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는 22일 에이치케이이노엔의 국내 개발 코로나19 백신 ‘IN-B009주’의 안전성과 면역원성을 평가하기 위한 임상 1상 시험 계획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현재 국내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백신은 10개 제품에 달한다.
그러나 이처럼 다수의 국내 제약사들이 백신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에 뛰어들고 있음에도 백신 개발 성공여부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비관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국내 제약사들이 국산 백신 개발에 앞 다투어 뛰어들고 12월 정세균 국무총리가 “독자 개발 중인 백신을 내년 말쯤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국산 백신 개발 성공에 대한 기대는 아주 낙관적이었다. 당장 백신 개발에 참여한 업체들의 주가가 적게는 수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오른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1년 여 시간이 흐른 지금 국산 백신 개발은 말 그대로 ‘기대난망’의 형국이다. 불과 1년 만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전문가들은 “국산 백신 개발을 완료하기까지 해결해야할 난제들이 너무 많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 1·2상을 진행 중인 국내 제약사는 SK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해 셀리드·제넥신·유바이오로직스·진원생명과학 등 5개 업체다. 이들 업체 중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글로벌 제약사들에 비교하면 한참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 제약사들의 국산 백신 개발 참여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은 성공의 발목을 잡는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로는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현재 국내에는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AZ)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한 백신이 보급돼 순차적으로 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산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할 경우 글로벌 제약사의 백신을 접종할 수 없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과정에서 손쉽게 모집할 수 있었던 고령층 참여자도 이젠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0대 이상 백신 접종률이 80%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백신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에 난항을 겪는 만큼 진행과정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제약사들의 경우 해외로 눈을 돌려 외국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키로 하는 등 계획을 수정했지만 이 마저도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상시험에 투입되는 막대한 재원도 걸림돌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업계에 따르면 임상시험 참여자 1인당 최소 2000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 세계에 백신을 보급 중인 화이자와 모더나는 임상 3상에 3만명 규모의 참여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6000억원이 필요한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국산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실무추진단’을 발족하고 ‘총력 지원’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책정한 예산은 치료제까지 포함한 금액으로 2254억원이다. 그나마도 올해 백신 개발 예산은 한 푼도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임상에서 충분한 효능과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것 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신 개발에 참여한 국내 제약사들이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예산은 지난해 업체당 10억∼90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체 당 1조원에서 많게는 4조원까지 지원받아 1년 만에 백신을 조기 개발한 글로벌 업체들과는 비교는 차치하고서라도 임상 시험 소요 비용의 발밑에도 못미치는 금액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백신 개발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임상 비용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국내 제약사들도 개발 초기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았다면 지금쯤 국산 백신이 개발됐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처럼 국산 백신 개발이 지연되면서 정부는 비교임상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비교임상은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의 감염여부를 비교하는 기존 임상과 달리 백신 접종자의 혈액에서 기존 백신과 같은 면역반응이 일어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임상 환자 수가 적어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비교임상을 효능을 확인할 만한 국제적 표준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비교임상을 통해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해외에서, 특히 기준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미국·유럽 등의 보건당국의 인정을 받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제 공인을 받지 못할 경우 국산 백신 개발이 되더라도 해외 수출길은 막힐 수밖에 없다. 혹 수출을 해도 기껏해야 제3세계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도 수출이 불가할 경우 업체에 이를 감수하고 개발에 매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임상1·2상을 진행 중인 제넥신이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임상을 진행하는 것은 비교임상으로는 해외 수출이 불가하다는 판단에 따른 차선책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처럼 국산 백신 개발이 3중고를 겪으면서 지지부진해지면서 업계에서는 백신 개발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의 실질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빌&멀린다게이츠 재단과 전염병대비혁신연합에서 약 2400억원을 지원받은 SK바이오사이언스 외에 다른 업체들의 경우 예산 상 문제로 완주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례로 미국의 경우 임상전 단계부터 조건을 따지지 않고 수조원에 이르는 금액을 선구매 형태로 백신 개발 업체에 지원했고 그 결과 현재 자국민의 접종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전 세계에 백신을 공급하는 ‘백신부국’이 됐다.
코로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를 걷고 백신 물량이 부족해 사전 예약한 날짜가 미뤄지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국산 백신 개발 성공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선결과제다. 하지만 백신 개발을 위해서는 현재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 특히 예산의 지원 같은 문제들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고서는 기대 자체가 부질한 욕심일 뿐이다.
그럼에도 누누이 ‘백신주권’을 주창하던 정부는 전국민재난지원금 예산 편성에만 경도돼 있을 뿐 백신 개발을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지원책에는 안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K방역’만 자화자찬하며 백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백신 빈곤국’의 처지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