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에서 사용하는 약재들은 의외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약효가 뛰어난 것들이 아주 많다. 남편과 아내 모두의 건강을 지켜주는 한약재로 널리 알려진 당귀도 그 중의 하나다.
당귀(학명 Angelica Utils Makino)는 미나리과(Api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한방에서 다양한 처방에 두루 사용된다. 성질이 따뜻하고 단맛을 갖고 있으며 보혈 및 화혈 작용을 한다. 즉 부족한 혈액을 보충하며 혈액을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잎과 뿌리에서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데 한방에 문외한인 일반인조차도 잘 아는 쌍화탕의 냄새가 바로 주요 약재로 사용한 당귀에서 나는 향이다. 쌍화탕 외에 십전대보탕·사물탕·보중익기탕·귀비탕 등 한약 처방에도 빠지지 않는 게 당귀다. 한의원에서 은은히 퍼지는 향은 당귀가 한몫을 톡톡히 한다. 이런 이유로 한약하면 으레 당귀를 떠올리기도 한다.
당귀는 한자로 ‘마땅할 당(當)’에 ‘돌아올 귀(歸)’를 쓴다. ‘마땅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다.
과거 중국에서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의 봇짐 깊숙히 당귀를 넣어주었다고 한다. 전쟁터가 멀어 귀향길이 힘들 때 당귀를 달여 먹어가며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의미였다. 물론 부인도 당귀를 가슴에 품었다. 자신의 건강도 챙기면서 남편이 당연히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원했던 게다. 당귀의 영양학적 가치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당귀와 관련된 얘기는 또 있다. 옛날 귀한 약초가 많이 자라는 큰 산이 있었다. 그 산은 험하고 맹수와 독사가 우글거려 약초 캐러 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산기슭에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 그러나 1년, 2년이 지나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아내는 결국 아랫배가 몹시 아픈 부인병에 걸려 몸져 누웠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당귀 한 망태기를 메고 돌아왔고 다 죽어가던 아내에게 당귀를 달여 먹였더니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물론 앓고 있던 부인병도 씻은 듯이 나았다.
당귀는 대표적인 보혈(補血)약으로 부인과질환을 치료하는 성스러운 약재라고 할 수 있다. 월경을 조절(조경, 調經)하는 효능이 뛰어나 생리불순, 생리통 등 부인과질환 치료의 성약(聖藥)으로 여겨졌다. ‘기(氣)를 보하는 게 인삼이라면, 혈(血)을 보하는 데는 단연 당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피를 맑게 하고 허약한 부분 보충 … 냉증·피부관리에도 효과
당귀는 피를 맑게 하고 보호해주는 양혈(養血)작용과 허약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보허(補虛) 작용이 있다. 성질이 따뜻하고 혈액을 활성화해 빈혈을 치료하고 통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당귀는 혈액이 원활하게 돌지 않고 냉증이 있는 경우에 도움이 된다. 여성은 물론 남성의 경우에도 손발이 차며 아랫배에 찬 기운이 돌고 몸이 잘 붓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다. 갱년기에 호르몬 변화로 체력이 저하되며 혈액순환 문제를 겪게 될 때도 도움이 된다.
당귀는 장 기능을 촉진해 배변활동을 원활하게 해줘 변비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당연히 피부 미백과 보습에도 효과가 좋다. 당귀에는 각종 비타민이 풍부해 피부관리에 도움을 준다. 건조하고 까칠한 피부에 수분을 보충해 주고 항염과 항균작용을 해서 화농성 여드름과 인후염, 기관지염에 효과가 있다. 홍조나 피부노화의 증상이 있을 때 당귀가 함유된 비누나 팩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당귀가 여성만을 위한 약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남성들에게도 아주 좋은 약재다.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남성들의 정력 강화에 좋다. 술을 많이 마시는 남성이 당귀차를 마시면 간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고 숙취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피로나 스트레스가 쌓여 기력이 떨어졌을 때도 하루 한두 잔의 당귀차를 마시면 기운을 회복하는 데 좋다.
오장의 기운을 두루 북돋아주는 당귀는 긴장을 완화하며 진통, 진정 작용도 한다. 혈액순환을 도와 뇌 기능을 향상시켜주기도 한다.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항염, 항암 효과로 연결되며 면역력 강화에 기여한다.
당귀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두 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참당귀와 일본에서 건너온 일당귀로 나눌 수 있다. 참당귀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 자생 분포한다. 재배용은 고랭지인 강원도에서 주로 길러진다. 약효가 좋아 주로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한다. 일당귀는 약재로서의 효용보다는 주로 쌈 채소로 식용으로 사용한다.
‘대한민국 약전’에 따르면, 한약재로 사용하는 당귀에는 지표 성분인 데쿠르신과 데쿠르시놀 안젤레이트가 함유돼 있어야 한다. 참당귀에는 이 지표 성분이 있어 한약재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일당귀에는 없어 한약재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둘 다 잎은 장아찌와 뿌리는 차 등 식품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당귀추출물은 피부 미용에 좋아 입욕제와 비누, 화장품 등에 많이 이용된다. 실내에서 키우기에는 병충해에 강하고 향이 독특한 일당귀가 알맞다.
참당귀와 일당귀는 맛과 향, 모양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참당귀의 잎은 맛이 달고 매우며, 일당귀 잎은 달지만 매운 맛이 적다. 그러나 향은 일당귀가 참당귀보다 강하다. 잎 모양은 두 가지가 비슷하지만, 크기와 색깔에 차이가 난다. 참당귀 잎은 넓고 크나, 일당귀는 좁고 작은 편이다. 그리고 일당귀의 잎이 상대적으로 짙은 녹색을 띠고 더 윤기가 난다. 참당귀 키는 1∼2m 정도이고, 일당귀는 보통 60~90cm이다. 참당귀는 꽃이 적자색이고, 일당귀는 흰색이다. 참당귀의 종자는 타원형, 일당귀는 긴 타원형이다.
당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좋은 약재임에는 틀림없지만 사용 시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우선 장이 좋지 않거나 설사를 하는 사람의 경우 가급적 복용을 삼가는 게 좋다. 자궁 출혈이 심할 때도 사용을 피한다.
장기간 다량 투여하는 것은 절제하는 게 좋다. 이럴 경우 인후통과 설사, 콧구멍의 작열감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몸에 열이 많거나 혈압이 높은 사람은 복용을 삼가야 한다.
이밖에 개인의 체질과 증상에 따라 효과가 다르고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자가진단을 통해 오·남용을 하는 것은 위험하며 반드시 전문가인 한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따라 복용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