용해야

얼마 전 진료실에 환자가 들어왔다. 첫 마디가 “저는 강박장애가 아주 심합니다”라는 소리였다. 들어보니 집에 귀가하면 현관문 보조키나 가스밸브, 욕실의 수도 등을 수시로 체크하고 일할 때에는 강박증이 더 심해져 혹 작업한 파일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백업과 저장을 미친 듯이 한다고 했다.


더욱이 최근엔 친구를 만나 이동하다가 열려진 친구의 가방을 보며 누군가 지갑이라도 꺼내갈 수 있을 것 같아 친구에게 가방을 잘 챙기라고 계속 주의를 줬다가 “너 강박증 장난 아니다. 가방 땜에 집중이 안 될 정도면 심각한 것 아냐?” 소리를 들었다. 또 사무실에서 물기가 있는 컵을 사용하려는 팀장님에게 병균 운운하며 말렸다가 “상태가 심각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


스스로 꼼꼼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좋지 않은 소리를 들으니 자신이 과한가 싶기도 하고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그리 안절부절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강박증상이 사회생활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단순한 상담으로 해결할 수준을 넘어 강박장애 진단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강박장애는 불안장애군에 속한다. 불안한 마음이 강박적 사고를 만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박적 행동이 뒤따르게 된다. 


불안은 감성 시스템의 영향이며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의지가 약한 사람이 걸리는 병도 아니다. 오히려 의지가 강하면 그만큼 감성 시스템을 짓눌러 압박을 주기에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강박장애는 약물치료를 기반으로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약물치료는 주로 세로토닌 시스템에 작용하는 약물을 이용하는데 우울증보다 고용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 부작용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정도가 심하지 않다.


진료를 하다 보면 소화가 안 되거나 간이 안 좋거나 관절이 나쁜 경우 등 다른 장기의 문제는 쉽게 질병으로 인정하지만 뇌가 안 좋다고 하면 순순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뇌의 주된 기능이 정신적인 것이라 무언가 정신적인,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을 신체질환과 별개인 2분법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사실은 뇌라는 신체 장기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혼자의 의지로 극복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고 결국엔 감성 시스템을 더 피곤하고 예민하게 만들어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인들은 과거 선조들에 비해 감성 시스템의 피로를 쉽게 느낀다. 스트레스가 쉴 틈 없이 계속되는 탓이다. 더욱이 현대기술을 기반으로 한 편리성과 실용성이 변화를 가속화하면서 우리 뇌는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강박적 불안감에 휩싸이게 됐으며 이런 불안은 실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전략적 사고를 하는 게 이성의 뇌라면, 그 연산 속도를 결정하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게 감성의 뇌인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물주가 세팅한 것보다 훨씬 빠른 회전수로 자신의 뇌를 혹사시켜 결국 감성의 뇌를 피로하게 만들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불안한 시그널을 만들어 내며,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때 강박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강박장애 환자의 경우 약을 복용하면 호전되는데도 스스로 노력해보겠다며 약을 끊고 고생하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 의지가 약해 생긴 병이 아님에도 감성의 갈등을 강한 의지로 억누르려니 감성 시스템이 경직되고 이로 인한 문제를 또 의지로 누르려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강박증 치료는 일종의 ‘도’라 볼 수 있다. 강박에서 멀어지고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이는 인생문제를 푸는 기존방식과 정반대여서 도라 할 수 있다. 살면서 어려움을 느끼면 계획을 잘 세워 의지력으로 돌파해야 한다 배웠지만, 강박증은 오히려 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져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도인이 아니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도를 깨우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전문가와 상담하고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를 하다 보면 약을 끊기 위해 노력하는 환자보다 “선생님이 좋은 약 주셨을 테니 평생 먹을게요”라고 하는 환자들이 더 빨리 증세가 호전되고 약도 끊게 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반면 조금이라도 약을 줄이려 애쓰는 환자들이 호전도 더디고 약을 잘 끊지도 못한다. 집착을 줄이기 위해 약을 쓰는데 약에 집착하는 정도가 심해지니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환자들에게 약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약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어 ‘플라시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의사가 진정한 명의라 할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를 크게 만들면 실제 약의 용량을 줄일 수 있어서다.


강박불안이 있다는 것은 남들에 비해 예민한 것일 뿐 사회의 낙오자도 아니고, 내가 못난 것도 아니며,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생물학적 시스템의 과민성을 약으로 치료하고 심리상담을 통해 강한 의지와 집착에 대한 힘빼기를 할 줄 알게 되면 오히려 그 섬세함을 창조적 힘으로 쓸 수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약이라는 건 의학적 효과를 넘어 서로의 신뢰가 담겨 있는 상징물이다. 그 상징이 강할수록 치료효과는 커진다. 피곤할 정도로 디테일해지고 끊임없이 체크해야 하는 우리의 지친 삶에 이성적 통찰을 가미한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의 에너지를 주입하면 어떨까? 깊은 신뢰만이 내면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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