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툴리눔 균주 출처를 놓고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은 26일(현지시각)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결정에 대한 항소가 무의미(moot)하다고 판단해 기각 결정을 내리자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 27일(한국시간) 설전을 벌였다.
미국 항소법원의 기각에 따라 사건은 미국 ITC로 환송되며, ITC는 조만간 최종결정을 공식적으로 무효로 하는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항소법원은 ITC 결정에 따라 대웅제약의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미용시술용 제품)와 이온바이오파마(질병치료용 제품)가 각각 지난 2월과 6월 사실상 대웅의 메디톡스 기술 도용을 시인하고 손해배상에 합의한 데 대해 ITC의 결정이 실제로 다 반영된 만큼 항소를 진행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ITC는 지난 5월 3일 ITC는 3자 합의에 따라 나보타(미국 브랜드명은 주보) 수입금지 철회를 승인했으며, 대웅 및 메디톡스가 CAFC에 제기된 항소가 기각될 경우 ITC 결정이 무효화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웅은 지난해 12월 도용이 아닌데 억울하다며 항소를 제기했고, 같은 달 메디톡스 역시 행정처분이 가볍다는 이유로 항소를 냈다. 10년이 아닌 21개월 수입금지는 약소한 처분이라는 입장이었다.
ITC 결정은 행정처분이지 사법적 결정은 아니다. ITC는 대웅의 균주가 메디톡스 균주에서 유래됐다고 보면서도 이것이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절충적 결정을 내렸다.
ITC의 현재 입장은 이미 두 건의 합의로 메디톡스의 경제적 손실 문제가 해결된 이상 항소 자체가 무의미(moot)하며 ITC 결정 내용을 가지고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ITC는 메디톡스가 ‘주보’의 미국 판매로 인한 자사의 피해가 완전히 해소된 상황에서 소송물(소송에서 심판의 대상이 되는 사항)이 아닌 자사 제품의 잠재적 위협을 배제하기 위해 항소를 진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대웅은 지난 5월 항소는 기각될 것이고 ITC 결정은 무효화될 것이라며 ITC 결정에 결함이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달 26일 항소가 기각되자 대웅제약은 “ITC 결정이 무효가 되면 소송 당사자들은 법적으로 결정 내용을 미국 내 다른 재판에 이용할 수 없다”며 “한국의 민사 소송에서도 메디톡스가 주장하는 근거가 매우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에서의 보툴리눔톡신 사업의 모든 리스크가 해소됐다”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더욱 확대해 사업 가치를 증대시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메디톡스는 미국 항소법원이 기각하지 않은 컴캐스트(Comcast) 관련 ITC 사건을 거론하며 항소가 기각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결론적으로 26일 미국 항소법원이 항소를 기각했고, 미국 ITC도 예고한 바에 따라 최종결정의 무효화를 공식화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메디톡스는 26일 “ITC가 최종판결을 무효로 하더라도 해당 판결이 다른 소송에서 어떠한 가치나 효과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ITC는 지난 5월 ‘TC 최종판결이 무효가 될지라도 메디톡스는 여전히 판결 내용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서를 냈다”고 반박했다.
이어 “ITC의 최종판결 무효화 결정은 메디톡스와 에볼루스 및 이온바이오 간 합의에 의한 것인데 당사자도 아닌 대웅제약이 이걸 본인들에 유리하게 인용하는 건 아전인수”라며 “ITC 최종결정 관련 자료는 국내 법원과 관계 수사기관에서 증거 능력이 인정돼 대웅의 범죄행위를 밝혀줄 명확한 근거로 활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디톡스의 주장대로 ITC 판결이 국내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법리는 미국 법리와 완연 다르며, 한국 사법기관이 미국 행정기관의 판결내용을 참고할 뿐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웅은 윤재승 부회장이 서울대 법대, 검사 출신으로 막강한 법조계 인맥을 갖추고 있으며, 광고 배정을 통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는 매체에 대해 불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에 국내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메디톡스는 국내에서 이런저런 형사소송을 제기해도 끝내 기소가 되지 않자 미국 ITC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차선의 승리를 거뒀다. 아닌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녹록치 않은 국내 법조 환경에서 또다시 고배를 들 것인지, 미국에서 일궈낸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대웅을 제압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