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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보령의 문화역사 여행 … 왜구 침입 막고, 수도권 천주교인 처형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07-31 03:37:44
  • 수정 2021-07-31 03: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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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운 최치원 유적지, 충청수영성과 갈매못성지, 대천항 섬여행

보령에는 바다와 산만 있는 게 아니다. 역사와 관련된 유적도 꽤 있다. 대천 해수욕장에서 6km 떨어진 남포면 월전리에는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의 유적지가 있다. 이 곳은 1995년 남포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백도 혹은 보리섬으로 불리는 작은 섬이었다. 주변에는 간척으로 일군 논들이 바다를 대신해 펼쳐진다.  


6두품 한계에 서럽게 살다간 고운이 바위에 새긴 글씨


최치원 유적지

통일신라 말 대학자인 고운은 당나라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으나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6두품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관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했다. 이곳 역시 그가 유람했던 장소로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에 고운의 한시가 새겨져 있다. 섬의 모양이 보리쌀과 같다고 해서 맥도 유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마모가 심해 알아볼 수 없다. 


섬 둘레 관람로 풍경과 멋진 한옥이 어우러진 죽도 상화원 


최치원 유적지에서 서쪽 1.5㎞ 지점에는 죽도 상화원이 있다.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대천해수욕장(북쪽)과 용두해수욕장(남쪽) 사이에 있던 작은 섬이었으나 남포방조제가 건설됨으로써 육지와 연결됐다. 


죽도 전체가 한국식 전통 정원인 상화원(尙和園)으로 꾸며졌다.  입구에서 6000원의 입장료를 받는 개인 수목원이자 정원이다. 비싼 입장료에 대한 거부감은 상화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진다. 또 입장권으로 음료수와 떡을 교환할 수 있으니 입장료에 대한 불만은 접어두자. 


상화원 바닷가 풍경

상화원은 한 마디로 대단한 곳이다. 개인이 꾸민 정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섬 둘레를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람 동선은 때로는 섬을 가로지르는가 하면 때로는 해안가 기암절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기도 하다. 울창한 숲의 싱그러움과 파도소리와 망망한 바다까지 변화무쌍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 전통 한옥을 충실하게 이건·복원한 한옥마을, 죽림과 해송 숲에 둘러싸인 빌라단지, 섬 전체를 빙 둘러가며 연결된 회랑과 석양정원, 각국의 신들을 모아 놓은 신의 정원, 파도소리 울려 퍼지는 명상센터 등이 한데 어우러져 한국적 미를 발산하고 있다. 장담컨대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잠수해서 건져올리는 키조개로 유명한 오천항, 충청수영성 자리 


충청수영성과 오천항

과거 보령 북부 지역의 중심부였던 오천항(鰲川港)은 서해안 천수만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천혜의 항구다. 북부 보령권은 모두 오천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영화를 누렸다. 화려했던 과거는 사라졌지만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1일과 6일의 오천장에서는 갖가지 신선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잠수어업으로 채취한 오천 키조개는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오천의 특산물이다. 


과거 오천항에는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이 있었다. 서해안 쪽으로 침략해 오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만든 석성이다. 조선 중종 중종 4년(1509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이 축성했고 고종 33년(1896년)에 폐성됐다. 축성 당시에는 사방에 진남문(鎭南門)·만경문(萬頃門)·망화문(望華門)·한사문(漢舍門) 4대문과 소서문이 있었다. 동헌을 포함해 영보정·대섭루·관덕정·능허각 등의 건물은 모두 허물어져 사라졌고 서문인 망화문과 진휼청(賑恤廳 빈민구체 관청), 장교청(將校廳 객사), 공해관(控海館 충청수사의 집무실)의 내삼문(內三門, 출입문) 정도만 남아 있다. 


내삼문은 과거에 오천초등학교의 교문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오천면 소성리 586번지 자리로 객사와 함께 옮겨왔다. 


선착장 앞에 있는 경찰서 옆쪽 오솔길을 따라 아치형의 돌문인 망화문으로 들어서면 고목들이 서 있는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성벽으로 올라서면 안쪽으로는 성 안이 훤히 보이고 바깥쪽으로는 오천항과 호수처럼 잔잔한 서해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오천항은 깊은 내항이라 물결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물 위에 떠있는 고기잡이배들, 가끔씩 항구 주변을 왔다 갔다하는 사람들, 인적 없는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나지막한 집들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진휼청 건물이 나온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 장소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서해의 붉은 노을로 물든 천주교 순교성지 ‘갈매못성지’ 


충청수영성에 나와 오천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갈매못 천주교 성지가 나온다. 예전에는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충청도 일대에는 유난히 천주교 순교성지가 많다. 한양과 수도권의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피해 충청도 쪽으로 많이 숨어 들어오기도 했고 한양 밖에서 처형을 집행한 이유도 있었다. 


서해 보령의 작고 잔잔한 바닷가에서도 5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잔인하게 처형당했는데 오천항 갈매못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의 3대 박해 중 마지막 박해에 해당하는 병인박해(1866년) 당시 최대 순교지이다. 수 백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10명뿐이다. 그 중 5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갈매못’이란 명칭은 순교지인 오천면 영보리 뒷산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도 같아 갈마연(渴馬硯)이라 불렸던 것에서 유래한다. 갈매못성지는 한국에서 유일한 바닷가 순교지로 갈매못이 처형장으로 선택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시 오천항은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충청수영이 설치되어 있었고 군함 1000척 및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던 군사 요지였다. 


1846년 프랑스 함대 3척이 1839년 기해박해 때 희생된 프랑스 신부들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보령 앞바다 외연도(外煙島)에 정박해 있다가 항의의 서신을 두고 떠났다. 조선은 이를 영해 침입으로 간주하고 감옥에 갇혀 있던 김대건 신부의 처형일을 앞당겼으며 1866년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에서 외연도에서 가까운 오천항을 처형장으로 선택했다. 두 번째 이유는 고종의 국혼을 한 달 앞두고 한양에서 피를 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무당들의 말을 듣고 한양에서 250리 떨어진 이곳 오천 모래사장을 처형장으로 택한 것이다.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인 500여명이 처형당한 바닷가 갈매못 순교성지

갈매못성지가 발견된 것은 1924년 충남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성당(金寺里聖堂)의 주임신부였던 정기량 신부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정 신부는 여러 사람들의 증인과 자료를 확인한 끝에 장깃대가 세워졌던 모래사장과 신부들을 묻은 구덩이를 확인하고 1926년 해당 부지 20평을 사들여 등기를 마친 후 1929년 한국천주교재단법인에 기증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부지 매입과 기념관 건립 등을 시작으로 성지 조성이 시작됐고 2006년 10월 31일 마침내 ‘승리의 성모성당’을 봉헌하게 된다.


순교 성지에 들어서면 먼저 바닷가를 등지고 기도 14처와 예수성심상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그 옆에 순교 성인비가 서 있다. 승리의 성모성당과 성모상을 지나면 순교의 역사를 증명하는 자료들을 모아놓은 기념전시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어 일요일이면 주민들이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승리의 성모성당 제대 뒤에는 전면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돼 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가 양옆으로 열리면 서해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갈매못성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성물이다. 갈매못성지 묵주에는 오천 해변가에서 채취한 모래가 담겨 있다고 한다. 갈매못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지로 천주교인들의 성지순례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위의 섬들을 거느리는 듯 위풍당당한 보령 앞바다 외연도. 자료 보령시청

이밖에 보령 섬여행을 추천한다. 보령 대천항에서 배를 타면 호도와 녹도를 거쳐 한두 시간이면 외연도에 들어갈 수 있다. 효자도, 원산도, 고대도, 장고도, 삽시도 등은 대천항에서 더욱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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